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게 지상명령이요 우주 운행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모범 답안 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어디 세상의 이치가 맘 먹은 데로만 가 주는가? 일어섬이 있으면 자빠짐이 있고, 더운 밥이 있으면 찬 밥도 있는 법..................
열심히 일 하면서 때로는 일탈의 자유와 묘미를 기웃대 보는 여유, 그리고 마음을 내려놓는 훈련을 평소에 꾸준히 해 왔다면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게 된다는 우리네 인생사, 크게 일희일비 하지 않고 스트레슨지 뭔지를 줄이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오늘, 세상을 관조하는데 이골이 나고 동해바다 고래의 힘찬 기상을 소유한 울산의 도반 여러분들께서 호남 문화를 접수하러
천리 길을 한달음에 달려 제일 먼저 당도한 곳은 광산 임곡 너부실 소재, 고봉학술원 편액이 내 걸린 초록빛 대 장원 애일당,
성리학의 거유 고봉 기대승의 학문을 이으며 애일당을 지키는 이는 너무나 잘 알려진 강기욱 선생.
이 시대의 진정한 처사라 일컬어지는 그가 오늘 울산의 귀인들을 모시고 앞장을 서기로 했으니 따라가는 나로서는 여간 비싼
가이드를 공짜로 채용하고 거기다가 빈 머리에 알찬 내용을 입력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 아닌가?
염치없게도 그의 아내 되시는 김진미 선생께서 내 주신 다식과 차 까지 넙죽넙죽 받아먹고 담소를 나눈 다음
애일당의 대문을 나서 달려간 곳은 나주시에 위치한 “천연 염색 문화관” “5월의 풀빛 그 부드러운 휴식”이라 명명한 침장 박영희 선생님의 초대전에 용감 무식함 만으로 뛰어들어 여기저기
호기심을 갖고 기웃댄다. 여인의 섬세한 손길과 바늘과 실 그리고 자연의 소재와 색감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느낌의 작품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산을 좋아 하시나요” ‘그렇습니다만’..........? 아마도 등산복 차림의 내 행색을 보고 물으시는 듯, “제 작품의 모티브와 영감은 모두 산에서 얻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화순에 거주하시는데 늘 산에 오름을 생활화 하고 계시다는 박영희선생님의 말씀. 산에 관한 애기가 시작되니 이 산적의 귀가 확 열리는 건 당연지사, 모처럼 대화 상대를 만나 애기가 술술 풀려갔건만
문제는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 함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당도한 곳은 나주시 금천면 소재 “죽설헌”
구불거리는 길 끝에 시원 박태후 선생의 땀과 노고의 결정체인 울창한 수림으로 이루어진 이 시대 새로운 원림이라 일컫는
죽설헌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니 시원 선생께서 친히 우리 일행을 마중까지 나오신 모습이 보인다.
대충 인사를 나누고 먼저 이 녹색의 장원을 삥 둘러 양쪽으로 기와가 켜켜이 쌓여진 길을 따라 한바퀴를 돌아본다.
울창한 대숲을 지나 각종 수목이 식재된 좌우의 풍광과 연못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히 환상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없다.
입구를 가로지른 대나무를 들었다 놓으며 탱자나무와 꽝꽝나무가 좌우로 도열한 구부러진 미로같은 길을 한참을 따라가니
마침내 비밀스런 원림 가운데 자리한 죽설헌이 나타난다.
시원 선생의 부인이신 김춘란 선생님께서 팽주를 맡아 부지런히 차를 우려 내주시며 멀리서 온 이들을 편케 해 주시는 가운데
대화가 무르익고 각종 농과 함께 웃음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방안에 내걸린 참새 연작이 매우 정감 있게 다가오고 힘찬
폭포에서는 기운생동이 절로 우러나오는데 시원 선생의 작업실을 지나 뒷방에 모셔진 목재 달마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친견과 함께 이 집으로 오기까지의 내력이 설파되니 모두들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는 표정 들 이다.
끊임없이 방문객이 들어서는지라 더 이상 시원 선생 내외를 붙잡는 무례를 범 할 수는 없는 일,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위해서라도
여기서 그만 인사를 나누고 일어서야 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창 밖의 연못, 무성한 수초 사이로 황소개구리가 퉁방울 눈을
내놓고 재촉하고있었다,
"어 ~여 들, 그만 일어나."..........!
한가지,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들어오는 입구에 내걸린 "사진촬영금지"란 안내를 보지 못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설치다가 선생의 점잖으신 제지를 받는 결례를 범 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소인배의 무례를 부디 용서하시길.........
나주 땅을 벗어나 당도한 곳은 담양 소재 “송강정” 계산풍류의 산실이자 누정문화의 보고라 일컫는 담양 땅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다. 제일 먼저 영남인들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대목은 역시 예의 그 커다란 비석, 건물 바로 옆에 위압감을 주며 서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답답하고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이 시대 인간들 수준을 잘 말 해주는 징표라는 생각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음은 계산풍류의 좌장격인 송순의 “면양정”에 당도한다. 상당한 굵기의 굴참나무가 울창한 동산, 담양 읍내쪽으로 시야가 툭 트인 시원함을 선사하는 천혜의 자리, 사면에 마루를 둘러치고 한 가운데 조그만 방 한칸으로 구성된 남도 특유의 정자, 일행 모두 누마루에 올라 정자문화의정취를 즐기면서 송순의 그림자를 더듬고 있노라니 계산풍류의 맥을 고스란히 잇고 있는
강기욱 선생께서 자상하게도 귓전에다 이런저런 성산가단의 애기까지 들려 주신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달구지 바퀴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좀 나야 하리라. 악셀을 밟는 발끝에 있는대로 힘을 주어 구불대는 광주호반 길을 따라 서하당에 들어서 식영정을 오른다. 그 옛날 누구의 그림자가 이 자리에 쉬었던가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성산가단의 본부격인 식영정에서 영호남의
풍류객들을 자처하는 도반들이 모여앉아 송림사이로 벌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석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소중하고
멋지고 귀한 자리라 여겨지니 차라리 가슴까지 뭉클할 지경이었다.
가사문학관 뒷길을 따라 정송강의 후손이 아직도 살고 있다는 건물에 들어선다. 울창한 대숲 속에 자리한 동네, 정겨운 돌담과 소담한 덩굴장미가 어우러진 모습은 감상의 포인트.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나와 자미탄과 조어대를 조망하는 곳에 지어진 취가정과 환벽당을 감상한 연후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
하늘의 자미원이 지상에 완벽하게 구현되었다는 소쇄원에 당도, 소쇄처사 양산보의 유지를 받들어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며
소쇄원을 지켜온 양재영 선생 그리고 어둠과 적막을 광풍각 작은 방으로 동시에 초대하여 자미원의 문턱을 넘는다.
허나, 내 어찌 천상의 자미원에서 펼쳐졌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여기 죄다 펼쳐놓을 수 있으리오,
촛불 하나 켜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억겁의 시간동안 대화는 이어져 가리라. 소쇄원에만 5년을 거처했다는 강기욱 선생, 당신의 생애에서 그 때가 가장 소중했었노라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원효계곡과 자미탄을 흐르는 핵심을 움켜쥐고 하산하여 천산대학에 입학, 열심히 산에 오르다 올 새해 벽두에 깨달은 바가 있어
잠시 휴학 중이시라는 말씀과 함께 영남의 도반 여러분들께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려 무진 애를 쓰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가지, 소쇄원은 분명한 사유재산이요, 양씨 개인의 공간이기도 하다. 일부 지각없는 자들 때문에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만다는 양재영 선생의 말씀이 가슴을 친다.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라는 조상의
유훈과 정신을 되새기며 오늘도 유지와 보수관리에 심혈을 다 하시는 모습은 존경을 넘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란 사실 한 가지는 관으로부터의 지원이 단 한 푼도 없는 가운데 이 소쇄원을 공개하면서 꾸려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밤늦은 시각, 여기는 축령산 자락 세심원 편백방.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짙은 어둠이 내린 축령산의 편백림을 거쳐 이곳으로 이동한 일행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울산으로부터
공수해 온 고래 수육과 세심원의 팔목주를 기울이며 오늘 하루의 군더더기를 모조리 씻어낸다. 청담 선생의 유쾌한 애기가 좌중을 흥겹게 하니 하루의 피로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하늘의 별들도 축령산의 담소에 동참하는 듯....!
이튿날 새벽 세심원 너머 청량산 자락에 자리한 문수사로 산책을 나간다. 그야말로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단풍숲을 가로질러 산사에 들어서 약수 한 모금으로 심신을 정갈히 한 연후 숲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 감상을 끝으로 세심원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친 다음 올해의 차 품평에 들어간다. 각종 차의 풍미를 여유롭게 즐기니 어제의
숙취일랑 저만치 달아나고 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늘의 마지막 일정 “금곡숲속미술관”에 당도 선화 감상에 들어간다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을 일지의 선화감상을 끝으로 영남 도반 여러분들의 호남 탐방 모든 일정이 끝나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게 된다.
~ 후기 ~
호남 풍류의 진실을 영남에 전 하시겠노라 앞장을 서신 이의 성함은 류제원 선생님. 얼마나 유쾌, 상쾌, 통쾌하게 세상을 살아오셨는지, 아님 또 다른 무슨 비결이 있는지 몰라도 적어도 당신 연세에서 마이너스 15는 해야
적정한 수준의 얼굴이라 믿습니다.
다방면으로 너무나 풍부한 견식과 역량을 지니시고 거기에다 한 유머로 조용조용 상대를 끌어들이시는 신동연 선생님. 담에 뵐 땐
저도 미국식으로 끌어안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사업가이신 박대현 선생님, 호남의 문화를 열정적으로 담아가시려는 의지가 너무나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남인 특유의
대인다운 기질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성함을 여쭙지 못한 우남전기 대표 여걸 선생님, 초면에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으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섬세함으로 살피시는
모습이 인상에 남습니다.
아침 일찍 변산을 향해 떠나신 안춘성 부부 그리고 자제분, 부디 아름다운 여행이셨길 바랍니다.
별 역량도 없고 내용도 없는 이 머나먼 호남의 문화를 접 하시겠다고 불원천리 찾아와주신 도반 여러분께 정성껏 대해 드리지 못한
허물,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사라고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과 웃음 그리고 열정이 넘치시는 나날이 이어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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