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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연계정(蓮溪亭)원림과 모현관(慕賢館)

2007-08-05 22:51

 

삼인산을 타고 오르는 운무

 

꽃구슬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 소재한 연계정 원림을 찾아갔더니 미암 유물전시관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모현관 연지를 조망하는 곳에 지어진 연계정
미암 유희춘(1513년∼1577년)이 학문을 가르치던 공간으로 임진왜란으로 소실한 것을

문인들 90여명이 힘을 모아 중건하면서 정자 앞의 계류 이름을 따 연계정이라 하였다.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을 하였다.

미암 유희춘은 중종에서 선조때까지의 학자로서 호는 미암이며 자는 인중이다.

153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등을 지내다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와 함경도 종성등에서 19년의 유배생활을 했다.

명종때에 풀려나서 선조초에 대사성, 대사간 등을 지내고 선조때에는 이조참판을 지낸 선비이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후에 좌찬성에 임명되고, 문절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연계정에서의 모현관과 연지 조망

 

이른바 무등산 닷컴의 미인열전

 

 

 

 

모현관 건너에 부처꽃 군락이 있었습니다.

 

국적 불명의 건축 양식, 일본식....?
저 아름다운 연지에 어찌하여 저런 형태의 건물을 세우게 되었는지 항상 궁금 했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연계정 흥폐 사실(璉溪亭 興廢 事實)
후학(後學) 완산(完山) 이광수(李光秀) 근서(謹書)


연계정(璉溪亭)은 문절공 미암(眉暗) 류(柳) 선생이 도(道)를 강(講)하던 곳이다.

대개 선현(先賢)의 장구가 지나간 곳에는 다 가히 비를 세우거나 누각을 세워 사모하는 마음을 표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이곳에서 쉬고 이곳에서 거처하고 이곳에 정(亭)을 짓고 또 이 정자에서 도를 강론하였으니

후학(後學)들이 공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어찌 정자의 흥폐로써 깊고 얕음이 있으랴.

정이 추성(秋成: 담양)고을 남쪽에 있는데 사방으로 산이 솟아 있어 푸르고, 골짜기 물이 난간 앞에 괴어 못이 되고

또 졸졸 흘러서 시냇물이 되었는데, 시내 이름이 연계(璉溪)이므로 선생이 그때 정자의 이름을 이 시내 이름에서

딴 것인지 또는 시내 이름이 정자로 인하여 붙여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또 선생의 자소(自號)가 연계이므로

시내와 정자가 모두 선생의 호를 따라 이름이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선생의 문집 중에 혹은 연계 권옹(璉溪倦翁)으로 칭한 것도 있으니 이로써 본다면 자호(自號)도 또한 꼭 그

러하다고 볼 수 없다. 정자는 병란에 무너지고 선생의 유고(遺稿)도 유실되어 자손이 그 유허(遺噓)만을 지키니

사방 선비들은 다만 선생의 정 터만을 알 따름이다.

중고(中古)에 후손들이 선업이 아주 떨어지게됨을 애석히 여겨 모든 선비와 함께 두어칸 집을 이 터에 짓고

글방 스승을 맞아 마을 자제들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집을 지은 지가 오래되어 퇴락되므로 또 수축하였는데

지난 무진(戊辰)년 겨울에 일국의 선비 90여인이 이곳에서 계(契)를 설립하고, 효도, 우애, 믿음, 사랑으로써

강마(講磨)하며 서로 권장하니 선생이 미친 교화가 어느 곳에서도 감발되었다.
그 터에 다시 기와집으로 중건하여 수신하고 휴식한 곳이 되니 계(契)를 닦아온지 40년에 다 말하기를

이 터는 옛 선생의 유적이니 선생의 정호(亭號)로써 현판함이 가하다 하고 가친(家親)에게 큰 글씨를 부탁하여

연계정이라 써서 걸었다.
광수(光秀)에게 명(命) 하여 그 시말을 기록하라 하기에 광수는 삼가 복명하기를『옛날 정부자(程夫子)의

안락정(安樂亭) 명(銘)에 샘물은 버려 두지 못할 것이라』하였다.

슬프다! 올바른 학문을 그 어찌 잊으리오. 오늘날 선생의 정호(亭號)로 현판하여 사람의 이목(耳目)에 새롭게 됨은

진실로 선현을 사모하는 뜻에서 나옴이니 선생의 도(道)가 장차 이 세상에 길이 밝으려는가.

 미암 종가

 종가 내부의 연지

 언젠가 한번 안을 들여다보니 목판본만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댁으로 들어서는 대나무 터널

 

동네 안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동네 가장 안쪽에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 둑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모현관의 당호는 의도인 허백련이 썼답니다.

 

 

*  2007, 8, 5 일요일  
*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소재 연계정 원림과 모현관
*  꽃뫼님, 불꽃님, 자스민님, 아침이슬님, 산골소녀님, 산마을님, 불태산님, 공명님과 그

의 분신 예은이와 민규, 그리고 첨단산인

 

 

 

 

 

 

오래 전 애기다.
괜찮은 매화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만사를 제치고 쫓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때도 봄날 매화를 쫓아 여기저기 떠돌다 우연히 모현관을 찾게 되었는데.....

사실 그 때 까지만 해도 그 곳이 미암일기로 너무나 유명한 유희춘의 본향인줄 전혀 모르고 찾아갔던 것이다.

물론 유희춘에 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우연히 찾게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 인연을 계기로  종종 그 곳에 들러 홀로 정취를 즐기곤 했었는데 요 근래 몇 년 동안은 도통 가보질 못 했었다.

그러다 오늘 삼인당에 모여 꽃뫼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내친김에 오랜만에 모현관을 찾게 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으론 미암유물전시관 건립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암 종가 앞을 어슬렁거리는데 미암의 14대 종부되시는 전북 쌍치가 친정이시라는 노혜남(78)여사께서

아들 유근영(53)씨와 함께 집으로 들어오신다. 인사를 드리고 예전에 간간히 들렀던 나를 기억하시냐고 여쭈었더니

모르시겠단다.

여기서 잠깐, 예전에 모현관을 들랑거릴 시절 미암의 종부께 들었던 애기들을 기억을 기억 해 보자면.....

사당에 보관돼 있던 미암일기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1959년  선산 유씨 문중 그리고 전라남도가 힘을 모아

석조 양식으로 지었고 ‘慕賢館’(모현관)이라는 당호는 춘설헌의 의재 허백련이 썼다는 애기도 들려주었고

돌은  화순에서 소달구지로 운반해서

당시 광주에서 제일 간다는 석공들을 불러다  건물을 신축 했다는 애길 들은 기억도 있다.
오늘 천천히 살펴보니 모현관의 문짝이 모두 교체되어 있었고 종가를 알리는 비석도 세워놓은 모습이었다.

400년 전의 미암이 남겨놓은 방대한 분량의 일기. 본래는 14책이었으나 현재는 11책만 전해지고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는데 요즘엔 번역본이 나와 시대상을 연구 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고 들었다.

미암 유희춘과 하서 김인후는 사돈간으로 재미난 애기도 많고 특히 미암의 부인 송덕봉의

대단한 지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커다란 거목과 울창한 수목에 둘러�인 연지, 그 연지를 도도하게 조망하는 자리에 지어진 연계정,
차라로 한잔 마시면서 느긋하게 감상해 보면 호남 사대부들의 삶과 그들이 꽃 피워낸

원림 문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으리라.

아래는 하서 김인후가 미암에 대하여 예찬한 시다. 고산 윤선도, 석천 임억령 등과 함께

해남5현(海南五賢) 으로 일컫는  미암의 면모를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화 유미암운 (和 柳眉巖韻)

평생에 노둔한데 병마저 따라 붙어
실낱물이 몇 번이나 황류(黃流)에 휩쓸렸노
여러 해 재환(災患)에도 웅덩이에 묻히잖고
들녘에 봄이 들어 푸른 풀 또 보네그려
하늘가에 괄목(刮目)하는 벗님의 시를 보니
딱딱한 운자� 시름 전혀 아니 했네
연원(淵源)이 믿음직하여 날로 더욱 넓고 커져
남은 물결 젖어드니 높고 낮음 따로 없네
그대 홀ㄹ고 배불림을 멀리서 상상하고
대작(大嚼) 한번 바랐으나 공포(空 )가 부끄러워
때로는 늙은 아내 담근 술 걸러 오고
어린애가 바늘 가져 낚시도 만들거던
지척에도 나가잖고 한 골짝에 엎드렸으니
돌밭의 쑥대 잔디 어느 누가 매줄건지
꽃철 바람 눈철 달은 한가한 회포라면
계산(溪山)은 병풍이요 구름 놀은 수실 일래
소원은 풍년 들어 벼 곡식 넉넉하고
사방에 먼저 잠잠 나는 화실 끊어지고
그대 몸 풀려나와 내 몸은 죽지 않아
동교(東膠)에 투신하여 촌록(寸祿)을 받게 되면
시례(詩禮)를 수습하여 아이들을 지도하며
건곤(乾坤)의 효(爻)에 곧 도달하여 보자꾸나
밤낮을 근면하여 근심 잊고 낙 생기면
맛진 술 좋은 안주 도리어 번거로워

 

 

 

 

무늬
자연의 정취와
꽃님들의 고은 미소
역사의 향기까졍
아울을줄 아는 환기님을
모든이들이 조아하는 이유를
다시금 알게 합니다..^^
2007-08-06
09:55:49

첨단산인
지성과 역사의 고장 창평
옛 선비들의 절개가 느껴질듯 배롱나무는 피어나고
고결한 빛을 지닌 연꽃의 향기에 숨죽이면서
비오던 날의 남도기행은 그렇게 흘렀네라....
2007-08-06
10:06:25

동동(김형석)
형님,형수님들이 우아하게 남도기행을 즐기시던 날
저는 오토 캠핑장에서 장대비 맞으며 열심히
텐트 보수공사며 물막이 공사며...애고 힘들어라.
올 여름 휴가는 콘크리트말고 흙에서 자보자고 생각하여
이리지리 늦게 알아보니 덕유산 오토갬핑장이 눈에 띄어서
애들과 금은화랑 다녀왔습니다.
가족여행이 항상 그렇지만
애들에게 의미있는 먼가를 보여주겠노라, 라고 생각하며
여행지를 선택하지만, 머 애들은 별로네요.아니 다시는 안간다네요..
아...열받아...열말의 배신감이 드는건 제 잘못인가요? ㅋㅋ
2007-08-06
10:38:02

김환기
덕유산 자락에서 물막이 공사라.....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려는 애절함(?)이 여기까지 전 해 오는 듯....!
열을 내리는덴 씨원한 동동주 한 사발이면 깨깟하게 쇼부를 봐 뻔질 수 있는뎅~~~~~~~~
2007-08-06
13:51:26

[삭제]

MT사랑
아름다운 모습들 멀리? 여수에서 부러운 듯, 부드러운 미소 보냅니다.
동동 아우 휴가는 잘 보내고 왔나요?
물막이 공사 알바하고 왔다고...
2007-08-08
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