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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덕룡산에서 만난 4인의 생불(生佛)

2007-08-21 00:09

 

나주불회사석장승

불회사 입구에 서있는 2기의 돌장승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하는데 이 장승 역시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수문신상이다.

불회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높은 산을 뒤로한 협곡에 자리잡고 있다.

절 앞 300m 되는 지점의 길 양쪽으로 마주보고 서있는 이 장승은 남·녀의 모습으로 구별된다.

남장승은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시되었고, 머리 위에서는 상투를 튼 모습을 흉내내었다.

송곳니가 드러나고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남장승에 비해 표정이 온화하고 얕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미소 띤 얼굴에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원래 명칭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이란 이름이 있다.

두 장승 모두 크고 둥근 눈에 두리뭉실한 주먹코이다.

얼핏보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옮겨다 놓은 것 같기도하고

나주운흥사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민간의 무속신앙과 불교신앙이 혼합된

상징적인 조형물로서 험상궂은듯 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 친근감을 준다


 


 

 

불회사로 들어가는 길 왼편에 자리한 연리목
느티나무가 고로쇠 속으로 파고든 형상이다.


 

 

전엔 없던 사적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회"자가 참 재미납니다.

 

덕룡산은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와 다도면 마산리 사이에 위치하며 불회사를 감싸고 있는 주산이다.

특별히 모난 산세는 아니지만 첩첩이 둘러싸인 능선과 봉의 오르내림이 산의 깊이를 더 한다.

 

이 산줄기는 남으로 영암땅의 궁성산과 국사봉을 지나 월출산까지 이어지며, 호남의 오지를 형성한다.
등산로는 2003년 잘 정비 되었으며 불회사 입구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는 불회사를 가운데 두고 연꽃 형상으로 되어 불회사 입구의 양쪽 등산로 중 한쪽 등산로를 선택하여

종주 할 경우 바로 건너편 등산로로 하산할 수 있다. 종주시간은 약 4~5시간을 예상하면 된다.

중간 이정표는 두 곳이 있으며 하나는 불회사 남쪽 능선에 있어 불회사로 바로 내려오는 길,

또 하나는 불회사 북쪽 능선에 있어 우성목장으로 가는 길이다. 우성목장 쪽으로 약 100m지점에는

 불회사 중창전설과 함께하는 일봉암자의 터만이 자리하고 있다.


 

불회사 단풍나무

절 뒷쪽으론 동백과 비자림이 울창하고 그 아래 야생차밭이 자리하고 있다.


 

 

 

사천왕도 중에서..

 

불회사 금강문에 그려진
밀척금강

 

나라연금강

 

운흥사 입구에 세워진 남녀 한 쌍의 돌장승이다.

사찰 앞에 세워지는 사찰장승은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을 지닌다.

 대개 무서운 듯하면서도 인자함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며 절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찰에서 500m쯤 떨어진 밭 가운데 마주보고 서 있는데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의 모습이다.

남장승은 높이 270㎝, 너비 60㎝의 거대한 체구로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코,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턱 밑에는 八자형 수염이 표시되었으며

몸체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깊은 선으로 둥근 눈이 표시되었고 입 언저리의 잔 수염과

주걱턱 표현이 인상적이다.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사찰 수호의 기능을 지닌 이 장승은 여장승 뒷면의 조선 숙종 45년(1719)이라는 기록으로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민속자료이다.

 

단소를 언주하는 덕현스님의 동원사


 

 

동원사에서의 하경

 

 

다정스님이 주석하시는 문성암

 

 정갈함의 극치를보여주는 문성암의 참회전

 

 

다정스님의 휘호 편액

 

다정 스님의 茶亭

 

쌍봉사 부도밭

 

철감선사부도
국보 제 57호 (1962. 12. 20)

 

보물 제170호 (1963. 1. 21)
◈ 이 탑비는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으며 비신은 유실되었고 신라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한

철감선사의 행장을 기록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마을에 전해지고 있는 구전에 의하면 이 비는 일제시대 일인들의 손에 의해 비신이 없어졌고

 탑비 부근의 땅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비신(碑身)이 없어서 그의 행적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조당집'이나 사자산문을 개창한

징효대사(절중(折中),825 ~900) 보인탑비 등에 부분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선사는 신라 원성왕 14년에 태어나 18세에 출가하여 김제 비귀신사

[지금의 귀신사(歸信寺)에서 화엄경을 읽으면서 수학하다가 헌덕왕 17년(825)에 입서 하였다.

그는 남전보원(748~834)의 심인을 전승받아 그 후 문성왕 9년(847)에

굴산사를 개창했던 범일선사와 함께 귀국하였다.

풍악 장담사에 머무르면서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케 하고 징효대사에게 불법을 잇게 하여

강원도 영월지역에서 개창한 사자산문의 개조로 추앙되었다.

또한 선사는 말년에 주석한 쌍봉사를 중창하였으며 이곳에서 경문왕 8년(868) 4월 18일에 입적하였다.

왕은 시호를 철감(澈鑒), 탑명(塔名)을 징소(澄昭)라 하사하였다.

 비신의 기록을 볼 수 없어서 이처럼 간단한 내용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귀부는 방형의 대좌위에 있으며 높이가 아주 낮고 깨진 부분없이 완전히 잘 남아 있다.

귀부 머리는 용두화 되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입에는 둥근 여의주를 물고 있다.

 머리 위에는 뿔 한 개가 돋아나 있고 입가에는 활짝 펴진 날개같은 것이 있다.

구(龜)는 가운데에 복갑(腹甲)형식의 중첩문이 정연하고 등에는 중곽육각구(重廓六角龜) 갑문(甲紋)이 선명하다.

갑(甲)의 바깥선에는 귀갑문이 반으로 자른 듯 옆으로 선명하게 돌려져 있다.

그리고 등 중앙에는 장방형의 비좌(碑座)를 만들고 연문(蓮紋)을 돌리고 그 윗면에 3단의 각호(角弧) 괴임을 조각하였다.

귀부의 네발은 발가락이 3개씩인데 오른쪽 앞발만 발가락을 위로 들고 있어 마치 귀부가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수는 비신을 덮고 있는 밑면을 제외한 5면에 운룡문(雲龍紋)을 가득히 조각 하였다.

전면에는 세마리의 용이 좌우와 중앙 상단에 꿈틀거리고 있으며, 후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몸을 뒤틀며

허공을 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수 정상부에는 보주형 귀꽃이 3개 솟아 있었으나 향좌측의 것은 유실되고 없으며

그 자리에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나머지 2개는 원석에 조각하였는데 유실된 부분만 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때

별조하여 끼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 전면에 위패형의 액을 만들고 그 안에 '쌍봉산고철감선사비명 (雙峰山故澈鑒禪師碑銘)'이라고

 서종(書縱)으로 2줄 음각하였다.

이 2줄의 10자(字) 명문(銘文)이 다행히 남아 있어 탑비와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고

조성연대도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이 입적한 868년 후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 높이 170cm, 이수 너비 144cm, 귀부 전면 너비 145cm)

 

 

명문이 적혀있습니다

 

◈ 부도(浮屠)는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일종의 탑인데 그 형식에 따라 팔각원당형, 석종형 등으로 구분한다.

이 부도탑은 팔각원당형에 속하는 신라시대 부도 중 조각 장식이 화려한 최대 걸작품이다.

상하 각부가 평면 팔각형을 이루고 있음은 당시의 특징이지만 2단으로 이룬 하대석 하단에 운문, 상단에 사자를 조각하고

상대석에는 앙련위에 팔각대석을 놓은 이중으로 된 안상 안에 가릉빈가 1구씩을 새겼고 탑신을 받는 부분에는 연화문이 둘려 있다.

탑신은 각 우각에 원주형을 세워 그 위에 주두를 얹었으며 각면에는 전후에 문비형, 그 좌우에 신장상, 남은 2면에 천인상을 조각하였다.

옥개부에는 연목과 기왓골이 횡각되고 옥리에는 각면에 1구씩의 천인상이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매우 정교하며 탑신 원주에는 엔터시스 양식을 가미했으며 옥개 추녀 끝막새에 연화문을 새긴 솜씨를 보면

 당시 조각공이 신앙심을 가지고 필생의 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부도탑의 높이는 230cm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이 탑의 건립연대는 선사의 입적에서 멀지 않은 시기로 추정된다.
철감선사의 이름은 박도윤으로 신라 원성왕 4년 한주 휴암에서 출생, 귀신사에서 화엄경을 배우고 헌덕왕 17년에 입당하여

남전보원에게 법을 받고 문성왕 9년에 귀국, 풍악산에 잠깐 주석하였다가 화순에 옮겨와 쌍봉사에 주지 후 경문왕 8년에 입적하였다.

시호는 철감, 부도탑명은 징소라 하였다. 신라 구산선문의 종풍으로 크게 진작시킨 분이다.

 

쌍봉사의 져녁 예불

 

 

 

 

 

* 첫 번째 만난 생불 - 불회사의 친절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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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에서 불회사에 이르는 길지 않은 숲길과 바로 옆 계곡에선 자리를 펴고 길게 뻗어 잠든 사람,

고기를 구워 질겅질겅 씹어 삼킨 후 내장을 알콜로 씻어내면서도 부처님의 자비를 바라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본 불회사 석장승

몇 년 전에 찾아왔다가 석장승 앞에 서기만 하면 울려대는 경보기가 내는 시끄러운 소음에 질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궁금해 진 것이다.
역시 벅수 장승의 최고봉으로 꼽기에 주저함 없는 확실한 예술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금강문을 들어서니 몇 년 전에 입적하신 백양사의 서옹선사 서체의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그 대추씨만한 체구에서 어쩌면 저리도 해학적이면서도 귀엽고 당찬 서체가 나왔을까를 생각하며

한참을 감상한 연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근심을 털어내는 해우소가 보인다.

등산화의 끈을 풀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에야 겨우 근심을 털어낼 수 있었는데 거 참 절차 한번 복잡하구나.

손 씻는 김에 땀범벅인 얼굴까지 씻고 있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시원하게 샤워 한번하세요”  

돌아보니 화장실에 딸린 샤워실이 보인다.

“남의 집에 와서 어떻게......”

생각 같아선 당장에 훌러덩 벗고 물 한번 뒤집어썼으면 좋겠는데,

점잖은 체면에 어찌 절집에 와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흐~~~흠~~~~!@#$%^&*

불회사 사무장쯤 되시는 분인가? 참으로 고마운 거사님 이시로다.

절 뒤쪽 울창한 동백숲과 비자림이 뜨거운 태양을 반사시키며 번쩍대고 있는데

그 아래의 야생차밭은 질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들었다.
그 차로 반 발효차를 만들어 줏가를 올리고 있단 애길 들었는데 맛 한번 봤으면 좋겠다.

V 자 형태의 멋진 단풍나무 감상을 끝으로 금강문을 나서는데 좀 전의 그 거사께서 웬 보살 한 분과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품세가 마치 부처의 자비 아래 사랑 놀음이라도 벌이는 모양새다.

남자인 내게도 친절, 여자인 보살님께도 친절.........!

생불은 꼭 머리를 깍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님을 잘 보여주는 불회사의 친절남.

당신을 친절거사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 두 번째 만난 생불 - 운흥사 혜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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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의순이 조실부모하고 물에 빠져 죽음 직전에 살아나온 인연으로 초발심을 한 곳이 이곳 운흥사라는 건

우리 모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덕룡산 서남쪽에 자리한 운흥사에 아무 생각 없이 터덜대며 들어가다가 길 옆, 눈에 익숙한 석장승 앞에 서게 된다.

불회사의 석장승과 더불어 소위 명품으로 꼽는 운흥사 석장승은 확실한 명문이 남아있어 귀중한 문화유산에

틀림없는데 경보기 하나 달랑 설치해 놓은 것으로 방치 할게 아니라 각을 씌우던지 해서 문화재 대접을 좀

확실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길 옆 잘 조성된 차밭을 지나 운흥사에 당도하니 당우가 제법 즐비하다.
운흥사지에 불과할거라는 선입견을 오늘 확실하게 정리 해야만 할 순간인 것이다.
한 건물 앞에 이르니 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 승려 한 분이 괭이를 들고 찔레꽃 뿌리를 열심히 캐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스님 고생하십니다.“

힐껏 한번 쳐다보더니만 아무런 대꾸도 없이 하던 일을 계속 해 나간다.
선방인 듯한 건물 앞의 잘생긴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모르긴 해도 저 정도의 굵기면 운흥사의 근세사쯤은 모조리 지켜봤을 터.

절 뒤쪽 어딘가 등산로가 있을까 하고 찾아보지만 온통 가시덩굴로 우거져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낙엽이 지고 나야 산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돌아와 열심히 일하시는 스님 곁을 지나려니 뭔가 모르게 죄송스런 느낌이다.

벌써 여러 해 째  운흥사 복원에 진력을 다하고 있다는 혜원 스님의 구부정한 모습에서

“하루 일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불가의 가르침이 문득 떠오른다.
그 많고 많은 도회의 젊은 중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디서 경전과 씨름하며 희여 멀건한 얼굴로 나무아미타불만 외어대고 있진 않을까?

덕룡산의 일하는 중, 혜원 스님은 분명한 생불임에 틀림없구나.





* 세 번째 만난 생불  - 단소 부는 동원사의 덕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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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룡산 자락 운흥사와 같은 길을 쓰면서 산 위쪽에 자리한 동원사
들어가는 길 왼편으로 다소 특이한 형태의 부도 한 기가 우거진 풀섶에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굵은 비자림을 헤치며 경사가 심한 길을 따라 오르니 불쑥 건물이 모습을 보인다.

어디선가 진돗개 호피 두 마리가 나타나 심하게 짖어대기 시작한다.
암컷의 모양새로 봐서 바싹 마른 것이 새끼를 낳은 게 분명하다. 다른 건 몰라도 새끼 딸린 짐승은

모름지기 조심하고 볼 일이다.

그토록 개가 짖는데 누구 하나 모습을 볼 수 없다, 혹, 모두 출타 중인가 했는데 마당에 들어서니

스님 한 분이 쪼그리고 얹아뭔가를 하고 있다가 돌아본다.
인사를 드리고 양해를 구한 다음 대숲으로 울창한 길을 따라올라 급경사에 들어선 법당을 둘러보는데 뭐랄까?

법당 내부가 다소 특이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익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또 하나의 건물을 들여다보니 안에 차를 덖는 가마가 보이는 게  제다실이 분명했다.
절 주위에 야생차가 널린 것으로 봐서 차를 많이 만드는 모양.
여기저기 기웃대다 다시 내려오니 차 한 잔 하자며 찻방으로 안내 하신다.

찻봉지를 살피니 반발효차인 황녹차라 적혀있다. 반발효차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속이 편안해져온다.
차를 만든이의 공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좋은 품질의 차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스님께서 가사를 걸치고 이국인 듯한 풍경의 호숫가에서서 단소를 부는 모습의 달력이 걸려있다.

그렇다면 한 가락 하시는 스님이라는 애긴데.......?
무턱대고 개인의 신상에 대해 여쭤 볼 수만은 없는 노릇, 미루어 짐작하기로 한다.

산을 내려와 알아본 내력은, 단소 부는 덕현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분 이었다.
이웃한 여러 사찰 등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면 단골로 초청되는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웃한 운흥사와 도로 문제로 상당한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참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얼굴에 떡칠과 분칠을 하고 시뻘겋게 입술을 칠한 보살 한 분이

택시를 타고 당도하는데 도무지 절의 분위기완 영 딴판이고 보기 흉한데,

혹 모르겠다. 부처님은 저런 스타일을 반기실지.....

비탈진 절 동원사에서 맛본 황녹차는 예술이었다.
이 정도의 차를 만들고 단소를 연주하여 불법을 전파하는 위력을 지녔다면 당신 덕현 스님도

 

생불의 한 사람에 틀림없을 터.







* 네 번재 만난 생불   -   정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성암의 다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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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룡산 자락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문성암.

이 곳 역시 운흥사 골짜기를 가다가 동네 위쪽으로 오르게 되는데 처음엔 그저 슬쩍 한번 들여다보고자 했었다.

암자 입구에 서서 안쪽을 바라본다.
암자 마당에 이르는 동안 양 옆으론 돌담이고 그 아래론 차나무가 심어져있는 모습 속에 마당 끝에는 이층으로 된

다소 특이한 건물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첫 눈에 무척 정갈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웬지 옷깃을 여며야만 될 것 같은 분위기 인지라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는데 잔디도 절집에서 자라고 있어서인가?

마치 배코라도 친 양 말끔하게 깎여 있는 모습이다.

2층 전각엔 참회전이란 편액이 내걸려있고 누군가가 백팔배라도 하는지 상체가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게 보이고

내일의 칠석을 준비하는지 모두들 분주한 광경인지라 조심스럽게 건물 옆을 지나 정갈하기 짝이 없는

 또 다른 건물에 이르러 안을 살피니 책이 가득이다.

그 건물을 지나 정자에 다다르니 팽주를 기다리는 다탁과 다구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마치 몰래 남의 집 구경이라도 하는 양 살금살금 나오다 스님 한분과 마주쳐 인사를 드리게 되는데

 등산화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 오신다.

아는 대로 말씀을 드리며 뒤쪽 등산로를 물으니 한바퀴를 돌 수 있고 직접 돌아보셨다고 한다.

한참 애기 끝에 차 한 잔 하시자며 아까 그 정자로 이끌어 다담이 계속되는데 문득 백양사 애기가 나왔고

바로 당신이 지선스님등과 함께 그 백양사로 출가하여 학인 시절을 보낸 다정스님이라고 법명을 알려주신다.

60년대에 백양사 사하촌에 살았던 나의 어린시절과 스님이 공부했던 시절의 이런저런 공통분모가 많다보니

 애기가 그칠 줄 모른다.

다음 일정 때문에 할 수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아쉽기가 짝이 없었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 특유의 너그러운 인상과 상대를 편하게 배려하시는 모습에서 과연 고불총림 출신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백양사의 주지직도 역임하시느라 무척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속가의 이 사람을 위하여 귀한 시간을 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다음에 한번 찾아뵙고 못 다한 지난 시절의 애기와 스님의 맑음을 접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정 스님 당신은 진정한 부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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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룡산 4인의 생불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와 부지런히 달려간 곳은 사자산 쌍봉사

산문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대웅전을 향해 포커스를 맞추는데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갤 돌리니 종을 치던 비구니가 손사래를 친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애긴가? 도무지 손사래의 의미를 모르겠다.
모른체하고 오늘의 마지막 만남으로 작정한 절 뒤쪽의 철감선사 부도에 다다른다.

그 뜨겁기만 했던 태양이 서서히 저물고 어둑해지는 사자산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 앞.

오늘, 덕룡산에서 만난 네 사람의 생불에게서 불가에서 설파하는 시절인연을 배웠다면
철감선사의 부도 앞에선  삶과 죽음 그리고 흔적에 이르는 윤회론을 떠 올려보는 것으로  그 뜨거웠던 하루를 마무리 한다.




*   2007,8,18 토요일

 

 

 

 

 

무늬
조용히 흐르는 음악속에
4인의 생불(生佛) 을 담으셨네여
감동의 연속입니다.
5인을 칭하라 하시면
님의 그 마음이 곧
부처가 아닐런지여..^^
2007-08-21
08:29:31
한병인
무늬님의 답글이 너무나 시적으로 가다옵니다.
님의 그 마음이 곧 부처가 아닐런지여
요즘 김환기 형님의 사진을 보면 문화 해설로 방향을 선회하시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 방대한 자료며, 시간에 대한 투자며, 이좋은 것들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몰입하셨을 생각을 해보면 존경하는 맘 뿐입니다.
2007-08-21
08:39:56
류재원
쌍봉사의 명품과 장승의 만남!
좋습니다.
생불과 같이 차도 드시고 도 속으로 들어 가신듯 합니다.
부럽습니다
2007-08-21
09:23:40

[삭제]
산아가씨
덕룡산은 산 이름답게
그자락에서 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수행하시는
네 분을 다 포용하는 너그러운 산인 것 같습니다.

네 분의 생불 이야기, 재미 있으면서도
많은 걸 깨닫게 해 줍니다.

무더운 여름날, 심신이 지쳐있을 때
마음이 잔잔한 감동과 생기로 가득 채워지는 걸 느낍니다.
2007-08-21
16:52:18
명경헌
뜨거운 폭염에 좋은 수행을 하고 오셨네요.
덕룡산에 불회사만 있는줄 알았는데...
김선생님 덕분에 좋은 부처님을 몇분(?) 알게되어 기뻤습니다.

다도면 불회사를 차의 중흥기의 명찰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장터(중이 장보던 곳으로 운주사 옆)가 그당시 차의 거래로 유명했다 합니다.
귀한 황녹차를 드시고 선매삼경에 빠진 글과 사진을 잘 구경했습니다.
언제 시간나면 소개하신 곳을 다녀오고 싶군요.
2007-08-21
17:46:29

[삭제]
첨단산인
환기형님의 글을 보면 언제나 수박겉핥기 식으로 둘러만 보고 나왔던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쌍봉사와 동원사 불회사 덕룡산 그냥 들러만 보았지 깊은 생각을 가지지 않고
몇기의 탑이나 산뒷편의 야생녹차밭이 다인냥 보고만 나왔는데...
동원사에선가 바라보던 무등산 그곳의 주민이 이야기 해주던
무등산과 금성산의 맥이 지나는 곳이라던 덕룡산
이번 겨울에나 한번 둘러 보렵니다.
2007-08-22
0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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