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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꽃불잔치와 음악감상

                                                                                                                                       

                                                                                                                                                               2011. 5. 15

 수만리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안양산 라인

 

 

 역시 마을회관 마당에서 바라본 만연산 라인

 

 

 

수만리 '소요당'에 피어난 각시붓꽃

 

 

 

 안양산 철쭉

 

 

 

 

 

 

 

 

 

 

 

 

 

 

 

장군봉과 무등산 천지인을 배경으로

 

 

 

오른쪽은 화순읍내

 

 

 

 

 

 

 

 

 

 

 

 

 

 

 

 

 

 

 

 

 

 

 

 꽃과 의상,그리고 여인네 마음까지 모조리 붉을지어...

 

 

 

 

 

 

 

 

 

 

 

 

 

 

 

 

 

 

 

 

 

 

 

 

 

 

 

 돌아본 안양산 라인

 

 

 

 만연산과 수만리 일대

 

 

 

백마능선을 향하다가 돌아본 안양산 철쭉라인.

 

저온현상에다 얼마전 연이어 내린 비 때문일까?

어쩐지 갈 수록 예전의 화려함이 줄어드는 추세다.

 

 

 

 안양산을 내려와 이동한 곳은

 불당골에 자리한 소향 권대웅 선생의 수행처 명경헌

 

 

 

 백운교(白雲橋)를 사이에 둔 선녀님들의 망중한

 

 

 

 명경헌 주위에 흐드러진 미나리냉이 군락

 

 

 

엄마산소는 마냥 즐거운데, 예진공주는 수심 가득.....??

 

 

 

 오월 명경헌 골짜기

 

 

 

 명경헌 청음실

 

 

 

 

 

 

 

마른 아스팔트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는것 처럼 건조하고 삭막한 창법의 소유자

 음유 시인 레너드 코헨Lonad Cohen을 명경헌 청음실에서 오랜만에 만나 본다.

 

 

 

스승의 날 명경헌에 모인 청음인의 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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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소향선생께서 이메일을 통해 보내 주신 내용  간추린 것이다..

 

 

잠시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곳을 바라보던 우리도 비록 없겠지만...

그래도 추억의 편린들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벗이 왔으니...

학창시절에 배웠던 공자의 문구가 안 나올 수 없겠다.

 

子  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라도 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출처] 논어 - 학이(學而)편

 

'공자선생은 인仁이란 학문 완성을... 위... 세 줄의 글로써 설파하였다!'고 본다. 

시습時習은 학문의 첫 완성이었으며...

유붕有朋은 세상사람들에게 설파하던 인仁의 실천이었으며...

인불지人不知는 대학문 완성의 겸양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더라도 괘념치 않겠다저 당당한, 대군자大君子를 보아라!

그런 위인들이 출세간出世間에는 많지만...

공자선생은 세상이 알아 주어 결국은 입세간入世間에 남게 되었다.

해석이 맞는가.  

 

 

 

 大自由

 

그대는 아는가!

적송밭에 바람이 일면

학처럼 날아 오르던 비상의 사유를...

 

그대는 아는가!

계곡물 내려가는 소리에

순간 깨달았던 대자유의 경외감을...

 

    - 小鄕 作

 

    

명경헌 청음실

 

필자는 그동안 준비했던 영상자료를 가지고 청음실에서 근대 팝의 기원과 흐름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 주었다.

흔히 음악은 3대의 장르로 나누어 진다고 말한다.

클래식과 팝과 월드뮤직이 바로 그것이다.

각 민족 고유의 민속음악은 월드 뮤직에 포함시키기로 한다.

모두들 클래식의 역사며, 민족음악의 흐름에 대해서는 얼추들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팝의 기원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가 많은 것 같다.

팝의 기원은 흑인영가인 가스펠에서 출발하여 블루스가 태동하였으며, 재즈로 발전하는 동안 락큰롤이라는 새로운 변형이 시도 되었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인류음악의 새로운 장르인 팝의 역사는 정립되어 갔던 것이다.

머디 워터스의 블루스가 발전하면서 스윙을 가미한 척 베리의 새로운 시도가 락큰롤을 태동시켰다는게 정설이라 할 수 있다.

 

 

 

- Muddy Waters -

 

- Chuck Berry -


 

 

 1940년대 블루스 레이블의 산실이었던 시카고의 체스 레코드에는,

머디 워커스, 리틀 월터, 하울링 울프, 윌리 딕슨, 에타 제임스, 척 베리 등의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면서 번창한다.

이때 척 베리의 음반을 틀어주던 한 디제이가...

'그냥, 새로운 시도이니 '락큰록 Rock'n Roll'이라 부르자!'라며 즉흥적으로 명명했던 것이 히트를 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존엄하던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차별 영역이 서서히 붕괴되어 갔던 것이다.

음악이... 노예와 주인의 사이를... 친구 사이로 바꾸어 주었던 것이다.

 

바로!

음악이 갖는 위대함 아니겠는가.

해석도 통역도 필요 없는 음악은... 그래서 신이 내려 주시는... 신神의 메시지라 부르는 것이다.

바벨탑으로 언어는 갈렸지만 음악은 직감으로 호소하기 때문에 만국의 공통어였던 것이다.

 

베토벤은 고백하였다.

"나는, 신이 주시는 메시지를 다만 옮겨 적었을 뿐이다!"라고...

 

 

 

- The Rolling Stones -

 

 

- Led Zepplin -

 

- The Beatles -

 


 

 

  

다시, 팝의 역사에 관해 재론 하자면,

체스레코드에서 계속 히트시키던 블루스 레이블의 열렬 팬이었던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가 영국으로 부터 미국 시카고로 날아들어...

새로운 음악의 기법을 전수 받아 브리티시 음률을 가미한 새로운 리듬풍의 강렬한 락을 터뜨리면서...

락큰롤은 새로운 자리를 잡아가는 태동을 시작한다.

정통파 브리티시 뮤지션(British Musician)이었던 레드 제플린,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에 의해 락은 자리를 잡아 나갔으며,

이를 다시 엘비스 프레슬리가 미국에 정착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 Mariane Faithful & Mick Jagger -

 - Elvis Presley & Ann Margaret -


 

 

그 정점이 바로 1960년대 미국의 우드스탁에서 3일낮, 3일밤 동안 계속 열렸던 우드스탁락페스티벌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뮤지션들에 의해서 락의 자리는 확고히 정립되어 가게 된다.

마지막에는 팜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면서 비쥬얼 뮤직(Visual Music)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성공을 거둔다.

 

대충, 위와 같은 취지로 영상자료와 음반을 가지고서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팝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대편성의 재현에는 필자가 운용하고 있는 멀티앰핑 오디오 시스템이 큰 효과를 내준다.

그들과 나는 한때 음악을 같이 하기도 했지만...

그후에 친구들은 높은 이상향인 도道의 세계에 빠져들어 살고 있기 때문에...

팝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해 주자는 것이 이번 매화음梅花吟의 새로운 주제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소기의 임무를 달성하였다.

 

  



  

 

 - 호남에서는 최초로 결성된 고등학생 보컬그룹 더 비두스(The By-Doos)였다 -

( 왼쪽의 사회자는 현재 조선대병원 의사이신 오재희 선배로 당시 그곳 디제이로 있었다 )

 

 

 

 

 - 1971년 광주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캠퍼스 뮤직박스에서 우리는 라이브 공연을 했다 -

 

 

그당시 필자의 벗이자 유일하게 음악의 신神 유테르페라는 공동 이름으로 음반 모으기 경쟁을 하던

(그래서 필자의 음반 몇천여점 중에는 유테르페의 약어 EUT가 더러 새겨져 있다) 장찬정 선생과 함께,

당시 광주에서는 유명하던 DJ이신 문화방송의 소수옥 선배,

기독교 방송의 정무일 선배, 전일방송의 지병오 선배에게서 팝을 배웠다.

소수옥 선배는 특히 우리를 이뻐해 주셨는데,

오죽하면 심야에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우리는 수옥이 형의 프로에 함께 한 적이 많았다.

그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별밤' 프로가 끝나던 새벽 한두시경에는 MBC 도장을 손등에 받아서 경찰이 검문할 때

제시하면 무사통과였다.장찬정 선생과 필자는 또한 죽이 잘 맞아서 음악감상을 아주 좋아햇는데,

장선생은 열린음악회를 KBS에서 처음 기획하고 KMTV 사장을 역임했던 분인데 아깝게도 암으로 몇 년전에 작고했다.

 

그리고 1960년대 말에 광주에서는 최초로 박건수 선배께서 보컬 그룹을 창단하였다.

아득한 옛날이지만, 아마도 영피플스(The Young Peoples)라 칭했을 것이다.

이장순과 국소남 선배께서도 포크 계열의 음악을 발표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마추어로는 우리가 처음이었다.

당시, 아마도 서울에서는 고등학생 보컬 그룹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호남에서는 최초로 결성된 아마추어 밴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광주일고 교모를 쓰고 연주할 정도로 우리는 긍지가 있었다.

C.C.R과 The Archies의 곡을 주 레파토리 삼아 불렀다.

특히 더 아치스는 1969년 결성된 버블검 사운드의 경쾌한 그룹이었는데,

Feeling So Good이란 노래에서 Skoo By-Doo라는 연호가 나와서

우리는 그룹 이름을 더 비두스(The By-Doos)라 하였다. 

 

그게 무슨 자랑이겠는가마는,

열정 하나로 살아 온 지난 날이 그립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대학시절 섹스폰으로 보컬 그룹 활동을 하였다는데 말이다.

그 집념과 열정의 시절이 정말 그립다!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때 몰입하던 그 경지는 마약과도 같다.

몰아일체의 경지가 있기에 뮤지션들은 연주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미8군에서 혹은 해외에서 그룹사운드를 결성하여 음악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한번도 그룹사운드를 결성하지 못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소설 같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언젠가 책으로 엮어볼 것이다.

 

참말로 오래된 옛날 사진을 보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필자는 그 시절의 젊은 피가 너무나 뜨거웟다고 생각한다.

록 음악에 모든 걸 용해시켜 분출하고자 했던 정열의 시절!이었다고 정의한다.

그런 용광로와 같은 질풍노도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정靜의 세계를 받아 들일 수 있었다면 지나친 궤변이라 할 것인가.

 

지금도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전혀 꿀릴게 하등 없다.

당당하게, 거침없이 나의 길을 가련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나의 생生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인데,

체면에 연연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내 인생의 자서전을 당당하게 엮고나서 끝을 맺을 것이다.

 

지구 상의 60억 중에서 한 인생이...... 

그렇게 살았노라고......

 말이다!

 

 

- 중략 -

 

 

음악에 장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학창시절 참여했던 오케스트라에서의 바이얼린도 다시 해보고 싶었지만,

 

점잔 빼는 노인네가 되기 싫어......

 

격정있고 삶의 향기가 더욱 진해 질...... 

락커(Rocker)로 다시 부활하고 싶다!

  

락 밴드를 부활시켜, 

저 70년대의 용광로를 다시 지피고 싶다.

 

클래식과 월드뮤직과 재즈가 모두 용해되어......

 

천둥번개로 포효하던 그 락의 세계로 말이다.

 

그런 재미를 이제 서서히 준비하련다. 

재미있으리라......

 

 

 

小 鄕   權  大  雄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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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안양산 철쭉.

가장 쉬 오를 수 있는 수만리 국화마을에서 출발,

화사한 고산철쭉이 흐드러진 백마능선과 안양산이 만나는 안부에 올라서니

 꺄약~~~ 하고 내 지르는 여인네들의 탄성에 귀가 멍멍할 지경.

 

어째 갈 수록 안양산 철쭉의 자태가 시원찮아 보인다.

개화시기의 궂은 날씨 탓도 있겠지만 군데군데 자취를 감춘 철쭉의 흔적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파 내갔다는 얘긴데.....!!

황사때문인지 부연데다가 빛의 산란까지 겹치니 사진발이 영 별로다.

 

안양산 철쭉의 호위 아래 간단한 오찬을 마치고 산을 내려와 이동한 곳은

담양 남면 불당골 소재 소향 권대웅 선생의 수행처 '명경헌'

 

반갑게 맞아 주시는 소향선생 내외분과의 만남.

졸졸 흐르는 계류의 청아함과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진 평화로운 풍경.

오월 꽃불 잔치에 음악이 빠진데서야 어디 될 말인가.!

화려헸던 안양산에서의 꽃불잔치에 이어 소향선생께서 들려주시는 음악의 향연.

 

  '록'의 시작에서 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선곡에다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이해를 돕는 시청각 자료, 훌륭한 음향기기의 파워에 온 몸을 내 맏긴다.

 소향 선생의 해박한 해설에다 다양한 음반 편력에 이르는 물증까지 보태지니

어느덧 청음실의 열기는 안양산 붉은 철쭉의 화사함을 저만치 밀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바이얼린에서 부터 시작하여

고교시절 벌써 락 밴드를 결성하여 공연을 할 만큼 시대를 앞서 간 소향선생.

그 뜨거웠던 격동의 시기에 인문과 자연을 동시에 아우른 선생의 기개와 열정.

동 시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그저 존경의 예를 다 할 뿐이다.

 

클래식은 물론, 가스펠에서 락큰롤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음악사까지의 계보를 줄줄 꿰는 저 해박함.

초판으로 발매된 음반을 애지중지 할 만큼 다양한 음반 라이브러리 소장에 이르면

그저 말문이 막힐 뿐.

 

그렇다면... 혹!

  소녀시대에 이르는 요즘 걸 그룹 들의 레퍼토리와 그녀들의 취향까지도...ㅎ

 

이내 무식의 한계 때문에 어제 선생께서 들려주셨던 내용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더니

이메일을 통해 곧장 보내주시며 덧 붙인 말씀인 즉.

 

 

 자료 보냅니다.

어제,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운 이들이나 맨날 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소향선생이 운영하시는 다음 카페 "명경헌 통신"에 올려 놓으신

고교시절의 보컬 활동에 관한 자료를 하나 더 부탁했더니만

쩍 뛰시며 공개는 절대 곤란이라는 대답이 돌아 온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  빛고을의 음악사,

아니 대한민국의 음악사를 논 하고 증명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자료인지라

간곡하게 말씀드렸더니 종내는 이 사람의 요청을 내치지 못 하시고

하는 수 없이 자료를 보내 주시며 아래와 같이 부기하시길...

 

 

 

茶泉선생님 親展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고등학교 시절 밴드 사진은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최초?라는 부언 설명은 넣어 주셔야 긍지가 살아 나겠습니다. ㅎ

 

이왕지사 가는 길에 무엇이 부끄럽고 감출게 있겠습니까?

다 내놓고 가지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 시대의 보물이신 소향 선생님, 초대해 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모두들 알아야 할 이 시대의 귀한 자료라 생각되어 부득불 위의 자료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보내 주신 자료에서 주변 인물들에 관한 내용은 혹 그 분들께 누를 끼칠까 싶어

소향선생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자의로 편집 삭제한 죄 크옵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도량으로 감싸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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