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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한국의 국보 / 불교회화

한국의 국보


불교회화 Buddhist Painting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국보 218호.

고려시대의 불화. 비단바탕에 채색. 110*51㎝.

구도면에서는 본존과 협시보살이 비스듬히 서 있다.

관음보살은 본존의 한 발 앞에 나와 몸을 앞으로 굽힌 채 내영자에게 두 손을 뻗고 있다.

그리고 손 위에 올려놓은 연꽃대좌 위로 맞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한 줄기 빛이 본존의 계주(髻珠)로부터 뻗어 내영자에 비치는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의 대행자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는 구도라 하겠다.









본존은 다소 정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풍만한 얼굴, 근엄한 표정 등이

일본 큐세이아타미미술관[救世熱海美術館] 소장 고려 불화의 본존 얼굴과 비슷하다.

활기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쑥 내민 팔 등은 건장한 장자풍의 부처의 위엄이 잘 표현된 상임을 시사해준다.

붉은 가사와 녹색 내의의 대비며, 꽃무늬와 구름무늬의 대조 등도 큐세이아타미미술관 소장

 고려 불화와 유사한 것으로 서로 비슷한 양식을 보여 준다.

오른쪽 지장보살은 소년 같은 앳된 얼굴, 승려 머리의 괄호형 모양의 이마,

오른손에는 보주만 올려놓고 있는 수인(手印) 등이 일본 닛코지[日光寺] 소장 지장보살상과 비슷하다.

왼쪽의 관음보살은 보관 형태, 남성적인 얼굴, 묵직한 천의 자락, 어깨로 내려온 머리카락 등은

1320년(충숙왕 7)작 아미타구존도의 측면 보살들과 흡사하므로 이 역시 당시 작품으로 추정된다.












관음·지장이 협시한 독특한 형식의 이 삼존도는

구도면에서도 내영도로서의 효과를 성공적으로 묘사한 걸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浮石寺祖師堂壁畵

국보 제46호.

지금은 유리 상자에 넣어 벽화 유물전 안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모두 6폭인 벽 그림의 내용은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사천왕(四天王) 등의 호법신장(護法神將)들이다.

제석과 범천은 불교의 호법신 가운데 최고의 신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이 두 천신(天神)에게 직접 통제되는 천왕(天王)이다.






제석과 범천은 풍만하거나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무장상이다. 위풍당당하거나 우아한 형태와 능숙한 필치 등에서

고려 불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품격을 보여 주고 있다. 본래의 채색에 몇 번에 걸쳐 새로 덧칠한 것이 많아서 원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고려 불화풍이 꽤 간직되어 있는 편이다.






이 그림은 조사당 입구에서부터 사천왕과 제석천·범천의 순으로 배치되어 석굴암과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그림들은 불(佛) 대신 부석사 창건주이자 화엄종의 조사(祖師)인 의상조사(義湘祖師)를

외호(外護)하는 신장들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사당의 의상조사는 부처님과 동격으로 존숭되었다.

이것은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에서 신라 화엄종의 초대 조사에 대한 존숭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 주는 좋은 예이다.

 이것은 조사당이 본법당(本法堂)보다 높은 데 위치하게 한 것과 함께 화엄종에서는 초대 조사를 부처님보다 오히려 더 받들어

모셨던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회화 자료이다.





양식적으로는 12세기 내지 13세기의 불화 양식과 근사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로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고려시대 회화사상 가장 중요한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된다.






칠장사 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

국보 제296호.

1628년(인조 6)에 화원(畵員) 법형 비구(法炯 比丘)가 그린 이 괘불탱은 상·중·하단으로 구분된다.

상단은 비로자나삼신불좌상, 중단은 약사불좌상·아미타불좌상·미륵보살입상, 하단은 도솔천궁(兜率天宮)의

좌·우로 정면 관음보살좌상과 측면 지장보살좌상이 배치되었다. 최하단부에는 미륵보살이 도솔천궁에서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 염원하는 듯한 청문대중(聽聞大衆)이 있다. 즉,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의

삼신불과 앞서의 석가불·약사불·아미타불의 삼세불,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도솔천궁으로 요약되는 존상의

 배치 구도는 불(佛)의 진리의 영원성과 이를 통한 구원을 상징한다.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약사불·아미타불의 오불(五佛)이 강조된 오불회괘불탱은

지권인(智拳印: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손 모양)의 비로자나불 주위로

 10대제자(十大弟子), 4구의 타방불(他方佛)이 묘사되어 있다. 약사불의 좌우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약사12신장이

 배열되고 아미타불의 좌우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사이의 보살입상은

 미륵보살로 추정된다. 이들을 사천왕과 신장상이 수호하고 있다.


바다 위에 솟은 기암괴석에 앉은 정면 관음보살의 좌측에는 쌍죽(雙竹)이, 우측에는 정병(淨甁)에 꽂힌 버들가지에

파랑새가 앉아 있다. 이 아래 법을 청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 구도(求道)의 보살 이름)가 관음보살을 우러러보고 있는

 자세로 조그맣게 묘사되어 있다. 석장(錫杖: 중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짚은 지장보살은 반가좌를 한 자세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 지옥의 판관 및 선악동자(善惡童子) 등이 둘러 서 있다.


용(龍)이 등장한 바다에 솟은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은 최하단부의 청문대중과 연결된다. 전륜성왕(轉輪聖王)과 왕비,

대신과 그 부인, 동자 등의 청중(聽衆)은 미륵불이 하생(下生)하여 교화하는 용화회(龍華會)에 참여하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 가운데 연꽃을 엎어 놓은 듯한 천개(天蓋) 주위로 아사세(阿寐世) 태자 및 위제희(韋提希)

왕비, 천중, 타방불 등이 묘사되어 있다.


불상은 상투 모양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팽창된 둥근 얼굴에 가늘게 뜬 눈과 작은 입, 안정감 있는 신체 등에서 16세기 불화의 영향이 남아 있다.

짙은 감색의 머리, 불신(佛身)의 금채(金彩), 금니(金泥)를 대용한 유려한 황색 필선(筆線), 붉은색과 녹색 및

금채의 조화, 광배의 연덩굴 문양은 화려하다. 특히 당시 유행된 불교신앙을 집약적으로 표출한 구성,

안정된 형태, 채색 등에서 걸작품에 속한다.


‘미래의 용화회에서 따라 기뻐하는 자들은 모두 성불할 것이다.’라는 발원문은 『법화경(法華經)』

제16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의 글귀를 참고한 것이다. 이 괘불탱은 일본 십륜사(十輪寺)에 있는

 오불회탱(五佛會幀: 16세기 작)과 같이 삼신불을 중심으로하여 삼세불을 융합한 도상이다.

즉, 1628년 작 칠장사 오불회괘불탱, 1710년 작 칠장사 삼불회괘불탱. 1684년 작

부석사 괘불탱(국립중앙박물관소장), 1745년 작 부석사 괘불탱은 3여래 이상의 존상이 도상화된 것으로,

 한 사찰에서 괘불탱을 새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형된 형식이라고 하겠다. 괘불탱 등

거대한 크기의 조선 후기 불화는 공동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법형비구 1명이 그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법형비구는

 1627년 충청남도 무량사 미륵불괘불탱에 수화사로 참여한 저명한 화승(畵僧)으로 추정된다.









갑사 삼신불괘불탱甲寺三身佛掛佛幀

국보 제298호.

비로자나불좌상의 좌·우로 노사나불좌상과 석가불좌상이 한 폭에 배치된 비로자나삼신불 괘불탱이다.

이 거대한 삼신불좌상을 중심으로 상·하단부에는 조그맣게 묘사된 수많은 권속이 배치되었다.

 1650년(효종 1)에 경잠(敬岑), 화운(華雲), 응열(應悅) 등 8명의 화원(畵員)이 그렸다. 응열은 공주 신원사(新元寺)

 노사나괘불탱(1644년)과 예산 수덕사(修德寺) 노사나괘불탱(1673년)의 제작에도 참여한 우두머리 화원이다.

이 3점은 모두 충청남도 지방의 비로자나삼신불 신앙에 근거한다. 1771년에 화원인 쾌성(快性), 법징(法澄)에 의해

보수되었고 1976년에 일부가 수리되었다.

한편 괘불탱을 조성할 때 필요한 물품 목록이 기록된 화기(畵記)는 당시의 재정 사정을 알려주고 있다.











삼신불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주위로 상단부에는 8구의 보살 및

범천과 제석천, 제자상과 신장상 등이 배열되었다. 하단부에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

사리불(舍利弗)이 일렬로 배치된 상·중·하의 3단 구도이다.


삼신불은 키 모양의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와 낮은 대좌(臺座), 천개(天蓋)를 갖추었다. 얼굴은 내려온 눈썹과 올라간 눈,

 짧은 인중, 작은 입이 묘사된 둥근 모습이다.

 그리고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으며

발목에 레이스(lace) 같은 장식이 있다. 불신(佛身)에 비해 큰 얼굴과 큼직한 손, 좁은 어깨는 불균형하지만

무릎 너비가 넓어 안정감이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의 머리에는 초승달 모양의 중앙계주(中央髻珠)와 기둥 모양의 상투 같은 육계

(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에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장식되었다.

왼손이 오른손을 감싼 지권인(智拳印)의 손 모양을 한 비로자나불의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각기 여의(如意)와 연봉오리를 들고 서 있다. 비로자나불좌상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연꽃 위에 무릎 꿇고 등을 보인 보살형 사리불의 청법(請法) 장면은

 1649년에 제작된 충청북도 보살사(菩薩寺) 영산회괘불탱과 비교된다.








안심사 여산회괘불탱


국보 제297호.

1652년(효종 3)에 신겸(信謙), 덕희(德熙), 지언(智彦), 진성(眞性), 신율(信律), 삼인(三印), 경원(敬元),

명계(明戒), 혜월(惠月)의 9명의 승려가 그렸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려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의 석가불좌상이 영축산(靈竺山)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괘불탱이다.


키 모양의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지닌 석가불좌상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사천왕, 14명의 제자들,

용왕과 용녀, 팔부신중, 타방불(他方佛) 등이 에워싼 군도식(群圖式) 구도이다.


보개(寶蓋)를 갖춘 낮은 사각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 편단

(右肩偏袒)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그리고 반원형의 옷자락이 대좌 앞으로

 늘어져있다. 둥근 얼굴은 근엄하며, 넓은 어깨와 팔, 손 등에 부피감이 느껴진다. 안정된 신체의

 석가불을 장식한 광배는 연당초 문양으로 화려하다.


대좌 앞에 측면향(側面向)으로 마주 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기 연봉오리와 여의(如意)를 들고 있다.

갑옷을 입은 사천왕은 다양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동방천왕은 복부에 짐승의 머리, 남방천왕은

가슴에 짐승 가죽을 매달았다. 보관을 쓴 보살 모습의 범천과 제석천은 합장한 자세로, 둥근 목깃의

천의(天衣: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를 입었다.


정수리가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처럼 솟은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석가불 가까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12제자는 상단에 묘사되어 있다. 이 위로 용왕과 용녀, 팔부신중, 타방불이 나타나 있다.










불, 보살의 신체에 금채(金彩)를 대신하는 황색을 사용하였다. 붉은색과 녹색 위주로 황색·감색·흰색이 사용되었다.

특히 제자의 안면에 강조된 요철(凹凸)을 나타내기 위한 채색 수법은 특징적이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괘불탱의 시주 물품 목록 중 황금, 주홍, 수도황(水陶黃), 금, 황란(黃丹), 석자황(石紫黃) 등 안료 명칭 및

 괘불, 포(布), 말장(醬), 식염(소금), 등촉 등 괘불 제작 비용 분담 내용이 자세하다.

수화사인 신겸과 덕희, 경윤은 1649년에 충청북도 청주시 보살사(菩薩寺)의 영산회괘불탱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17세기 중엽은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가 조성되던 시기로 이 두 괘불탱을 비교하면 안심사 괘불탱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보살 일부만 표현하는 등 권속이 생략되어 구성이 단순하다.








화엄사 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국보 제301호.

 1653년(효종 4) 작. 크기는 거의 10여 m나 되는 거대한 높이의 탱화로서 짜임새 있는 구도,

 균형 잡힌 형태, 치밀한 선, 밝은 색채 등으로 17세기 중엽경의 제일가는 걸작이다.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 등 삼존불 위주의 구성이다.

「보살사괘불탱화」(1649년) 등 대부분의 조선조 영산회상도와는 다른 독특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아마도 인근 지역인 곡성 도림사(道林寺) 괘불탱화의 삼존도와 비슷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어쨌든 석가삼존상은 화면의 중심에 삼각형적으로 배치되어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이 삼존불 아래에는 동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남 증장천왕(增長天王) 등 사천왕 중 이천왕이 서 있다.

 당당한 모습으로 크게 묘사되어 오존상처럼 보이게 한다. 이들 사이에는 예배단이 있고 그 위에 향로를 봉안하였다.

부처의 머리 좌우에는 앞의 오존상보다 현저히 작은 10대제자와 2구의 화신불(化身佛)이 배치되었는데

개성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그 좌우 상단에는 다문(多聞)과 광목(廣目) 등 사천왕이 배치되어

화면의 네 모서리를 사천왕이 지켜주는 구도로, 삼존상과 함께 이 불화의 구도를 특징지어주고 있다.


불·보살상들은 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의 세련된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뾰족한 육계와 큼직한 계주 등은 물론,

 둥근 얼굴에 작은 코와 입, 큼직한 눈, 도식적인 귀 등은 4년 앞서 제작된 「보살사괘불탱화」와 비슷한 수법이다.

석가모니불의 늘씬한 상체와 균형 잡힌 체구, 통견의 대의(大衣)의 옷깃과 구획선에 묘사된 치밀한 꽃무늬,

작고 둥근 옷 무늬 등은 역시 16세기 중엽경의 특징들과 흡사한 것이다. 좌우 보살상의 호화로운 장신구 치레나

 광배 안의 꽃무늬, 화려한 꽃 장식 등에서도 역시 당시 보살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점은 사천왕에도 그대로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 불화의 독특한 면모는 밝고 화사하고

 호화로운 색채로서, 이 당시 불화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신원사 노사나괘불탱新元寺盧舍那佛掛佛幀


국보 제299호.

1664년(인조 22)에 응열(應悅), 학전(學全), 일측(一測), 석능(釋能) 등 5명의 화원 비구(畵員比丘)가 그렸다.

이 괘불탱에는 ‘갑진(甲辰)’이라는 간지(干支)가 적혀 있는데, 응열이 제작한 갑사(甲寺) 삼신불괘불탱(1650년 작)과

수덕사(修德寺) 노사나불괘불탱(1673년 작)으로 미루어 ‘갑진’은 1664년으로 추정된다. 화원인 응열, 학전,

 석능은 같은 밑그림을 사용하여 9년 후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도 제작했기 때문에 이들은 유사하다.

그리고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는 주존명(主尊銘)과 ‘대영산회탱(大靈山會幀)’의 명칭이 적혀있다.

설법인의 노사나불입상은 지권인(智拳印: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쳐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손 모양)의

 비로자나불 화불을 포함하여 9구의 화불(化佛)이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입상을 중심으로

10대보살, 10대제자(十大弟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사천왕, 화불, 비천상이 배치되었다.

 권속은 노사나불에 비해 조그맣게 묘사되어 등장 권속의 수가 많음에도 이후 유행하는 독존형 괘불탱처럼 보인다.

원통형에 가까운 신체의 노사나불은 갸름한 얼굴에 반달형 눈썹, 긴 눈, 인중이 짧고 입이 작은 근엄한 표정이다.

 거신광(擧身光: 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은 모란 덩굴무늬와 8구의 화불(化佛)로 장식적이다.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경책(經冊)을 얹은 연꽃을 든 보현보살,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日光菩薩)과

흰 달을 든 월광보살(月光菩薩), 정병(淨甁)을 든 관음보살과 보주(寶珠)와 석장

(錫杖: 중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지닌 지장보살 및 샌들(sandal)을 신거나 석장을 짚고 부채를 든 십대제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등의 자세, 복장,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에서 생동감이 엿보인다. 특히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붉은 두광으로 표현되어있다.


 이는 응열 등이 조성한 갑사 삼신불괘불탱(1650년)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

(1673년)의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에서도 같은 수법이 등장한 것으로 흔하지않다.

불·보살의 신체에 금채 대신 황색을 사용했으며 밝고 선명한 적색과 녹색 위주로 흰색, 청색, 분홍 등을

사용하여 현란한 느낌을 준다. 오색 광선을 배경으로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현신하는 듯한 노사나불의

손은 강조되었으며, 옷 문양과 영락 장식에 금채(金彩)하여 화려하다.

이 노사나불괘불탱은 1650~1673년 사이 충청남도 지방에서 주로 비로자나삼신불괘불탱을 제작한

응열을 중심으로 활약한 작가군의 계보와 그 화풍을 알려주는 기준작이라고 하겠다.









장곡사 미륵불괘불탱長谷寺彌勒佛掛佛幀


국보 제300호.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8.69m, 가로 5.99m. 철학(哲學), 천승(天勝), 신밀(信密), 일호(一湖), 해종(海宗) 등의

 화승(畵僧)이 1673년(현종 14)에 그렸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이 괘불탱은 화기에

 ‘영산대회괘불탱(靈山大會掛佛幀)’이라 쓰여 있고 본존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라 하였다.

연꽃을 들고 있는 화려한 보관불(寶冠佛)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둘러 선 군도식 구도이다.

 즉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독립된 존상으로 비교적 크게 표현되었고, 미륵존불의 협시로 6대보살(六大菩薩),

6대여래(六大如來), 10대제자(十大弟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천자(天子)와 천동(天童), 아사세왕(阿闍世王)과

위제희(韋提希) 왕비, 용왕과 용녀 등이 둘러 서 있다. 정면 입상의 보관불을 그린 후, 남은 공간에

 많은 권속들을 배치한 군도 형식은 단독 형식보다 선행한다.

보관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불 등 4구의 화불(化佛)이 묘사된 보관불은 천개(天蓋),

그리고 원형(圓形)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갖추었다.

 비만한 원통형 체구는 오른쪽 어깨가 넓고 왼쪽 어깨가 좁아 어색하지만 얼굴은 온화하다.








6대여래는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다보여래, 석가문불(釋迦文佛), 약사여래, 아미타불이고

 6대보살은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 법림보살(法林菩薩),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다.

보통 상단부에 등장하는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 그리고 범천과 제석천은 이 괘불탱에서는

사천왕과 함께 하단부에 배열되었다. 범천은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홀(笏)을 든 왕의 모습이다.

이 괘불탱의 주조색은 홍색과 녹색이며 그밖에 가볍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하늘색과 금니(金泥)를 대신한

황색(黃色) 등을 사용하였다. 신광의 모란 덩굴무늬 및 화면 테두리의 연속 꽃 문양이 화려하다.









청곡사 영산회괘불탱靑谷寺靈山會掛佛幀


국보 제302호.

1722년(경종 2)에 의겸(義謙) 등 9명의 화원이 제작했다. 정면 석가삼존불 입상을 화면에 부각시키고

남은 공간인 석가불의 두광 좌우에 각기 두 구의 불상·보살상·제자상을 조그맣게 그렸다.

이를 화면에 존명을 기입한 전라북도 내소사영산회괘불탱(1700년 작, 보물 제1268호)과 비교한다면

석가불 입상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석가불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주위로 다보불·아미타불, 관음보살·대세지보살, 가섭존자·아난존자가 배치되어 있다.


금강저(金剛杵: 악마를 깨뜨리는 무기) 문양으로 장식된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지닌 석가불은 윤곽선에

나발(螺髮: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 묘사된 머리에 중앙 계주(髻珠)가 있다.

그리고 큼직한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둥근 정상 계주에서

 흰색 방광(放光)이 뻗어 올라 좌우로 퍼지고 있다.









원주형(圓柱形)의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 석가불은 두 어깨를 덮은 통견

(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이다. 넓게 드러난 가슴에 강조된 만(卍)자 위로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다.

 각 존상의 눈과 목 아래에도 범자가 산재하였다.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봉오리의 줄기를 든 보현보살의 보관(寶冠)에는 한 쌍의 금제(金製)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불상보다 약간 작은 신체의 두 보살상은 얼굴이 작아져 신체의 비례가 적당하다. 투명한 흑사(黑絲)와 같은

원형 두광을 지니고 있다. 특히 문수보살 뒤로 석가불, 이 뒤에 보현보살이 서 있는 듯한 표현은 좁은 공간에

삼존불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것이다.

합장한 다보불과 아미타불, 화불(化佛)이 모셔진 보관 위로 흰 너울을 쓴 관음보살, 노비구(老比丘)인 가섭,

 젊은 승려의 모습인 아난 등 각 존상이 구별된다.





위 내용은 지난 2007년 문화재청이 발간한

"한국의 국보"  도록 사진 일부와 다음 백과의 해설 내용을 축약한 것.






The Miracle Of Life - Amanecer Ecu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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