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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근자에 선물 받은 책

 

 

용휘 저 "최제우의 철학" 출판기념회 겸

한울연대 상임대표 일포장님 생신 축하연.

(묵방산 들국화동산)

 

 

 

 

 

 

 

 

 

 

 

요애님이 낙점하셨다는 생신 축하 선물을 입고 파안대소 하시는 일포장님.

 

 

 

 

 

 

 

 

 

 

 

 "최제우의 철학 시천주와 다시개벽"

한울연대 김용휘 사무총장(우측 앞에서 첫 번째) 

 

 

 

 

 

일행 모두가 한 대목씩 윤독하는 모습.

 

 

 

 

 

 

머리말

 

 

- 이 시대 왜 다시 동학인가 -

 

세계 경제가 장기적인 불황과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생태계 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으로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는 미래의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에너지 문제, 핵발전소의 위험성 역시 관과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한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내전, 분쟁과 갈등, 테러와 대테러, 대량학살, 기아와 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이후로 민주주의 역시 후퇴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기본권조차 시장 원리 속에서 침해 당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부는 자본에 포섭당해 공정한 조정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은 점점 더 탐욕스럽고 사려 깊지

못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듯합니다. 모든 부분에서 경쟁만 강조하면서 삶의 또 다른 원리인 협동과 유대,

존중과 배려가 사라진 숨막히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공포와 불안이 우리 삶 깊숙이 곰팡이처럼 스며들어 있고,

삶은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의 시대'입니다.

 

카를 야스퍼스(KarI Jaspers, 1883~1969)는 1949년 출간한 『역사의 기원과 목표(The Origin and of History)』에서

기원전 8세기에서 2세기까지 600년의 기간 동안 각 대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사유의 창조적 혁명, 새로운 종교적

에토스의 출현을 '차축시대'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첫 번째 정신문명이 꽃핀 획기적인 시기,

첫 번째 문명의 대전환기를 가리킨 용어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문화는 그냥 꽃핀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고통위에 핀

꽃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청동기, 철기문화로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 수많은 부족국가를 합병하여 거대한 제국을 건설

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폭력과 죽임이 일상화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그 폭력과 고난에 대한 응답으로 참된 인간의 길을 제시하면서 나온 것이 그리스문명,

히브리문명, 인도문명, 중국문명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문명이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위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다시 한 번 커다란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는 서양 근대의 급속한 팽창과 산업화, 제국주의와 함께 동서가 충돌하면서 근대 물질문명과

민주주의의 혜택을 확장시킨 즉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는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그 이전 시기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계급적 평등 문제, 인권, 여성성의 문제, 인간성

상실과 소외, 핵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명과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동시에 새로운 영적 도약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는 각 문화권으로 분화되었던 인류의 정신적 유산들이 지국촌 시대를 맞아 통합적 영성으로 융합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볼 때 19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는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제2의 '축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중엽의 수운(최재우, 1824~1864) 선생은 이 시대를 '다시개벽'의 시대라고 부르짖은 바 있습니다.

수운 선생의 '다시개벽'의 의미는 새로운 정신적 * 영적 도약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그 길을 제시한 획기적 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동학(東學)은 본래 하나의 종교적 교단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동학은 본래 "동국의 학'

'조선의 학' 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이라고 하고 우리 역사를 '동사(東史)'라 하고

우리의학을 '동의(東醫)'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국의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동학'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학은 서학에 대한 동학이 아니라, 유학과 서학을 포함한 모든 외래 학문에 대해 '우리 학문'을 의미한 것입니다.

 

비록 '조선의 학'으로 출발했지만, 동학은 보편적 철학사상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운 선생의 고민은 지정학적으로 언제나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비주류 변방의 제3세계 대다수

힘없는 약소국의 고민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학은 요즘 학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포스트콜로니얼(Postcolo-

nial)의 시각에서도 독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서양 문물이 물밀듯 들어와 동서 문명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선생의 학문적

사색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 변두리 경주 출신으로 양반이었지만 평민과 다름없는

신분적 한계 속에서 계급의 문제와 서민들의 고난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동학은 근대 문명이 하늘로 대표되는 삶의 신비를 외면하면서 생긴 인간성 상실과

정신적 궁핍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19세기 수운 선생의 고민은 동서가 충돌하고 서민들의 삶이 나락에 떨어지고,

하늘과 인간의 괴리가 심해지면서 생긴 삶의 총체적 위기를 떠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밑바닥 민중의 고난과 고통에 입각하여 동양의 유불선 삼교를 바탕으로 서학의 충격을 흡수하고 있고,

하늘과 인간의 재정립을 통해 보이지 않는 차원을 아우르면서 삶의 신비가 가리워지고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고

서양의 근대 문명이 한계점에 부딪혔을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비록 변방의 것이었지만 보편성을 가진 철학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동학을 다시 기금의 '윌 철학'으로 되살려 깊이 읽어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11월 삼각산 아래에서 김용휘

 

 

 

 

 

 

머릿말

 

 

 - 중략 -

 

이슬은 사뭇 덧없기도 하고 맑은 투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 땅에 이슬처럼 맻혀 어느 날 자취도 없이 떨어져 내리겠지요. 저 역시 한 방울 이슬입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지내오는 동안 이슬에 비쳤던 것을 두고 말씀드리는 것이"예언으로 가는 길"입니다.

것이 "도선비결"을 해석하는 길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예언 속으로"입니다.

거칠고 부족한 글입니다. 그러나 어는 대목이나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의 목숨에 새겨졌던 광경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비갠 날 먼 산이 가깝게 보이듯 안으로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맑게 드러나는 때가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거ㅔ 해서 보고, 또 알게 된 것입니다. 어쩌다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그냥 스쳐지나가기에는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하여 사람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를 정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꼭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발단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예닐곱 살 무렵이 아닐까 합니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기 작전이거나 그 앞뒤일 것입니다. 그 속에는 저의 어린 날의 정경이

 이슬처럼 어려 있습니다. 아무렴 한글도 배우기 전에 그럴 리가 하며 고개를 가로 저을 법합니다.

저 자신도 의아합니다. 바람이 스치듯 어떤 울림이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몸이 자지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이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 모든 비밀이 풀릴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러나 아무리 고개를 갸웃거려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의문의 정체도, 답도 알 리 없이 소용돌이치는 안타까움 속에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하며 자신을 달래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무심하게 세월은 흘렀을 것입니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바람결에 묻어오는 새소리를 흘려듣는 나무꾼처럼

하염없이 생각에잠겨 있던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젊은날이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사회관계 속에서 정당성을 구현할 것인가."

어린 날 나를 휘젓던 안타까움이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난 의문일 것입니다.

의문은 보이지는 않지만 포승줄처럼 저를 단단히 묶고 있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답이 있기보다 어린 날 미지에 귀 기울이던 흐름이 저의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나 의문을 느꼈던 것은 결국 어떤 답이 아니라 미지에 가려진 자신의 생명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물결 같은 몸짓이었음을 이제 어렴풋이 느낍니다.

 

 

- 하략 -

 

 

 

 

 

 

 

 

- 엮은이의 글 중에서 -

 

 

<나는 누구인가?>

 

어느 누구에게나 이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문제처럼 해결하기 어렵고, 그래서 언제나 뒤로 미루어지는 문제도 없을 것이다.

슬프게도, 그리고 기이하게도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금 이곳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나>라는 구분이 과연 어디까지인지********. 그리고는 그냥 쉽사리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고,

또 마음과 동일시해 버린 뒤, 그만한 세계에 갇혀 그만한 삶을 꾸려 나간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와 괴로움은 <진정한 나>, 즉 <진아(眞我)>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진아를 알면 풀리지 않는 문제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아를 아는 일이다.

 

 

 

 

 

 

 

 

 

Changing Destiny

운명은 정해져 있으나 바꿀 수 있다.

 

 

과히 어렵지 않은 얘길 너무 지루하게 풀어가는 느낌이랄까?......

 

 

 

 

 

 

 

 

- 서문 중에서 -

 

세차게 비가 내렸던 어는 날,

수업을 마치고 중간에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월봉서원으로 향했다.

고봉의 아들이 시묘살이 햇다던 칠송정(七松亭)

난간에 앉아

기와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벗삼아

고봉집』을 읽었다.

 

고봉이 배를 즐겨 띄웠다던 황룡강은 지금도 유유히 흐른다.

 

임진년(壬辰年) 매화꽃피는 날에.

 

임준성 삼가.

 

 

 

 

雪花

 

 고봉 기대승 / 임준성 역

 

 隨風間葉正輕盈

바람 좇아 잎에 눈꽃이 가벼이 날리고
 蓋地連空亂玉霙

어지러운 눈꽃이 땅을 덮어 하늘에 이어졌네
頃刻天工歸變滅
잠깐 사이 하늘의조화가 사라졌지만

夜深留得紙牕明

한밤중에도 종이창에 밝게 비치네

 

 

 

바람따라 흩날리는 눈발이 나뭇잎에 내려앉아 꽃이 되었다.

순식간에 은빛세상으로 변해버지라 어디가 땅인지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하늘의 조화를 예측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밖이라 그저 자연의 생생한 모습에 경외할 뿐이다.

그러나 달빛도 스며들지 못하는 칠흑같은 밤이 눈꽃에서 빛으로 훤하다.

 

 

 

 

 

 

 

퇴계와 고봉은 1558년부터 1570년 12월 퇴계가 별세할 때까지 13년간

110통 이상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서 서로 소통하였다.

두 사람은 26살의 나이 차이를 초월하여 흉금을 털어놓고 정치, 사회, 철학, 개인사, 가정사 등을

전방위적으로 대화하였다.

 

특히 두 사람의 소통은 요즘 말로 소셜 네트워크였다.

퇴계와 고봉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는 배달부에 의하여 실사되어 주변 선비들이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인물 기행 형식으로 쓰여졌다.

 

-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

 

 

 

 

 

 

 

 

 

문화와 문학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정서적 가치와 자긍적 가치를 지닌 공기나 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가치를 대체하기 매우 곤란하다.

경복궁이나 종묘 등을 경제 가치로 따지기 곤란하듯,

감동적인 시 한 편이라고 했는데, 그 '감동적인' 것의 무게를 어느 저울에 달 수 있으며,

아름다운 청자라 했을 때 '그 아름다운' 것의 크기를 그 어떤 척도로 잴 수 있겠는가?

 

-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

 

 

 

 

 

 

 

 

 

 

 

 

 

 

저자 박문기

 

48년 생, 전북 정읍 출생으로 한학 수학.

어머니 최영단을 보살펴준 이인(異人) 인정상관의 내력을 전해 듣고

역사에 천착해온 인물이다.

 

 

 

 

 

 

- 머리말 중에서 -

 

"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더구나 묘한 것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문화를 연구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은 외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

 

 

 

 

 

 

 

제 서재는요, 사고뭉치!

한비야가 한마디로 표현한 서재는 이러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곳,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곳이라고 말이다.

이 세상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여기서 꾼다고 한다. 이 서재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산이 보인다.

책과 산, 한비야가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서재인 것이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딱 한군데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이곳 ‘사고뭉치’ 공간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책은 한비야 저서에서 언급된 책들이자 한비야 인생에서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다.

세계 여행과 우리나라 국토 순례를 하면서, 구호활동을 하면서,

 유학생활에서 한비야의 손에는 늘 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비야의 글들을 보면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비야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지 궁금했다.

것은 한비야가 이미 책으로 바라본 세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미술, 건축, 패션, 미디어아트와 같은 예술 영역과 과학의 융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의 역사와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은 과거 인류의 미술 속에 숨겨져 있던 과학의 원리와 기술부터 설명한다.

신석기시대의 컴퓨터였던 스톤헨지, 스테인드글라스 속에 숨은 나노 과학 기술 등은

지금 보아도 놀라운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보여 준다.

 

 

 

 

 

 

 

(개정판)

 

그는 이미 반세기 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적인 파장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놀라운 일이다.

언어가 그렇듯, 책은 침묵의 언어를 누리지 못한 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에 담긴 대담들은 영적 구도의 길잡이로 충분하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성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명쾌함이 있다. 편안하다.

 

이거룡(동국대연구교수. 인도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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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무식한 자에게 있어 책 선물 만큼 소중한게 또 있을까?

 

송년의 언저리,

 지인들로 부터 선물 받은 책 몇 가지를 나열 해보았다.

물론 진즉에 일독을 했던 책들이 대부분.

 

나만의 독서 취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잡식성인지라 중구난방 식의 독서 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거라 봐야겠다.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뭔가 끄적거리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위 저자들 처럼 책으로 엮어내지 못해 안달이 난 군상들이 주위에 널려있음을 본다,

 

치기와 애교 수준으로 봐 줄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책 수 백권에 나무가 몇 그루쯤 버혀나가는지 한 번쯤 헤아려 본 적이나 있으신지.

 

무작정 자신을 낮추기가 매우 어려운 세태라는 것쯤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또한 그러함에도......!!

 

 나를 비롯, 우리 모두,

제발 '깜냥' 들 좀 헤아리는 겸손과 지혜를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O holy night을 따라 부르자니,

 임진년 또한 소실점의 끝자락에 속절 없이 다가서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