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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老子의 世界 제5장 / 제6장

※ 남송(南宋) 화가 마원(馬遠)의 <고사관록도(高士觀鹿圖)>. 일명 <송계관록도(松溪觀鹿圖)>

 

 

 

 

 

 

원대(元代) 화가 손군택(孫君澤)<방마원송하고사(倣馬遠松下高士)>

 

 

 

 

 

 

老子의 世界 

 

제5장

 

 

텅빈 도의 무궁한 조화

 

 

 

天地不仁하여 以萬物爲芻狗하고 

 聖人不仁하여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인저

  虛而不屈하며 動而愈出이라.

多言數窮하나니  不如守中이니라. 

 

 

芻拘(추구) : 제사 모실 때 쓰는 짚으로 만든 개. 한 번 쓰고 버림.

橐籥(탁약) : 쇠를 달구기 위하여 바람을 불리는 풀무.

數窮(삭궁) : 자주 궁색하다.

 

 

 

 

진리는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으므로

만물의 성질 따라 맞게 거느릴 수 있고

성인은 사정(私情)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사람의 특성 따라 가르친다.

 

 

진리는 마치 하늘과 땅 사이인 듯

풀무 속처럼 텅 비어 있도다.

비어 있되 고갈됨이 없고

움직일수록 조화를 나투도다.

 

 

말이 많으면 도리(道理)에 어긋남이 많으니

비워 고요함을 지킴만 같지 못하도다.

 

 

 

 

 

- 해설 -

 

여기서 천지는 진리다. 진리는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만물로부터 자유롭다.

인간은 소유옥이나 주견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정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천지는 미추선악(美醜善惡) 등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죽일 것은 죽이고

살릴 것은 살리는 등으로 만물을 운영 관리한다.

 

진리는 누구의 편이 아니다. 진리는 사람이나 만물의 형편 따라서 알맞게 대응한다.

그러므로 불인(不仁) 즉 인간처럼 인정에 끌리지 않는다.

성자도 진리의 작용을 닮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친, 불친 등에 얽매여 그릇 생각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성자는 늘 인간환경이나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풀강아지처럼 함부로 취급한다는 뜻이 아니라 걸리고 막힘이 없이 자유롭게 큰 덕, 큰 은혜,

참다운 사랑을 배풀 수가 있는 것이다.

 

풀무의 통은 비어 있고 피리의 속은 비어 있다. 비어 있으면서 바람을 불리어 불을 일으키고,

피리통에서는 갖가지 오묘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처럼 진리도 하늘과 땅 사이처럼 비어 있으되

만물을 화육(化育)시키는 조화를 부린다. 첫장에서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고 했는데 텅 비어 있는

진리의 그 곳에서는 쉴 줄 모르는 은혜가 생산되고 조화가 생성되는 원천이라는 것을 묘사하였다.

 

원불교의 일원상서원문에는 유무초월(有無超越)의 생사문(生死門)이라고 했다.

진리는 만물에 대하여 있고 없는 것, 착하고 악한 것, 좋고 나쁜 것, 가치있고 없는 것 등으로부터

초월한 입장에서 만물을 내고 들인다는 뜻이다.

 

"진리는 시작도 끝도 없이 지칠 줄 모르게 만물에 작용한다."

노자는 이런 설명을 하고 진리의 구체적인 설명이 지나쳤나 하고 겸손해 하였다.

그리고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이런 설명을 듣고는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부질없이 상상력만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되어서 자문자답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노자 스스로 진리의 텅 빈 그 자리, 생각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분별과 사념망상이 없는

그런 진리 자리에 귀의하는데 주력해야 하겟다는 말뜻으로 생각된다.

 

공자도 제자들에게 "내가 너무 말이 많구나. 이제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고 하였을 때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것이냐는 제자의 반문에 "천지가 언제 말하더냐" 하신 말씀이 있다.

 

성자들은 말 이전의 생각, 생각 이전의 그 마음인 그 본래 자리를 사모하고

그곳에 귀의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老子의 世界 

 

제6장

 

 

진리는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谷神不死하니  是謂玄牝이요

 玄牝之門  是謂天地根이니

 綿綿若存이나

 用之不勤이로다.

 

 

 

 

谷神(곡신) : 도(道)의 다른 이름이다. 골짜기의 비어 있음과 그 신비로움의 속성의 뜻으로

진리는 비어 있으되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비로움을 간직한

살아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모습이다.

 

玄牝(현빈) : 현묘한 여성, 여성은 신비하게도 아이를 생산한다. 진리가 신비하게도

만물을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 듯하다.

 

綿綿(면면) : 실같이 끊임이 없이 계속되는 모습.

 

 

 

 

텅빈 진리의 골짜기여

영원히 소멸됨이 없네.

그것은 신비로운 여인이로세.

 

 

여인의 신비로운 그 문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과 같네.

 

 

있는 듯 없는 듯 끊임 없이 있게 하되

그것을 쓸때는 부지런치 말아야 하도다.

 

 

 

 

 

- 해설 -

 

골짜기는 이 산과 저 산의 빈 공간을 말한다. 신(神)은 밝음, 광명, 조화 등을 묘사한 말이다.

빈 터전에 갊아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도를 형상화한 용어이다.

진리는 형언할 수 없되 무진무궁한 조화력(造化力)이 용출한다.

암소의 그 곳에서 송아지가 생산된다. 진리라는 존재에도 암소처럼 무엇이 내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암소의 그 곳에선 신비하게도 송아지가 태어나지 않는가 진리 모습에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진리 그 자체는 뚜렷하게 있다는 표현으로는 적절치 못하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 옛날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없는 듯 있는 듯 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였다.

형상이 있는 사물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절대적 존재는 우리의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고 모호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작용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이 작용한다.

인간의 작용은 열심히 하다 보면 쉬지 않고는 안 된다. 우리들의 사랑은 간단이 있다.

진리의 작용과 인간의 인위적 작용을 비교하여 반성하여야 하겠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 즉 수도(修道)하는 사람들은 이 장을 읽고 수도의 표준을 잡아 봄직하다.

 

내 마음을 관찰해 보면 분명한 내 마음이 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미워하는 것, 사랑하는 것,

가슴 깊이 새겨진 인상 등은 또렷하다. 그러나 또렷한 생각들을 싣고 있는 바탕은 무엇일까?

우리 땅을 보면 그 땅속에는 무수한 종자들이 박혀있다. 그것들이 때를 만나면 싹이 튼다.

마찬가지로 마음종자도 호불호(好不好)의 마음이 분명하건만 그 바탕을 알 수가 없다.

그 바탕의 마음은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마음이다. 이것을 무심이라고 하고 이것을 진공이라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평소에 잃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며 그런 마음을 지키는 것을

선심(禪心)이라고 하며 도심(道心)이라고 한다. 그 마음을 찾아 지키면 바로 극락이요, 천국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곡신(谷神)인 처정(虛靜)한 본래의 마음을 잘 지키는 깊은 수련을 쌓아가고,

또 곡신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는 것이니, 그것을 욕심으로 죽이거나 사상(思想) : 觀念)의 노예가

되어서 가리게 하거나 그러지 말고 실처럼 끊임이 없이 계속하도록 소위 양성(養性)하여야 하는 것이다.

 

수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본심을 늘 보고 그것을 보존 하는데 온갖 정성을 드려야 한다.

그 본성의 보존의 함량에 따라서 깊은 지혜와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물을 만나서 작용을

 자주하고 많이 하면 보존 마음이 그만큼 줄어들고 훼손된다. 그러기 때문에 작용을 부지런히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큰 수도인은 작은일에 마음내지 않고 불필요한 일에 개입하지 않고 자주 동하지 않아서

그 본심을 지키는데 공을 들이는 것이다.

 

 

 (역해 - 耕山 장 응 철 원불교 종법사)

 

 

 

 

 

 

 

추야월(秋夜月) 이생강 단소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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