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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다시 찾은 화가와 달항아리 展

              화가와 달항아리 展             

           ● 2009. 2. 1 (토)

              ● GALLERYHYUNDAI (GANGNAM SPACE)

                 

               ※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해설 및 강연

 

                 

수화 김환기 作

 

 

 

 

 

 

 

 

 

 

 

항아리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의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

 

- 1963년 김환기 -

 

 

 

 

♣ 도상봉 作 

 

 

 

 

 

 

 

나의 가장 친우인 이조백자들도 항상 그 속에 미소를 띄고 있다.

그리하여

 아침, 저녁 광선이 변할 때 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백색의 변화와 항아리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성의 노래는

나에게 신비한 교훈과 기쁨을 던져준다.

 

- 도상봉 - (나의 유일한 휴식처 조선일보> 1955. 6.

 

 

달항아리 (강남 현대 갤러리 전시작품)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강연회 

 

 

국립고궁박물관이 펴낸 "백자달항아리" 도록에 받은 사인

 

 

 

이하 모든 사진은

국립고궁박물관이 펴낸  "백자달항아리" 도록에서 발췌

 

지난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과 함께 첫 기획전으로 열린 <백자달항아리) 특별전에

출품되었던 명작 들 만을 모은 것이다.

이 전시에는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7점과

대영박물관과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기미술관 소장품 등

모두 9점의 달항아리가 전시된 바 있었다

 

조선왕조는 공예왕국이었고 조선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백자이며,

백자의 제왕은 달항아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왕조의 상징이며

나아가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백자 달항아리는 이른바 백자대호라고 불리는 것으로 18세기

즉 영조, 정조 임금이 제위하던 시기에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금사리 가마와

분원가마에서 제작된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의 항아리로

높이 40센티미터 이상 되는 큰 항아리를 말 합니다.

 

세계 도자사상이처럼 거대한 둥근 항아리가 제작된 예는

조선 백자 달항아리 이외는 찾아보기 힙듭니다.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수많은 미술사가, 감식가,

애호가들의 끝없는 찬사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서로 표현은 달리했지만 한결같이 따뜻한 순백의 색깔,

너그러운 형태미, 부정형의 정형이 보여주는 어질고 선한 맛과 넉넉함,

그 모두가 어우러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입니다.

 

그것은 정녕 한국인의 마음,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삶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한국미의 극치입니다.

 

백자 달항아리전을 열면서  - 2005년 8월 15일 문화재청장 유홍준 -

(도록의 글에서 발췌)

 

 높이 49.0cm 입지름 20.1cm 밑지름 15. 7cm 

18세기 / 국보 제622호 / 우학문화재단 소장

 

몸체 지름에 비해 키가 커서 갸름한 인상을 주는 항아리이다

몸체 중앙에서 상부와 하부를 접합한 흔적이 확인된다.

입은 비스듬하게 각을 이루며 짧게 솟아있고 굽은 수직이다.

담청색 유약을 내외면에 씌엇으나 부분적으로 유약이 씌워지지 않은 곳도 있다.

접지면은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를 앏게 발라 구웠다.

표면의 색조는 유백색이며 유약이 흘러 뭉친 곳은 옅은 푸른색을 띤다.

몸체 하부 곳곳에 태토에 섞인 잡불로 인해 황적색을 띠는 부분이 있으며

표면 전체에 걸쳐 미세한 기공들이 분포해 있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4.5cm 몸체지름 42.0cm 입지름 21.5cm 밑지름 16.5cm

18세기 / 국보 제309호 / 삼성미술관 Leeum소장 

 

조선시대 달항아리에서는 드물게 몸체가 좌우 대칭으로 거의 완전한 원형을 이루는 항아리이다.

순백의 태토 위에 투명한 백자 유약이 씌워졌으며 몸체 중간의 이음새가 말끔하게 다듬어지고

굽의 깎음새도 단정하다. 굽은 수직이며 입술의 바깥이 볼록하고 둥글게 마무리되었다.

유약이 굽 안쪽까지 발라져 있고 접지면에서는 유약을 닦아내고 구웠다.

받침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표면 곳곳에 스민 옅은 갈색 얼룩이 독특한 조형미를 형성하고 있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1.0cm 몸체리름 40.0cm 입지름 20.0cm 밑지름 16.0cm

18세기 전반 / 보불 제1437호 /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높이와 몸체 지름의 크기가 거의 같은 가장 전형적인 항아리이다.

몸체는 완전히 둥글지도 않고 심하게 일그러지지도 않은 여유로운 느낌의 둥근 모양이고

구워지는 과정에서 한쪽이 조금 내려 앉았다. 밖으로 짧게 벌어진 입술의 바깥쪽 모서리를 죽여

둥글게 손질하고 비스듬히 처리하였다. 수직으로 곧게 선 굽의 지름은 입지름보다 조금 좁다.

푸른 기운이 거의 없는 투명한 유약이 씌워졌으며 표면의 유색은 유백색을 띤다.

유약이 굽 안쪽까지 씌워졌으며 접지면에 모래받침 흔적이 남아 있다.

표면에 부분적으로 빙렬(氷裂)이 크게 나 있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4.5cm 몸체지름 43.5cm 입지름 18.3cm

18세기 보물제1441호 / 디 아모레 뮤지움 소장

 

굽과 입이 비교적 높고 입지름과 밑지름의 크기가 거의 같은 항아리이다.

입은 별도의 손질없이 그대로 곧게 뻗어오른 형태로 마무리하였다.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균형 잡힌 기형이며, 유약이 고르게 씌워지고 표면의 광택이 좋다.

몸체 일부에 잔 빙렬이 나 있으며, 표면 곳곳에 변조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구멍들이 있다.

유약을 굽 안쪽까지 싀운 다음 접지면의 유약을 훑어내고 구웠다.

접지면에 검은색 모래받침 흔적이 남아있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5.0cm 몸체지름 44.0cm 입지름 21.0cm 밑지름 17.0cm

18세기 전반 / 국보 제310호 / 남화진 소장

 

높이와 몸체 지름의 비율이 1대 1에 가까운 항아리이다.

밖으로 벌어진 입술의 바깥 모서리를 둥글게 손질하고 안쪽은 매끈하게 비스듬히 처리한 점도

동일하다. 다른 달항아리에 비해 두께가 앏은 편이며 유약이 항아리의 내부와 굽 안쪽 바닥까지

균일하게 씌워졌다. 유약 바른 상태가 좋고 표면에 얼룩이나 빙렬이 없으며 광택도 좋다.

기형과 유약 바른 상태 유색 등 전체적으로보아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진 항아리로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더불어 조선 새대 달항아리의 정형을 보여준다.

이 항아리는 1979년 미국에서 열린 <한국미술오천년전>에도 출품되었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7.5cm 몸체지름 44.5cm 입지름 20.5cm 밑지름 15.5cm

18세기 / 보물 제1438호 / 개인 소장

 

전체적으로 늘씬하면서도 안정감 있고 당당한 인상을 주는 항아리이다.

다른 달항아리와 비교하여 일그러짐의 정도가 덜한 편이며, 치밀하게 잘 수비된 태토가 사용되었다.

입술은 두투마고 수직적인 형태이며 밖으로 약간 벌어져 있다. 입술 끝을 다듬어 각을 없앴으나

예리한 느낌이 남아있다. 접지면에 받침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 자국이 있다.

표면 곳곳에 이물질이 부착되어 있으나 유약 바른 상태와 유약의 발색이 균일하여 표면의 광택이 좋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7.8cm 몸체지름 45.5cm 입지름 19.5cm 밑지름 18.0cm

18세기 / 보물 제1439호 / 개인 소장

 

굽과 입의 높이가 비교적 높고 입지름과 밎지름의 크기가 거의 같은 항아리이다.

다른 달항아리에 비해 두께가 두터운 편이다. 입술은 약간 벌어져 있으나 수직에 가까우며

입술 끝으로 갈수록 두께가 점점 얇아진다. 굽 안쪽을 얕게 깎아냈으며 그 깎음새가 단정하다.

굽 안쪽 바닥은 이물질이 없이 깨끗하다. 유약이 고르게 씌워졌으나 표면의 광택은 거의 없고

곳곳에 황갈색을 띄는 부분이 있다. 조선도자기에 심취하여 그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던

일본인 도예가 하마다 쇼지(1894 ~ 1978)가 소장했던 내력을 갖고있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5.0cm 몸체지름 42.4cm 입지름21.2cm 밑지름 15.9cm

18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원래 일본 도다이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사고를 당하여 수 백 편으로 조각난 상태로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된 이후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입술의 바깥은 볼록하게 도드라지게, 한쪽은 비스듬히 매끈하게 손질되어

위에서 내려다 보면 짧은 입이 밖으로 벌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유약이 두껍게 씌워져 있으며

유색은 차분한 유백색을 띤다. 굽은 안쪽 바닥은 유약을 닦아내고 변조하였다.

(도록 작품 해설)

 

 

 높이 45.0cm 몸체지름 43.5cm 입지름 20.5cm 밑지름 15.5cm

18세기 /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

 

조선 도자기에 심취했던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 ~ 1979)가

1935년 한국에서 구입하여 소장했던 달항아리이다. 버나드 리치는 이 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 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몸체 중간의 밋밋한 배 부분에서

상부와 하부를 이어붙여 제작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입술이 약간 벌어져 있으나 수직에 가까운 형태로

짧게 솟아 있으며 굽은 짧고 곧다. 유약이 고르게 씌워졌으며 표면에 광택이 있다.

 

 

 

 


 

 

 

지난 1월 19일에 이어 또다시 찾아간 강남 현대 갤러리 "화가와 달항아리 展".

 

작품 감상도 감상이려니와

"나의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을 펴내, 일약 대한민국의 지가를 크게

올려놓은 바 있다는 미술사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강연회가 있다고 하여

불원천리 한양땅까지 올라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강연회장에 들어선 유 선생의 모습을 보자하니

옷고름을 생략하고 단추로 깃을 여민 모습이다. 

당연히 자신의 두루마기 차림새에 관한 얘기부터 풀어가기 시작하는데....

 

옷고름과 댓님이 없는 것은,

개화기를 거치면서 거추장스럽고 생활에 불편을 주는 한복의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하자는 차원에서 생략한 것이지,  요즘의 이른바 개량한복과 같은

수준의 품격 낮은  차림새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과 아울러,

격식을 갖추어야하는 공적인자리에 참석할 시는 절대로 요즘 흔히 입는

개량한복 따위의 차림새는 곤란하다는 말씀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끌어 모은다.

 

옳커니.... !

달항아리의 미학을 얘기함에 앞서 한복에대한 미려함을 얘기하는 것으로 

먼저 말문을 여는 것은 ,

주제에 대한 청중의 접근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데 있어 제격일 터.

달항아리의 정의는 42cm 이상의 대호(大壺)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서

본격적인 백자 달항아리의 세계로 입문을 유도하신다.

 

삼불 김원룡선생이 한국일보에 글을 기고하는 과정에서 쓰게되었다는

詩 "백자대호".

본격적인 시로서 대접을 받기엔 말도 않되는 문구의 조합이런만

오늘날 달항아리를 얘기함에 있어, 이 "백자대호" 시를 능가할 만한 그 어떤 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면 확실한 명시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말씀하시는데, 일순 좌중의 폭소....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최초로 등장시킨 최순우 선생.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잘 생긴 부자집 맏며느리를 떠올리게 된다."

 

달항아리만 보면 절대 값을 깍는 법 없이 사들였다는 수화 김환기.

"이렇게 멋지고 좋은 작품에 대해 값을 깎는다는 것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게 달항아리를 좋아했는데도 워낙 가난하여 항상 못 생기고 쭈그러들거나

작고 부정형의 달항아리만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도상봉.

 

즉, 그 들의 뛰어난 안목이 있었기에 미술사의 발전이 있을 수 있었고,

그 안목의 바탕위에 오늘날 백자 달항아리에 대한 평가와 가치는 날이 갈 수록

높아져만 간다는 말씀.

 

중국과 일본 미술사 중간에 낀 아류 정도로 여겨졌던 한국미술의 평가.

"한국미술 이천년전"과 "오천년전"으로 이어지는 해외 전시를 통하여

구미인들의 시각을 확실하게 바꿔 놓을 수 있었다는 말씀과 함께

전시회에 얽힌 이런저런 비화도 들려주고 있었다.

 

보통의 우리네가 해외 유수의 박물관을 돌아보는 요령에 대해서도 한 마디.

 

짧은 일정에 그 많은 유물과 전시물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럴땐 주로 독립장에 들어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받침대 위에라도 올려진

작품 위주로 훑는게 그나마 엑기스를 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달항아리 중에 유일하게 소유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은

영조가 부원군으로 있을 때 소유했던 항아리로서 명문이 남아있다고.

 

간장 항아리로 쓰였을 경우 겉으로 배어나오는데,

이때 물에 넣어 삶게 되면 얼룩을 뺄 수 있지만,

적당한 수준의 탈색이어야 항아리의 미를 헤치지 않는다.

 

바다 건너 오사카시립박물관 도자 전시물 960점 중 60 ~ 70%가 한국의 도자기이며

그네들이 얼마나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관한 얘기와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조선 서민의 문화와 달항아리의 미감을 즐겼던 

이른바 "민예운동"그룹 들이 어떻게 조선의 문화에 심취했는가에 대한 해설과 아울러

결코 그네들이 조선을 사랑해서 우리의 문화에 심취한게 아니라는 사실도

관과해서는 곤란하다.

  

거개의 서양인들,

젊어서는 한국의 미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다가 나이가 들어 가면서 한국의 미,  

그 중에서도 "무심의 미학"에 빠져드는 것은, 

한국의 미가 결코 중국이나 일본의 아류나 우수마발이 아닌,

 독자적이고 창의적이요, 한국인 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자 독특함의 경지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부터 라고.

 

순백의 미, 여백의 미,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둥근 형태의 미감.

완전성을 뛰어넘는 불완전성,

정교함으로, 치밀함만으로 봐서는 결코 달항아리의 미감을 이해하기 어렵다. 

속기를 떨쳐내고 격조를 갖추려면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헌데 달항아리엔 이런 저런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덕성까지가 달항아리에 들어있는 것이다.

 

평범함 속에 비범이 보였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법이다.

백자 달항아리는 세계 어느 곳, 어느 장소에 갖다놔도 절대 이질감 없이

놓여진 자리에 곧바로 적응이되고, 더 나아가 곧장 중심이 되고 마는

신비로움을 지닌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발전에서 세라믹의 화학적 변화를 가장 기막히게 이용한게 그릇이다.

일천 이백도 이상의 고온에서 빚어지는 화학적 변화의 세계를 이용하여

백자대호를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탄생시킨 우리문화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

.

.

 

도공이 아무리 도자기를 잘 빚어낸다 해도,

소비자의 욕구가 더 해지지 않으면

훌룡한 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법.

 

"문화는 결국 소비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라는 말로

오늘의 강연은 끝을 맺고 있었다.

 

 

 

 

----- 에필로그 ----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조상이 남긴 문화재를 어떻게 수용하고 재 해석 해야 하는가...?

 

자기라고 불리우는 이른바 청자와 백자는 물론,

더 나아가,우리의 도기에 대한 평가까지가

혹, 오늘날의 달항아리 수준으로

격상되지 말라는 법 이라도 있단 말인가?

 

가만보면,

미학이니 미감이니 하는 것 들은,

누가 어떤 식으로 의미부여를 해 가느냐에 따라

평가와 대접이 확연히 달라짐을 볼 수 있다.

 

세상 만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다 보면 

모두가 문화재요, 유물 천지는 아닐까?

 

가진게 없는 보통의 우리네는 별 도리가 없다. 

 

돈 안드는 저 하늘의 둥근달이나 실컷 들여다 보다가,

마음이 내키면 냉큼 끌어들여

핍진하게 보듬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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