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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반 고흐의 정원

Vincent's Gardens

반 고흐의 정원


랄프 스키 Ralph Skea 지음  *  공경화 옮김


















Introducteon

삶은 그 어느 곳보다 정원에서 펼쳐진다.


빈센트 반 고흐는 정원을 소유한 적이 없으니, '빈센트의 정원'이라는 제목은 모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빈센트는

땅 한 평 소유한 적 없어도 정원을 주제로 한 드로잉과 채색화를 많이 그렸다.잘 가꾼 예쁜 정원이 있는 집에서 자랐고,

고향인 북부 브라반트의 자연과 시골의 아름다움을 처음 접한 곳도 바로 정원이었다.

 네덜란드 사람인 빈센트가 늘 식물에 관심을 가진 것읁 특이한 일이 아니었으며, 동생 테오에게 보낸 초기 편지에는 정원과

공원 이야기가 넘쳐난다. 사실 빈센트는 청년 시절 영국에 살 때 런던의 외곽 지역 아일워스에서 정원 조경 일을 도왔다.

1880년 그는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정했고, 벨기에 퀴에스메스의 첫 화실은 너무 좁고 어두워서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그는 화실 대신 정원을 그림 실력을 키울 조용하고 외진 장소로 삼았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필요성과 자연 소재를

탐구하고 싶은 강한 욕망 때문에 그는 짧은 화가 생활 - 고작 10년 - 중 다양한 종류의 정원을 찾아다녔다.







병원의 나무와 관목

우브지(그물 무늬를 넣은 종이, 레이드지보다 좀 더 가는 선이 보인다 - 역주)에

 붓, 희석한 오일, 잉크와 검은 분필 / 생 레미, 1889년 5~6월








소나무가 있는 병원

생 레미, 1889년 11월








해바라기가 있는 채마밭(부분)

1887년 여름








눈 내린 목사관 정원의 세 사람

우부지에 스크레이프, 갈색 펜과 붓 / 누에넨, 1883년 12월

정원에서 일하는 세 사람은 빈센트의 어머니 안나, 누이동생 빌과 리스로 알려져 있다.


빈센트는 10년간의 화가 생활 중 20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방대한 양의 작품 중에는 정원과 공원 그림도 많다. 그 뿐 아니라 편지에 동봉한 정원과 공원 스케치도 많다.







눈 내린 목사관 정원

누에넨, 1885년 1월


이 분위기 좋은 그림도 눈 내린 후의 한적한 누에넨 정원을 보여준다.

눈 쌓인 수평적인 정원 가장자리가 구도를 양분하는 반면 그림의 강한 원근법의 토대를 제공한다.

빈센트는 교묘한 흰 칠로 과일나무의 가지에 쌓인 눈의 복잡한 패턴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서는 빈센트의 초기 멘토인 안톤 모베같은 헤이그파의 영향이 느껴진다.






목사관 정원

우부지에 갈색 펜과 연필 / 누에넨, 1884년 3월


이 드로잉은 섬세한 가는 평행선을 그리는 기법으로 나무와 산 울타리의 입체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갈색 잉크는 3월의 특징을 표현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요양원 정원의 계단

마분지에 희석한 오일 잉크, 짙은 색 분필 / 생 레미, 1889년 5~6월







공공 정원 입구

아를, 1888년 9월






446번 편지의 스케치

펜과 잉크 / 누에넨, 1884년.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동동한 그림으로 누에넨의 목사관 정원을 묘하한 스케치다.

그는 모티브를 '늦은 오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광경'이라고 기술했다.






몽마르트르의 채마밭

파리, 1887년 2~3월


빈센트는 파리에 살면서 언덕 중턱에 있는 이 몽마르트르 채마밭 정경을 그렸다.

지평선에 있는 세 대의 풍차 중 두 대는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밝은 색과 짧은 붓 자국과 작은 점을 이용한

화법은 인상파와 '디비조니슴' 혹은 '점묘파'로 불린 학파의 영향을 보여준다.

대형 직사각형 캔버스 그림이 팔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빈센트는 가로가 긴 캔버스를 좋아했다.







요양원의 정원

생 레미, 1889년 5월.


빈센트가 자발적으로 요양원에 입원한 직후 그린 작품.

인근 아를에서 정신이 피폐해지는 상처를 겪은 화가가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었던 풍요로운

정원의 구석을 보여준다. 검은 선들이 복잡하게 얽히 이 그림은 빈센트가 채색화와

드로잉 기법을 혼용하는 데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꽃이 핀 정원

아를, 1888년 7월. 


 빈센트는 아를 부근에서 만나는 시골 정원에서 큰 기쁨을 맛보았다.

색감이 화사한 풍경에 행복을 느끼며, 북부 프랑스에서 그린 정원들보다 아름답다고 믿었다.







꽃이 핀 밤나무

파리, 1887년 5월.


5월 파리의 큰길과 공원은 밤나무 꽃이 한창이다. 다른 방향으로 향한 붓놀림이 이미지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신앙심은 여전히 깊었다.

이런 감정 때문에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의 바탕인 범신론에 가까운 사상을 가졌을 것이다.

표현력이 뛰어난 기법을 이용해 작품에서 유사종교적인 특징을 암시하는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덜란드의 꽃밭

헤이그, 1883년 4월. 


 빈센트가 밝은 색상의 사용을 탐구한 것이 파리에 정착한 1886년이라고 하지만,

이 그림은 그가 보색에 관심을 가진 초기의 예를 보여준다. 또 격자형 꽃밭의 묘사가 눈에  띈다.

이것은 미묘한 원근법을 차용할 때 점점 자신감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낫으로 풀을 베는 소년

레이드지에 검은 분필, 목탄, 투명*불투명 수채 물감 / 에덴, 1881년 10~11월


이 드로잉의 모델은 고흐 집안의 17세 정원사 파에트 카우프만(1864~1940)이었다.

배경은 목사관 정원이지만 소년의 옷차림으로 볼 때 화실에서 포즈를 취했을 거라고도 추측한다.







정원 구석

레이드지에 연필, 잉크, 수채화 물감 / 엔덴, 1881년 6월. 

 

기술적으로 원근법의 문제가 드러나 있다.

대각선의 정원 담이 떠받치는, 아래서 보이는 나무 그늘의 지붕 널판이 특히 그렇다.







옹이 진 사과나무 근처의 정원사

펜으로 그린 석판화 / 헤이그, 1883년.


  빈센트는 헤이그에서 그림 실력을 쌓으면서 이 석판화를 완성했다.

 모델로 삼은 노인의 집에서 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렸다.

정원을 가꾸는 이의 구부정한 모습이 뒤틀린 나무의 메아리 같다.







255번 편지의 스케치

펜과 잉크 / 헤이그, 1882년







누에넨 목사관

누에넨, 1885년 10월.


빈센트의 부모는 1882년 8월 누에넨 목사관으로 이사했다.

이 그림은 산울타리가 있는 앞쪽 정원, 목사관의 대칭적인 외부, 경사진 지붕울 보여준다.

오른쪽에는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 있다.







목사관 정원

우브지에 석묵, 펜, 잉크 / 누에넨, 1884년 3월


누에넨의 정원을 그린 이 강렬한 드로잉은 펜자국으로 강한 원근법을 나타내며,

지평편에 걸린 낡은 교회로 시선을 이끈다.

겨울 하늘에 몸을 뒤틀어 솟은 나무들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목사관 정원

누에넨, 1884년 5월.


정원 끄트머리, 꽃밭이 수평을 이루어 장식띠 같은 디자인이다.

극적으로 중앙에 위치한 낡은 교회 탑이 눈에 띈다. 교회 탑은 곧 허물어질 것이다.

혼자 있는 여인과 어둠침침한 색상, 버려진 교회의 묘한 분위기가 더해져 우수에 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니에르의 보아에르-다르장송 공원에서 연애하는 커플들(부분)

파리, 1887년 5~6월.


친구인 폴 시냐크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 그림의 스타일은 점묘법에 대한 빈센트의 개인적 해석을 보여준다.

꽃핀 나무들에서 그가 프로방스에 살면서 그리게 될 유명한 과수원 연작을 예감할 수 있다.








뒤쪽에서 본 집

엔트위프, 1885년 12월. 


 빈센트는 엔트위프에서 사는 동안 도시 풍경에 끌렸고,

 이 작품에서는 눈 내린 후 동네의 빼곡한 뒷마당과 정원 풍경을 그렸다.








정원을 걷는 여인

파리, 1887년 6~7월. 


 이 그림에서 빈센트는 풀과 꽃을 풍부한 테피스트리 효과로 묘사해낸다.

여인의 머리가 상단 끝에 닿아있다.

이 독특한 구도가 정원이 완만한 경사면에 있다고 상상하게 한다.








몽마르트르 언덕

레이드지에 목탄과 분필 / 파리, 1886년.


 언덕 비탈에 있는 채마밭 풍경.

지평선의 작은 헛간들과 풍차 세 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드로잉이다.








몽마르트르의 채마밭

파리, 1887년 4~5월. 


 몽마르트르 비탈의 채마밭 정경은 짧지만 엄청난 작품을 남긴 빈센트의 화가 인생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신중한 붓질과 점으로 구성된 그림에서 드로잉과 채색화 기법의 혼용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아니에르으 보이에르-다르장송 공원길

파리, 1887년 봄. 


 보색의 작은 점과 면을 칠하는 쇠라의 신인상파주의 기법을 유난히 칭찬했다.

 이 화폭에서는 신인상파 기법과 색채 이론에 대한 그의 해석이 가볍고 화창한 분위기를 준다.








아니에르의 보이에르-다르장송 공원에서 연애하는 커플

파리, 1887년 5~6월. 188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빈센트는 배우이자 감독인 앙드레 앙투안이 몽마르트로의 리브르 극장에서 주최한

 전람회에 이 대작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신인상파인 쇠라와 시냐크의 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구도상으로 공원과 하늘이 거의 똑같이 나뉘며,

짧은 대각선의 붓 자국으로 표현된 하늘은 가벼운 바람의 느낌을 준다.








뤽상브르 정원의 테라스

파리, 1886년 6~7월.


이 그림에서 인상파 기법 - 빠른 붓놀림과 밝은 색 - 을 실험한 빈센트는

클로르 모네와 동료들의 작품에 감탄했다.









양귀비가 핀 들판(세부)

생 레미, 1889년 6월 초.


네덜란드의 전원에서 유년기를 보낸 빈센트가 프로방스의 농가에 끌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색감 넘치는 정원들을 즐겨 그렸다. 이 정원은 드넓은 들판에서 마치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목욕탕의 정원

우브지에 석묵, 그 위에 갈대 펜, 펜, 붓, 잉크. / 아를, 1888년 8월.


이 목욕탕 드로잉에서는 큰 해바라기밭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빈센트는 다양한 펜과 붓 자국으로 활기차게 자라는 모습을 표현한다.

프로방스에서 그린 다른 드로잉들처럼 맑은 하늘이 일련의 작은 점으로 묘사되어 있다.

길에 앉은 고양이가 이 독특한 드로잉에 가벼운 분위기를 부여한다.






공공 정원(시인의 정원)

아를, 1888년 9월.


빈센트는 라마르틴 광장 인근 공원의 나무가 우거진 구석과 푸른 풀밭에 매혹되었다.

그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여기서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들이 산보했다고 생각했다.

작품 제목도 거기서 나왔다.


하지만 그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않고 정원 자체의 시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가을 하늘을 암시하는더ㅔ 노란색을 사용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버드나무와 막 자란 풀

아를, 1888년 7월


정원의 나무들과 덤불을 테두리 삼아 막 자른 풀밭이 펼쳐져 있다.

잘린 풀은 밭에 마르도록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패턴을 강조하기 위해 빈센트는 잘린 풀을 대담한 붓질로 마무리 했다.








산책하는 커플과 공공 정원(시인의 정원)

아를, 1888년 10월


'시인의 정원' 연작 중 세 번째 작품.

이 화폭에서는 공원을 거니는 남녀를 표현했다.

 빈센트는 정원을 거니는 커플을 '연인'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었다.

(영감을 얻은 낭만적인 문학 작품의 장면과 이런 공원 그림을 하나로 보았을 것이다).








버드나무와 잔디밭

우브지에 석묵 위 갈대 펜과 잉크 / 아를, 1888년 7월 31일~8월 3일


섬세한 터치의 표현 방식이 정원의 형태와 결을 나타낸다.

우아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나뭇잎, 풀, 짙은 그림자와 밝은 빛이 표현되어 있다.









꽃이 있는 정원

아를, 1888년 8월


빈센트는 색감이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아를 시골의 농가 정원들에 감탄했다.

그는 이 한적한 곳에서 적극적으로 물감을 써서 조화로운 보색 효과를 탐구할 수 있었다.








농가

아를, 1888년 6월


빈센트가 아를에 체류할 때 방문한 농가 중 한 곳을 표현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심은 전면의 선홍색 꽃들은 담 뒤편에 정원이 있음을 암시한다.








병원 안뜰

아를, 1889년 4월


빈센트는 흰색 회벽, 중앙의 연못, 회랑이 있는 안뜰이 고대 이슬람 정원을 연상시킨다고 느꼈다.

그는 누이 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덟 군데 꽃밭에 핀 꽃을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라일락

생 레미, 1889년 5월


생 레미 요양원에 도착한 직후, 빈센트는 상태가 좋아졌다고 느끼고

담장이 있는 정원에서 라일락 나무의  떨리는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담장이 둘러진 요양원 정원의 소나무들

제이드지에 석묵, 펜, 붓, 잉크 / 생 레미, 1889년 5~6월


담장이 있는 요양원 정원의 남서쪽 구석을 그린 작품.

정원은 세 가지 높이로 이루어진다. 나무 기둥, 나뭇가지, 나뭇잎의 선들이 빙글빙글 도는 효과를 연출한다.

나무 담장, 땅바닥의 색조를 전달하는 데 연필을 사용했다.

중앙에 몸을 굽힌 환자의 모습은 중요한 관심 대상의 역할을 한다.

왼쪽 구석에 있는 붓꽃들은 세밀한 유화의 바탕이 되었다.








요양원 정원의 나무들

생 레미, 1889년 10월


남자 병동 옆의 소나무와 삼나무가 패턴을 이루며 청명한 하늘에 솟아 있다.

특이하게도 파란색을 써서 나무 세 그루으 줄기를 그렸고, 이는 보색인 주황색과 대조를 이룬다.








요양원의 정원(낙엽)

생 레미, 1889녀 10월


요양원에는 빈방이 30개나 있어서 빈센트는 화실로 쓸 방 한 칸을 더 얻었다.

이 가을 풍경화처럼 요양원 정원을 시적으로 해석해서 그린 고도 그 화실이었을 것이다.


자진해서 '생 폴 드 무솔' 요양원에 들어간 빈센트는 정원에서의 작업이 불행을 덜어줄 거라고 믿었다.

발작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아름다운 정원 덕분에 영혼은 잔잔했다.


그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정원에서 그린 작품들을 받으면 내가 이곳에서 지나치게 우울하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게다.'


그러므로 요양원의 정원은 화가에게 정서적으로 대단히 중요했다.

천국 역할을 했고, 요양원에 머문 동안 네 차례나 정신 발작에 시달린 후

감시의 눈을 피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용한 은신처가 되었다. 빈센트의 위대한 작품 중 일부는

요양원 정원에서 탄생했다. 정원은 피난처였고 그곳에서 폭넓은 자연 모티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요양원 정원의 소나무들

생 레미, 1889년 10월.


큰 소나무들이 화폭을 메운다.

하늘에 솟은 나뭇잎 달린 가지들이 화면으 3분의 2를 차지한다.

12~13세기에 수도원으로 지은 요양원 정면이 구도의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

환자들의 작은 체구가 거대한 나무들의 크기를 강조한다.








요양원 정원의 분수

우브지에 펜, 잉크, 갈대 펜, 갈색 분필 / 생 레미, 1889년 5~6월


요양원 정원을 그린 이 훌륭한 드로잉에서는 둥근 분수의 배경으로 소나무들이 서 있다.

화실이 있는 남자 병동으 북쪽 입구 가까이 분수가 있었다. 다양한 두께의 터치로

 다채로운 형태와 표면 질감을 나타냈다. 마른 잉크를 종이에서 긁어내 그림의 초점인 물줄기를 표현했다.

많은 드로잉 중 테오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요양원 정원

생 레미, 1889년 12월.


요양원 원의 테라스에 초점을 둔 이 작품에는

소나무와 돌 벤치, 시든 장미 옆을 걷는 환자 셋이 그려져 있다.

빈센트는 번개를 맞고 부러진 나무의 그루터기에 특히 매혹되었다.

문학적 상상력은 이를 우쭐대는 남자의 패배로 보았다. 그림에서 그는 은근히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누이 빌을 위해 이 작품은 원래 크기로 모사하기도 했다.








요양원 정원의 아이비와 나무들

생 레미, 1889년 7월


덤불은 빈센트가 선호하는 모티브였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요양원 정원에서 그는 아이비로 뒤덮인 나무줄기의 이미지를 그렸다.

빈센트는 일부 편지에서 아이비를 영원한 사랑으로 보기도 했지만, 다른 편지에서는 아이비가 본래

독성을 지녔다는 믿음을 암시했다. 여기서는 아이비가 어떤 상징성을 갖든,

짙은 덧칠 효과로 빼곡한 덤불과 그늘을 잘  표현했다.








지는 해와 소나무들

생 레미, 1889년 11월


빈센트는 생 레미 요양원에 있을 때, 소나무는 환상적인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정원 담장 뒤에서 마무리된 이 그림은 세월에 시달린 소나무 군락에 초점을 맞춘다.

빈센트는 저녁 하늘에 뻗은 가지의 줄무늬가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믿었다.










붓꽃

캔버스에 종이 유화 / 생 레미, 1889년 5월.


빈센트는 붓꽃의 조각 같은 형태에 감탄했다.

이 그림에서는 붓꽃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붓자국이 폭발할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요양원 정원의 돌 벤치

생 레미, 1889년 11월


요양원 환자들의 삶은 쓸쓸하고 지루했다.

흰 나무와 벤치가 있는 황량한 풍경은 화가를 포함해 환자들이 경험하는 고독을 암시하는 듯하다.

기교 면에서 가을 색조가 감도는 화폭은 빈센트으 색채 표현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6월


빈센트는 혼연스러운 마을 집들의 정원을 즐겨 그렸다.

전경의 꽃과 돌담은 그가 이웃한 정원에서 본 풍경을 그렸음을 암시하다.








정원에 있는 마르게리트 가세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6월


집 안 정원에 있는 닥터 가세의 딸 마르게리트를 그렸다.

꽃핀 정원에 있는 여자 한 명은 인상파가 선호하는 모티브였지만, 빈센트의 표현 기법은

표현주의적인 인물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닥터 가세의 정원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5월


가장 독창적인 정원 그림 중 하나.

닥터 가세의 인상적인 꽃핀 정원 구석에서 만난 몇 가지 요소만으로 극적인 구도가 연출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빈센트가 알로에라고 설명한 식물의 뾰족한 잎들이 겹치는 부분이다.

전경에는 가지치기를 많이한 나무가 버팀목으로 서 있다.

흔들리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이웃집 선홍색 지붕과 대조를 이룬다.

빈센트는 극단적인 원근법을 이용해 이런 요소로 잊지 못할 이미지를 창출했다.








초가집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6월


오베르와 인근 시골으 초가에 딸린 텃밭은 흥미로운 소재가 되었다.

생의 마지막 70일간 빈센트는 대단한 속도와 집중력으로 채색화 75점과 드로잉 50점을 작업했다.








페르 필롱의 집

레이드지에 연필, 펜, 갈색 잉크 /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5월


빈센트는 마을의 전원 풍경을 그렸을 뿐 아니라, 새집과 중산층의 가옥도 잠재적인 소재로 매력을 느꼈다.

이 그림은 우측으 꽃핀 밤나무에 일부 가려진 큰 집 중 한 곳에서 제목을 땄다.

복잡한 빗금 패턴을 이용해 나뭇잎과 꽃을 표현한 반면, 집들과 담장 두른 정원들은

구불구불한 마차 같이 길이 난 길과 경계를 이룬다.

이 교묘하게 묘사적인 드로잉으 틀은 박공, 지붕, 정원 담장의 건축적인 요소로 이루어진다.







오베르 인근의 농가들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7월


이 그림은 빈센트가 오베르에서 큰 효과를 본

 '더블 스퀘어(빈센트가 죽기 직전에 쓰던 50×100cm 캔버스를 이르는 용어)' 캔버스의 한 예다.

마을 서쪽에 군락을 이룬 - 일부는 반쯤 방치된 - 초가들을 묘사했다.

이 지역에는 가장 유서깊은 집들이 남아 있었다.

왼쪽 하단으 담장 위로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 네 그루는 파리 채마밭 작품을 연상시킨다.

하늘을 대충 처리한 점을 두고 학자들은 이 작품이 미완성작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도비니의 정원

리엔에 유화 /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6월


리넨에 그린 이 작품은 빈센트의 첫 도비니의 정원 그림이다.

정원 일부만 묘사했지만 정사각형의 화폭에서 강한 공간 효과를 연출했다.

전체적으로 인상파적인 기법을 써서 - 강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마루리를 피해 -

자연스러운 스케치의 느낌을 담았다.








도미니의 정원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6월


생의 몇 주 사이에 그렸으며, 오베르에 도착한 후 고심했던 작품이다.

도비니의 세련된 정원에서 산책하는 도비니 부인(1817~1890)이 보인다.

그의 부인이 살았다. 어머니가 가꾸던 브라반트의 정원들을 연상시키는, 편안하고 소박한 정원이다.

사실 사제관 정원 그림의 연작으로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다만 드물게도 빈센트는 작품에 제목을 기입했다.

구도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잔디밭을 떠도는 고양이와 시각적인 대조를 이룬다.








오베르의 정원

오베르 쉬르 와즈, 1890년 7월


빈센트는 오베르의 세련된 새 주택 단지에 흥미를 느꼈다.

이 장식적인 작품에 묘사된 굽이치는 정원은 19세기 후반 정원의 전형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잔디밭의 공들여 모양을 낸 부분, 정원에 옮겨 심은 단색 식물, 생생한 패턴의 조경은

빈센트가 짧은 줄과 정확한 점으로 표현한 신인상파주의적인 기법과 맞아떨어진다.

중앙 통로에 놓인 물체를 묘사한 것은 특이한 배치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위 내용 전부는 '반 고흐의 정원'에서 발췌한 것으로,

별다른 언급이 없는 모든 작품은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린 것이다.




Promenade - Aeol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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