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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14 월봉서원 춘향제

2014년 월봉서원 춘향제

 

 

2014. 4. 6

 

 

 왼편부터

신도비, 신도비 해설비, 묘정비, 헌성비

 

 

 

망천문(望川門)에서 바라본 빙월당(氷月堂) 

 

 

 

 

방명록 서명

 

 

 

 

 전사각

 

 

 

 

 

 

 

 

 

 

 

 

 

 

 

 

 

 

 

 

 

 

 

 

월봉서원 月峯書院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너브실廣谷에 자리한 월봉서원은 1575년(선조8)에황강 김계휘(1526 ~ 1582) 등이 고봉 기대승(1527 ~ 1572)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광산구 신룡동 고마산叩馬山 남쪽에 선생께서 지은 낙암樂庵 아래 망천사를 세우며 시작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망천사가 피해를 입자 1646년 산월동 동천 위로 옮겼으며 1654년(효종 5년)에'월봉'이라 사액賜額받았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1938년부터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빙월당(氷月堂)

고봉 선생의 큰아들인 기효승이 선조 11년(1578) 세운 것으로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앞면과 오른쪽 반 칸에 툇마루를 둘렀다.

 

 

 

빙월당 주련

책을 지고 스승 찾아 높은 암자 오르니 창문에 비치는 해 그림자 달리는 말과 같네.

오늘 힘쓰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 돼지와 용의 다른 날 한탄을 어찌 견디랴.

삼천명의 제자 적은 것이 아니지만 대청에 올라 방에 든 이 몇이나 있을꼬.

정사와 문장 이것 모두가 말단의 공부라 예나 지금이나 오직 덕행 있는 사람을 말하네.

 

 

 

 

 정조가 고봉선생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월설월(氷月雪月)’의 뜻으로 내린 당호이다.

 

 

  

 

 

 

 

 

 

 

축문 작성

 

 

 

 

 

 

 

 

 

 

숭덕사(崇德祠) 

 

 

 

 

 정안문 계단을 오르는 제집사 일동

 

 

 

 

 

홀기(笏記)를 창(唱)하는 집례

 

 

 

 

찬인의 배례

 

 

 

 

 

초헌관 

 

 

 

 

 

집례, 알자, 찬인의 재배

 

 

 

 

 사당에 오르는 제집사

 

 

 

 

 

신주 독을 여는 축관

 

 

 

 

신위 장촉

 

 

 

 

 

 

 

 

  

초헌관에게 제사 행하기를 청하는 부복

 

 

  

 

 

 

 

 신위 앞에 세번 향을 올리는 초헌관

 

 

 

 

 

준(樽)에서 제주(祭酒)를 뜨는 봉작

 

 

 

 

 

작에 제주를 따르는 봉작

  

 

 

 

 

 

 

 

 

 두 번 절하는 헌관과 학생 일동

 

 

 

 

 

 

 

 

 

 

 

 

 

 

봉작에게 잔을 받아 올리는 초헌관

 

 

 

 

 

 

 

 

 

 

 

 

 

 

 

 

 

 

 

 

 

 

 

 

 

 

 

 

 

 

 

 

 

 

 

축문 소지

 

 

 

 

 

 

음복상

 

 

 

 

 

음복

 

 

 

 

 

 

문헌공 고봉 기선생 효종대왕 치제문

文憲公高峯奇先生孝宗致祭文

 

 

영령이여하늘의 뛰어난 기운을 얻어세상의 명유가 되었네정제한 금 윤택한 옥과 같으며물속의 달 얼음 호로와 같았네가정의 교훈을 이어받아정주학을 연구하였네기운은 한 세상을 덮고이치는 만 가지 현상계를 꿰뚫었네이미 널리 배우고 예(禮)로 요약해서체와 용이 구비되었네탁월하게 높은 식견은호로에 의지하지 않았네일찍이 스스로 조예가 뛰어나여러 어리석은 사람들을 계도하였에문정공 이후로는도가 날로 황페해졌는데도산이 뒤를 이어 선창하니진정 그루터기가 되었네경이 실로 좌우에서부축하여 정도를 이으니사우가 의탁함은북에 북채가 있는 것과 같았고성리학의 분변은여합부절하듯 합하였네덕은 반드시 이웃이 있으니사문이 고단하지 않았네독에 넣어둔 보배로나라를 혼미하게 하지 않고 세상에 내놓아출처와 행장을오직 의에 따라 하였네평소의 행동이 더욱 곧으니영고성쇠에 변하지 않았네귀전암이라 이름 붙였으니석인이 즐기는 곳이었네깊이 생각하고 완미하여심오한 도의 경지 맛보았네성조가 오오시니어진 인재와 준걸들이 많고 많았네선류(善類)들이 대거 등용되어청운의 길에서 함께 드날렸네현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가 천 년 만에 만나요순시대를도야하려 하였네엄한 풍도로 스스로를 지키고정론을 부지하였네금고된 이와 억울한 이들 신원하느라경은 때로 청포(靑浦)에 엎드렸네경전을 인용하고 예를 정하여검소하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하였으니당나라 때의 태산북두요한나라 조정의 모범이었네암은 여살 익힌 문장은전모로부터 얻었네초창하고 윤색하여국가의 무함을 깨끗이 씻었네치도를 아름답게 꾸며출륭하게 세상에 쓰였네경연에서 유익한 말을 아뢰어군주에게 인정을 받았네은미한 말과 깊은 뜻은한 치 한 푼을 분석했는데혹은 이것을 책에 저술하고혹은 도식을 만들었으며혹은 군주의 앞에서 진언하니정성이 지극하여 믿음을 받았네책임은 경세제민을 맡았으나마음은 강호에 있었네남쪽 지방을 가다가 절반도 못 가서병이 들어 깨어나지 못했네의원을 보내 문병하였으나 미치지 못한 채철인이 영우너히 가 버렸네큰 집에 대들보가 무너지고하늘의 추성이 꺾이었네하늘은 어찌 이리도 빨리 빼앗아 갔는가지금은 훌룡한 인재가 없도다시행을 끝까지 못하였으니천운인 걸 어찌할 건가애통함이 더욱 깊으니은혜를 내리는 왕명이 더욱 지극해라능연각에 얼굴을 그리니구천에도 영광이 있네공로는 종묘에 남아 있고교화는 생도들에게 미쳤어라부족한 내가 뒤를 이어 즉위하니시대는 다르나 서글픈 탄식이 일어나네한 시대에 같이 태어나지 못함이 한스러우니잠시인들 잊을 수 있겠는가《논사록》이 남아 있으니마땅히 이것을 좌우에 두고 보리울창한 저 아름다운 산소에는산골짜기 좌우로 감돌고 있으며산수(山水) 사이에서 즐기던 유허에는아직도 남은 향기 변치 않고 있네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영령을 모시니많은 선비들의 소원이었네선비들이 이곳에서 수학하며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쏘이게 되었네길일을 택하여 봉안식을 올리고맑은 술잔을 올리오니신은 이것을 흠향하고길이 이구역에서 편안히 계시구려

 

 

 

 

 

 

문헌공 고봉 기선생 효종대왕 치제문

 

정종대왕(正宗大王) 무신년(1788, 정조 12) 4월 11일에 신(臣) 예조좌랑 박흥복(朴興福)을 보내어 고(故) 승지 기대승의 영령에 유제(諭祭) 하였다.

 

 

명종과 선조의 태평성세에여러 현인들이 울흉하였네.퇴계와 율곡에게많이들 찾아가 고증했는데경은 당시에 명성과 덕망이 함께 올라갔네.천품이 크게 뛰어나고영기는 세상을 덮었어라.이와 기는 원류와전례의 상과 변에대하여명쾌하게 분석하니선배들도 존경하였네.얼굴빛을 엄숙히 하고 조정에 서니군왕의 외척들이 숨을 죽였네.태평성세를 만나행하고 그침을 여유 있게 하였네.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돌아가니명망과 절개가 더욱 드높았네.내가 그의 유서를 읽으니그 이름이 《논사록》이었네.사관이 모아서 기록한 것을성조께서 명명하셨네.훌륭한 그 말씀이여!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함이 한스러워라.촛불을 여러 번 바꾸어 켜고 읽으며서너 번이나 무릎을 치고 감탄하였네.시대는 다르나 감동되니내 그리움은 더욱 두텁네.이는 실로 정신으로 사귀는 것이니어찌 옛날과 지금의 간격이 있을쏜가!그 풍치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으니저 호남을 돌아보네.선생의 사당 우뚝 솟아 있으니그 덕은 산처럼 높고 물처럼 길어라.관원을 보내어 술잔을 올리니영령은 오시어 흠향하소서!

 

 

 

 

 

 

 

Des - The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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