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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판소리 그 웅혼한 세계

 

동리 신재효 고택 (중요민속자료 39호)

 

"성관은 평산신씨(平山申), 있을재 효도효(在孝)는 장적의 함자이요,

일백백 근원원(百原) 은 친구간의 자호로다.

뜰앞에 벽오동은 임신생과 동갑이요, 어호는 동리(桐里) 오니 너도

공부하려거든 가끔 가끔 찾아오소"

 

-방아타령 중에서-

 

 

동리 신재효 (桐里 申在孝, 1812-1884)

 

판소리의 전성시대 (후기 8 명창시대, 19 세기 후반기)에

판소리를 총 집대성한 인물이다.

 

선생은 당시 구비전승되어 오던 판소리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그리고 변강쇠가를 집성 정리했다.

 

개작작업은 40세(1852)를 전후하여 판소리에 심취하기 시작,

1864년경 토별가의 정리를 시작으로

1884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이어진 인생의 대 기획이었다.

 

 

이란

판 하면 '씨름판'에서부터 시작해 '굿판'에다 "화투판' '노름판' '개판' '잔치판'에 이르기까지

뭔가 같은 목적아래 여럿이 어우러져 필요한 행위를 벌이는 것을 말 하고.

 

소리

 

모든 자연에서 나오는 음을 통칭해서 소리라 할 것이다.

그 판과 소리의 합성어가 바로 판소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하고자하는 판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로 온갖 삼라만상의 이치와 의미를

담아내는 작업 쯤으로 이해하면 되지않을까.

 

 

- 아래는 인터넷 자료에서 옮겨온 판소리 용어에 관한 내용이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김제 만경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북한

 정노식이라는 사람이 1940년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낸 {조선창극사}라는 책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라는 명칭은 그보다 조금 일찍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판소리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았다.

우선 책 제목에서부터 {조선판소리사}라고 하지 않고, {조선창극사}라고 함으로써,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때만 해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907 -1974

 판소리 다섯바탕을 집대성하여 후학을 길러내 위대한 판소리 교육자

고흥 출생으로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까지 활동했고 소리는 탁성.

유성준, 송만갑, 정정열을 사사하고 오정숙, 박봉래 등을 길러냈다.

 

1896 - 1964

오늘의 보성소리를 있게 한 위대한 교육자

나주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활약.

장기 : <적벽가>, <춘향가>

더늠 : <춘향가> 중 '신연맞이'

 

1904 - 1961

 타고난 성음에다 애원성의 최고봉을 이룬 천하명창

광산 송정리 출생으로 일제와 해방이후 왕성한 활동.

장기 : <춘향가>, <적벽가>, <수궁가>

더늠 : <춘향가> 중 '쑥대머리 대목'

청음과 애원 귀곡성 등 상성이 막힘없는 절창으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14세 때 박재현 명창의 문하에서 '춘향가' '흥보가' 를 이수하고 후에

유성준 명창의 지침을 받아 '수궁가' , '적벽가' 를 수학.

 

 1857 - 1950

명창 중 최고 벼슬에 오른 독창성과 즉흥성의 소리

충남 서천 태생으로 구한말과  일제시대 활약

장기로는 <심청가>, <적벽가>, <새타령> 등

아름다운 목과 각양각색의 즉흥소리로 일세를 풍미

김정근, 김세종, 이날치 문하에서 수학하고

강장원, 정광수 등에 전수.

 

1865 - 1939

가문의 동편소리에다 서편소리를 가미, 판소리의 신기원을 이룬 천재 명창 

구례 출생으로 한말과 일제 초기까지 활약

장기로는 <춘향가>, <심청가> , <적벽가> 등이 있고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농부가' 를 들 수 있다.

특징으로는 둥글고 맑은 통상성에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소리.

아버지 송우룡의 문하에서 수학, 김장수, 장판개, 박중근, 김정문,

박봉래, 이화중선, 김초향, 박녹주, 박초월, 김소희 등에게 전수.

 

 1876 - 1938

판소리의 현대화와 창극의 전형을 일궈낸 계면조의 대가

익산 출생으로 한말과 일제 때 활약, 장기로는 <적벽가>와 <춘향가>를 들 수있고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시연 맞이'를 들 수 있다.

탁성에다 성량은 다소 부족했으나 노력에다 창조성을 발휘했다.

정창업, 이날치 문하에서 수학했고 김여란, 김연수, 김소희,

이기권 등에게 전수.

 

1906 - 1979

풍부한 성량과 독늑한 수리성으로 일세를 풍미한 여류 명창 

선산 출생으로 일제와 해방 이후까지 활약

<홍보가>가 장기이고 <춘향가>. 더늠으로는 '신연 맞이"

거대한 성량으로 일세를 풍미.

박기홍, 송만갑, 정정열, 김정문, 유성준 등을 사사.

 

1917 - 1995

해방 이후 최고의 성음과 예술로 국창의 반열에오름

고창 출생으로 일제와 해방이후까지 활약.

<춘향가>와 <심청가>를 장기로 들 수 있으며 천부적인 성음을 바탕으로

모든 소리를 거의 평평하게 내는 정대한 창법이 특징이랄 수 있다.

송만감, 정정렬, 박옹실, 정음민 등을 사사했고

안향련, 신영희, 이명희, 안숙선 등에게 전수.

 

1916 - 1983

청미하고 풍부한 성음으로 일찍부터 소녀 명창 반열에 오름 

남원 출생으로<흥보가>, <춘향가>, <수궁가> 등을 장기로 들 수있다.

창극의 춘향모 역할은 당대 제일인자라는 평.

김정문에게 흥보가를 송만갑에게선 춘향가, 심청가, 수긍가를 사사했고

문하로는 조통달을 배출.

 

 

만정 김소희 선생이 생전에 입었던 의상

 

천의무봉 (天依無縫)의 목소리 

"하늘이 거둬간 하늘의 소리"

김소희의 판소리를 말할 때, 제일 먼저 드는 것은 천부적인 목소리다.

 

고려청자의 쑥물 든 하늘빛과 조선조 백자의 희다겨운 옥빛이 어려있고

가을밤 기러기 소리며 청전의 학울음 소리와

낙목한천의 찬바람 소리를 느끼게 했던 목소리였다.

- 한겨레21 제57호(1995. 5. 4) 

 

 

 

간만에 찾아본 "고창 판소리 박물관"

전시실 내부의 동선과 내용이 상당부분 달라져있었다.

 

보통의 우리네가 판소리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접수하려면

그냥 귀만 열고있다고 이해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나 역시,

뭘 알고 판소리를 애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부터 먼저 고백해야겟다.

 

판소리를 듣노라면

그 소리쟁이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내지르는 상청과 공력에

우선 기부터 질리고 마는게분명한 사실이요,

 

그 엄청난 장단의 변화를 따라가며 몰입하기란

여간 버거운 게 아님이 확실하다.

 

어릴적 우리 동네에 부자 소리꾼이 있었다.

무슨 잔치만 있다하며 어김없이 그들 부자가 초청되어

질펀한 소리판으로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잔뜩 쉰 목소리로 알수없는 사설을 늘어놓으며

쥘부채를 �다가 손바닥에 내리쳐 접음시롱,

좌중의 웃음을 끌어내고 눈가를 적시게 만드는 부자간의 공연은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 옛날 천시와 괄시 속에 이어오던 우리의 소리가

 

이젠 학술이라는 미명아래 페이퍼에 기록되어지고

 각종 학위에 난도질 당하며

그 들의 펜 끝에 놀아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어줍잖은 음계의 변화와 요상시런 장단을 동원하여

너도 죽고 나도 죽어버리자 식의 몸부림 음악이

판을 치는 세상이요,

그런 시류에 편승치 않으면 마치 왕따를 자초하는 듯 싶어지는 세태.

 

허나,

판소리엔 말초신경 따위나 건드리며 억지 박수를 요구하는 일은

 절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

 

소리꾼과 고수가 노는 꼴을 보고있다 흥이 오르면

적당한 지점을 골라 시쳇말로 겐세이를 놓으면 그 뿐이다.

.

.

.

 

얼씨구나 절씨구

아먼 그라제, 그라고 말고

 

                                                                            2008, 6, 15 일요일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갈까부다.
바람도 쉬여 넘고, 구름도 쉬여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다 쉬여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하날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 일도 보련마는,
우리 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길래
이다지도 못 보는고.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 동풍 연자되여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고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