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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화훼영모도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



꽃과 나무와 풀과 새, 고양이와 개 등, 

여러 동식물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그려낸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는

 덕성과 도덕적 이상을 충족시키는데 일조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입신출세, 부귀영화, 자손의 번창같은

현실적 욕망을 대변하면서, 오랜 세월 우리 곁에 머물고 전승되어 강한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기에

다양한 그림의 소재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림 속에 녹아있는 옛 선인들의 지혜와

풍부한 감성까지를 읽어 낼 수 있다면 감상의 재미와 감동은 배가 될 터이다.






이양도二羊圖

공민왕, 비단에 채색, 15.7×22cm, 간송미술관.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 1333~74)은 불과 12살에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속국의 치욕을 경험한 터.

볼모 시절의 혼인녀 노국대장공주가 출산 중 죽게되자 나랏일을 멀리하고 그녀의 초상화만 보며 세월을 보낸다.

직접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릴만큼 그림에 재주가 빼어난 인물로 기록된다.


얼핏, 조맹부의 <이양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림으로 마치 직업 화가의 솜씨를 연상시킨다.

근대 최고의 감식가 위창 오세창은 근역화휘(槿域畵彙) 첫머리에 이 그림을 올려놓았을 정도.


터럭 한 올, 한 올의 질감까지를 치밀하게 묘사한데다 공민왕의 고매한 품격까지 더해진다는 평.

비단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 두 마리 양을 그렸는데 작품의 크기나 전체적 구성으로 볼 때,

어떤 그림의 잔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수박과 들쥐

신사임당, 종이에 옅은 채색, 34×28.3cm, 국립중앙박물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대단한 예술적 재기를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이다.

사임당은 전문 화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채 오십 년도 살지 못한 생에 많은 그림을 남겨놓았다.


송우암은 사임당의 초충도를 보고난 느낌을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은 증찬성 기 공(李公, 이원수)의 부인 신 씨가 그렸다.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 사람의 힘으로 범할 수 없는 것이다. 오행의 정수를 얻고 원기의 융화를 모아 조화를 이루었다.

마땅히 그가 율곡 선생을 낳을 만하다."


나비와 패랭이꽃에서 느껴지는 평면적 묘사와 나열적 배치로 인해 언뜻 자수같은 느낌도 든다.

그림의 주제가 되는 수박과 쥐는 사실성을 살려주는 내용으로 마치 동화 속 의인화된 수박을 떠올리게 한다.

뿌리 부분에 가장 큰 수박을, 그 옆으론 조금 어린 수박을 배치하고 그 뒤를 이어 시든 꽃을 달고 있는 꼬마 수박을,

넝쿨 끝으론 활짝 핀 수박 꽃을 올려놓았다. 햇빛을 많이 받는 윗부분은 짙게 그려서 입체감과 사실감을 잘 살렸다.


이 그림은 여덟 폭의 초충도 가운데 하나로, 신사임당의 진작(眞作)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포도도

신사임당, 비단에 옅은 채색, 31.5×21.7cm, 간송미술관


명나라 명필가이자 화가인 악정의 식물예찬이다.


"줄기가 수척한 것은 청렴함이요, 마디가 굳센 것은 강직함이요, 가지가 약한 것은 겸손함이요,

잎이 무성하여 그늘을 이루는 것은 어짐이요, 덩굴이 뻗더라도 의지하지 앟는 것은 화목함이요,

열매가 과실로 적당하여 술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재주요, 맛이 달고 담담하며 독이 없고 약재에

들어가 힘을 얻게 하는 것은 쓰임새요, 때에 따라 굽히고 펴는 것은 도이다. 그 덕이 이처럼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마땅히 국화, 난초, 매화, 대나무와 더불어 선두를 다툴만 하다."


율곡 이이가 16세에 지은 신사임당의 행장(行狀)에 

 "자당께서 묵적(墨迹)이 남다르셨다.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드디어 산수도를 그리셨는데 지극히 신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다.

모두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그리신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널리 전해진다."라고 밝히고 있다.


현  오만 원권에 들어 있을 정도로 신사임당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낙관이나 날짜, 장소 이름 등을 쓴 관지(款識)는 없다.

사임당을 칭찬한 조구명의 글이 그림에 별도로 붙어 있을 뿐이다.










모견도母犬圖

이암, 종이에 옅은 채색, 73×42.2cm, 국립중앙박물관.


어미 개가 나무 그늘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그림으로

윤곽선을 거의 쓰지 않고 먹의 번짐으로 그린 어미개와 강아지들의 흰 바탕에 자연스럽게 젖어든다.

편안하게 느껴지는데는 필치도 큰 몫을 차지 하고 있다. 개들의 심리와 기품까지를 담아낸다는 것은 보통 솜씨가 아니다.


이암은 짐승 그림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그림들도 매나 개 같은 동물 그림뿐이다.

개 그림은 도둑이 드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종종 그려지는데 나무와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한자로 개는 술(戌)이고 나무는 수(樹)인데, 이것이 지킨다는 의미의 수(守)와 글자 모양과 음이 비슷하기 때문.








야우한와(野牛閑臥)

김시, 비단에 옅은 채색, 14×19cm, 간송미술관.


그야말로 단순 소박한 그림이다. 소 뒤의 검은 바위와 나지막한 산의 형상을 소의 모습과 닮게 그려

조화를 이룬 점에서 당대 최고 문인 화가다운 기량과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양송당 김시(金시, 1524~93)는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김안로의 막내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으나 혼례를 치르는 날,

아버지가 압송되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겪게 된다. 하루 아침에 역적의 자식으로 전락하고 만 것.

후로 그림에만 전념하여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매김 된다.


김시와 동시대를 산 퇴계가 그의 소 그림을 보고,

"천 년 전 도연명의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감탄하게 하는구나."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소 그림은 은둔과 무욕을 상징하는 동물로 도연명의 삶과 닮았다고 여긴 것.

이황은 그런 김시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다.


그런데 소의 모양새가 눈에 거슬린다. 조선의 소가 아니라 중국 남방의 물소인 것이다.

성리학이라는 외래 이념을 숭앙하던 시대였음을 주지한다면 일견 이해가 가능할 터.

이렇듯 예술 작품도 시대 상황과 이상에 얽혀있음을 잘 알게 해주는 대목.

대저, 예술을 일러 이념의 창이요, 시대의 창이라 하지 않았던가.?










묵포도圖

황집중, 모시에 먹, 27×22.1cm, 국립중앙박물관.


영곡 황집중(黃執中, 1533~?)은 포도 그림을 문인화의 일원으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과감한 생략으로 풍성한 느낌은 덜 하지만 경쾌한 필치와 변화 무쌍한 먹의 조화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둥근 열매와 큰 잎, 유연한 덩굴로 인해 자칫 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소재를  맑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그려냈다.

포도송이와 잎을 최대한 억제하고, 포도 줄기와 덩굴을 강조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한 필획으로 공간을 나누는 줄기와 덩굴의 묘사는 마치 한 폭의 묵매나 묵란을 보는 그낌을 준다.

포도 그림이 문인들에게 사군자처럼 받아들여진 이유를 이 그림이 잘 보여 주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어몽룡, 황집중, 이정을 '일기(一技) 삼절(三絶)'이라고 부른다.

각각 매화, 포도, 대나무에 전념하여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황집중의 포도 그림은 이계호, 홍수주와 같은 문인 화가들에게 이어지면서 조선 묵포도의 전형을 이루었다.










연지백로蓮池白鷺

이징, 비단에 옅은 채색, 31×21cm, 간송미술관.


허주 이징(李澄, 1581~?)은 왕실 출신 화가다. 부친 아경윤과 삼촌 이여윤도 당대를 대표하는 화인이었다.

어릴 적 다락에 올라가 사흘 동안 그림을 그리다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은 전력의 허주.

집안 내력답게 그도 훗날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장한다.


그림을 좋아한 인조가 그를 궁중으로 불러 들였고, 허균은 '본국제일수(本國第一手)로 불렀다.

 이징은 산수, 인물, 묵죽, 화조 등 전 분야에 걸쳐 탁월한 솜씨를 보일만큼 가히 독보적이었던 인물.


<연지백로>는 짙고 옅은 몇 개의 선으로 간략하게 그린 백로는 꼿꼿한 다리와 날카로운 부리는 물론, 깃털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연잎의 높낮이를 달리하였고, 갈대의 삐죽함으로 연잎과 대비를 시켰다.

군데군데으 물망초와 마름도 대략 형태만 옮겼지만, 그로 인해 전체에 생기가 돈다.

백로와 연은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는 뜻. 전체적으로 상반된 자세와 세부 묘사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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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서작(古梅瑞鵲)

조속, 종이에 먹, 100×55.5cm, 간송미술관.


정교한 세련미가 흐른다. 필치뿐만 아니라 화면 구성도 감탄할 정도로 정교하다.

아랫부분에 댓잎을 그려 넣어 안정감을 연출시켰다. 까치의 묘사에 있어서도 창강의 감각과 필치가 번득인다.

옅은 먹의 매화와 대비된 진한 농묵의 까치의 정확한 형상이 돋보인다.

 색감과 뜻과 형상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세속 명리를 모두 버리고 문학과 예술로 일세를 관통한

창강 조속의 삶과 정신이 잘 표현된 조선 중기 유행했던 수묵사의화조화(水墨寫意花鳥畵) 가운데 최상의 작품이다.









老松靈芝圖노송영지도

정선, 종이에 옅은 채색, 147×103cm, 송암미술관


사군자을 칭송하기 훨씬 이전에 세한삼우歲寒三友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대나무와 매화는 사군자에 편입되었지만 소나무는 빠졌다.

이윤 즉, 소나무의 조형성은 너무도 복잡하여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이외엔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

비록 사군자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진즉부터 모든 '나무의 왕 '으로 이미 칭송되어 왔던 터.


현존하는 작품을 놓고 볼 때, 소나무만을 단독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는 겸재 정선이다.

<노송영지도>는 고대박물관에 소장된 <사직송>과 함께 겸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소나무와 영지 둘 다 장수와 관련된 소재로 아마도 지인이 오래 살기를 바라며 그려 준 그림일 듯하다.


오른쪽 하단에 '을해추일 겸재팔십세작(乙亥秋日八十歲)'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서과투서西瓜偸鼠

정선,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정취보다는 기세를 중시하고,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하고 있기에

 겸재의 그림은 옛 그림 가운데 가장 단단하고 강하다 할 것이다.


헌데 이<서과투서>는 서정적이요 섬세하기까지 하여

언뜻 신사임당의 그림을 떠올리리만치 다분히 여성 취향적 분위기와 미감을 보여 준다.

정선의 호방한 산수화 대작도 이런 정밀하고 디테일한 사생력과 구도 감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말했다던가.

"겸재는 여든 넘어서도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촛불 아래서 세화(細畵)를 그렸는데 털끝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라고.











어약영일魚躍迎日

심사정, 종이에 옅은 채색, 129×57.6cm, 간송미술관.


잉어가 등장하는 경우는 대부분 등용문 登龍門고사와 관련되어 있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배경으로 묘사한 것은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자  그야말로 시원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다.

윗부분으 관지에는 '정해젼(1767년) 2월 삼현을 위해 장난 삼아 그리다'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삼현'이라는 호를 가진 인물의 과거 합격을 바라며 그린 듯한데, 삼현이 누구인지는 밝여지지 않았다.


잉어의 수염 하나와 옆줄 하나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 낸 묘사와 짧은 필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역동성을 잘 살린 모습에서 노대가의 원숙함을 엿볼 수 있으니,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지난 세월에 대한 감회와 미래의 소망이 투영된 그림일런지도 모른다.










유사명선査鳴蟬

심사정, 종이에 옅은 채색, 28×22.2cm, 간송미술관.


진나라의 육운은 한선부(寒蟬賦) 서문에서 매미를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의 덕성을 갖췄노라 칭송했다.


고려 때의 문인 이규보도 이런 육은의 생각에 공감했던 모양.

"머리 위에 갓끈 무늬가 있으니 학문이 있으며, 기를 머금고 이슬을 마시니 맑음이며,

기장과 피를 먹지 엏으니 염치가 있으며, 거처함에 집을 지어 살지 않으니 검소함이며, 기다려 절개를 지키니 신의가 있다."


버드나무 등걸에 앉은 매미 그림으로 전체적으로 맑고 소박한 느낌이며 웬지 모를 쓸쓸함이 배어 있다.

거친 가지와 드문드문 난 녹갈색의 잎들은 여름의 무성함보다는 가을의 스산함을 보여 준다.


육운이 매미의 다섯가지 덕성을 말했는데, 가장 중요한 인고(忍苦)를 빠뜨렸다.

매미는 일주일을 살다 가기 위해 7년을 땅속에서 견뎌낸다. 그래서 한편으론 덧없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역적의 후손이라 불리며 일생을 그림에만 매달린 사대부 화가 심사정에게는

매미의 다섯 가지 덕성보다는 인고와 허망함이 먼저 보였을 것이다.

서글픔과 애달픔을 껴안고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만약 이 그림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매미가 아닌, 심사정의 가슴에서 토해내는 숨죽인 흐느낌일 것이다.









자위부과刺蝟負瓜

홍진구, 종이에 옅은 채색, 25.6×15.8cm, 간송미술관


고슴도치가 오이를 짊어진 모습은 옛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낮설지 않은 장면인 듯,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슴도치 외 따서 지듯.'이란 속담이 있듯이 말이다. 여기저기 빚을 내는 사람을 뜻하는 이런 모습은

 제 몸에 비해 버거운 모습을 상징하는 듯. 대개의 넝쿨식물처럼 오이에는 자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헌데 윗부분의 국화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길상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추가된 것이다.

오른편 윗쪽에 '배불뚝이 나무꾼'이라 적었으니 아마도 화가의 만년작인 듯.


홍진구는 조선 후기의 화가인데 집안 내력이나 신분 등 정확한 활동 시기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전하는 몇몇 작품의 기량과 품격으로 보아 예사로 넘길 화가는 분명 아니다.

호기심이 절로 생기는 재미난 그림이다.










설송도雪松圖

이인상, 종이에 먹, 117.4×52.7cm, 국립중앙박물관.


능호관 이인상(李麟祥, 1710~60)의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수직으로 뻗은 소나무는 중간 부분만 그리고 위는 생략해 그 높이를 가늠키 어렵다.

하늘에서 떨어진 듯 매달린 가지와 잎에서 소나무가 지내 온 연륜을 짐작할 뿐이다.

 온 하늘이 잿빛 먹물로 온통 흥건하다

. 흰 바탕으로 쌓인 눈을 묘사했는데, 어둑한 하늘과 스산한 대기의 느낌이 잘 살아나 있다.

담박한 필치임에도 긴장감과 엄숙함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구부러진 소나무 하나를 더 그렸다.

늠름한 낙락장송 뒤로 곧 쓰러질 듯 누운 소나무를 그린 능호관의 의중은 무엇일까?


수직의 소나무가 작가 자신의 꿈과 이상이라면. 누운 소나무는 그가 처한 현실이리라.

명문가의 서출이었지만 선비다움을 실천하며 살아간 이인상. 드높은 이상과 굴곡진 현실 사이에서 고민과 좌절로 점철된

생을 살아갔지만 불굴의 의지와 초연한 정신으로 견뎌내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음이 그림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변상벽, 비단에 옅은 채색, 94.4×44.3cm, 국립중앙박물관.


암탉이 벌을 잡아 부리에 물고 있고, 여섯 마리의 병아리가 몰려들었다.

병아리를 바라보는 암탉의 눈에 자애로움이 읽혀진다. 사람 눈 보다 그리기 어렵다는 동물의 눈.

이런 까닭에 동물화를 잘 그린 화가들은 대체로 초상화에 능숙햇던 화원 화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화재 변상벽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초상화가로, 영조의 어진을 두 차례나 그렸고 물경 백여 점에 이르는 초상화를 그렸다.

생몰년은 알 수 없는데 그를 일러 '변고양이', '변닭'등의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실감과 생동감 넘치는 그의 동물 그림은

당시 유행하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같이 지극히 사생적이다. 또한 조선 고유의 미감과 정서를 중시하는 그림이 유행하던

당시 화단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동물 그림에서 이루어 낸 또 하나의 진경(眞景)이라 하겠다.









욱일호취旭日豪鷲

정홍래, 비단에 채색, 118.2×60.9cm, 국립중앙박물관.


예로부터 매는 뭇 새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응(鷹)'은 영웅(英雄)이라 할 때의 '영(英)'자와 중국 발음이

'잉'으로 같아 영웅의 상징으로 종종 쓰였다. 삼재(三災)나 마마 같은 질병을 막기 위한 부적으로 머리가 셋 달린

삼두매가 그려졌고, 정밀하고 섬세한 매 그림도 같은 목적으로 그려졌다. <욱일호취>는 후자에 속한다.


일출이 시작된 바닷가, 늠름한 매 한 마리가 바위에 앉아 있다.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다.

매서운 집중력과 긴장감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화면의 구도는 매의 자태와 기상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짜여 있다.

 마치 조준경의 한복판에 매가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에 집중된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앟기 위해 매 주위는

물결 무늬를 생략하고 안개로 처리했다. 마치 왕실에서 사용하던 일월오봉도의 파도와 해를 보는 느낌이다.


이 그림은 왕실에서 정초에 세화(歲畵)로 그린 그림일지도 모른다.

신하들에게 길상적 내용을 담은 세화를 선물로 주곤했다. 장엄한 일출과 웅혼한 기상의 매 그림을 보면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마음을 다잡아 나라의 기둥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도 아울러 담고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굳이 설명치 않아도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말이나 글과 다른 그림만의 가치와 매력을 정홍래의 그림이 잘 보여 준다.








향원익청香源益淸

강세황. 종이에 채색, 115.5×52.5. 간송미술관.


"香源益淸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주돈이의 애련설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연꽃을 좋아한다. 연꽃은 비록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 속은 비고 겉은 강직하며, 넝쿨도 없고 가지도 없지만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높이 우뚝 솟아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생각컨데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요, 연꽃은 군자다."


영정조 대에 활동한 사대부 화가 표암이 주돈이의 '애련설' 명문의 감흥을 그대로 살려 그림으로 옮겼다.

풍부한 여백과 간결하고 조화로운 구성으로 담백한 맛을 살렸지만 묘사는 무척 사실적이다.

표암의 그림 가운데 이례적으로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런 사생성과 현장감을 갖추기 어려운데, 늘 봐 오던 연밭의 풍경을 오롯이 옮긴 듯하다.


표암이 중년 이후 여생을 보낸 경기도 안산은 '연성(蓮城)'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사실적 연 그림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겠다.








황묘농접黃猫弄蝶

김홍도, 종이에 채색, 30.1×46.1cm, 간송미술관.


연초록 풀이 대지를 가득 덮고, 바위 옆에는 패랭이'꽃이 활짝 피어 있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고, 하늘과 땅이 물들어 노란 기운이 감돈다.

화창한 봄날의 풀밭, 긴 꼬리의 검푸른 제비나비가 날아들었다. 봄볕을 닮은 주황빛 고양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비를 쳐다본다.

단원의 그림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대상들의 상호 교감을 극대화 시키고, 나아가 보는 사람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키는 매력이 있다.

오른쪽 위에 써 놓은 제라로 보아 연풍현감 재임 중에 그린 듯. 이 그림은 단원 인생의 절정기에 그린 걸작이다.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졌다. 따로 내용을 밝혀 놓지는 않았지만 그림 내용으로 알 수 있다.

고양이는 70세를 상징하고, 나비는 80세 노인을 상징한다.

"일흔 살, 여든 살 노인이 되도록 젊음을 변치 말고 장수하고, 모든 일들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의미의 그림인 것이다.








해담노화蟹貪蘆花

김홍도, 종이에 옅은 채색, 23.1×27.5cm, 간송미술관.


동식물을 주제로 하는 옛 그림들은 우의(寓意)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에는 과거 급제의 염원이 숨어 있다.

게는 등에 딱딱한 껍질이 있는데, 한자로는 '갑(甲)'이라 쓴다. 그런데 조선 시대 과거 시험에서 합격자를 갑과(甲科),

을과(乙科), 병과(丙科), 세 등급으로 나누어 품계를 주었다. 그중 갑과 1등이 바로 장원이다.

이런 그림을 '이갑전려(二甲傳臚)'라 부르고, 과거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선물하곤 했다.


시원스레 휘두른 갈대는 간결하지만 생동감과 운치가 넘친다. 마치 묵란화의고수가 쳐 놓은 난잎을 보는 듯하다.

행서로 쓴 화제의 뜻은 임금 앞에서도 눈치 보지 말고 할 말을 다 하며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

절묘한 착상, 감각적 기교, 알찬 내용이 잘 어우러진 걸작으로,

풍부한 감성과 교양을 갖춘 김홍도였기에 가능한 그림이라는 평이다.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정약용, 비단에 옅은 채색, 45×19cm, 고려대학교박물관.


翩翩飛鳥,息我庭梅

훨훨 나는 저 새, 내 뜰 매화나무에서 쉬고 있네

有烈其芳,惠然其來

꽃다운 향기 잔하여 기꺼이 찾아왔겠지

受止受樓,樂爾家室

여기 살고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려무나

華之旣榮,有賁其實

꽃이 많이 피었으니 열매도 가득하겠구나



매화 가지에 앉아 있는 한 쌍의 새는 다름 아닌 사위와 다산의 딸이다.

오랜 귀양으로 자식들에게 배풀지 못했지만, 자식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살뜰한 내용이다.

별다른 기교도 없는 너무도 평범한 화조화일 뿐이지만,

 멋 부리지 않은 단정하고 소박한 필치에는 맑은 기운과 깊은 여운이 감돈다.









군접도群蝶圖 대련

남계우, 종이에 채색, 각 127.9×28.8cm, 국립중앙박물관.


이 <군접도>는 남계우가 그린 나비 그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다.

중국에서 수입한 냉금지 바탕에 금박이 꽃가루처럼 뿌려져 더욱 화려한 모습이다.

활짝 피어난 꽃에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듯 각종 나비가 무리지어 내려오고 있다. 십여 종이 넘는 나비를 정밀하게 묘사했다.

생물학자 석주명은 남계우의 나비 그림을 조선 시대 한양에서 서식하던 나비를 밝혀내는 주요한 자료로 이용하기도 했다.


사실감과 현장감 보다는 몽환적이고 현란한 내용의 이그림은

조선 말의 이념의 부재와 사회적 혼란 가운데 장식성으로 그림이 흘러갔음을 볼 수 있다.

그림처럼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조선의 내면은 생기를 잃은 채 박제처럼 굳어 가고 있었다.









노안도蘆雁圖

안중식, 비단에 옅은 채색, 158.5×69.5cm, 삼성미술관 리움.


그림의 상징과 우의는 특정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역사, 언어, 신화, 종교, 사상, 예술 등이 융합하면서 빛어낸

일종의 문화적 기호다. 따라서 그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으면 기호를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의식주를 비롯해 사상, 종교, 심지어 언어까지 서양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우리가 우리 옛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낮설어하는 것은 이런 문화적 단절과 관계가 깊다. 이 문제를 해소

하기 위해서는 옛 사람의 정신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머리와 눈으로 그림을 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옛 그림의 소재 중에는 발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른 동음이자(同音異字)를 이용한 상징과

우의가 많은데,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의 암호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노안도>는 일제 때 주로 활동한 심전 안중식(1861~1919)이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것이다.

노안(蘆雁)은 그림에서 처럼 갈대와 기러기를 일컫는데  발음이 노안(老安)과 같아

안락한 노년(老年)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심전은 보름달이 뜬 밤을 배경으로 갈대밭의 기러기를 그렸다. 특유의 곱고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한 기러기나

갈대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감동은 느끼기 어렵다. 섬세하지만 생동감이 떨어지고, 정교하지만

깊이가 없어 진한 여운이나 울림이 부족하다. 다분히 장식적이고 상투적이어서 예쁘게 포장된 인형을 보는 듯 하다.

퇴락한 전통과 밀려드는 외부적 충격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던 당시 문화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기량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단지 심전도 시대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참고서적 / 다섯수레 출판사 발행, 백인산 저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화훼영모 부분.






Nostalgia - Claude C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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