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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신념이란....

 

 

망월동 구 묘역에서 만난 통일운동가 한상렬 목사

 

 

 

 

 
기사 관련 사진

 

 

지난 2010년 6월 12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을 방문했다가 구속됐던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 목사가  20일 0시 대전교도소에서 3년 만기 출소했다.

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한 목사는 한반도기를 들고 마중 나온 부인 이강실 목사를 껴안은 뒤

큰 절로서 환영인파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 손은 하늘을 가르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쳤다.


환영식을 마친 한 목사는 휴식 없이 이날 하루 동안 '하루순례'에 나선다. 환영행사를 마친 뒤

새벽 2시에는 대전 고백교회에서 간담회를 갖은 뒤 오전 8시에는 마석 모란공원과

낮 12시 대전현충원을 참배한다. 그리고 오후 4시에는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고

광주에서 환영식에 참석한 뒤, 전주 고백교회로 이동해 신도들과 함께 환영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한편, 한상렬 목사는 지난 2010년 6월 12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한 뒤, 70일 만인 8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속되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해 왔다.

 

(위 사진과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오후 4시 망월동 구 묘역에 당도한 한상렬 목사 일행

 

 

 

 

 

 

 

 

 

 

 

 

 

 

 

 

 

 

 

 

 

 

 

무명열사 묘역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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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넘은 시간,

 

달리는 차 안,

 

"오늘 새벽 0시 한상렬 목사께서 만기 출소하여 5.18 묘역을 참배키 위해

잠시 후 4시경 망월동 묘역에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5.18 묘역이라...

날도 덥고해서 등산 T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아무 생각없이 차에 올랐는데,

낭패로고...!

 

 통일운동가 한상렬 목사.

촌 무지렁이로 살아온 나로선  사실 한상렬 목사 개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넷 상에서 그의 프로필부터 찾아 보았다.

 

 

한상렬(韓相烈, 1950년 ~ , 전라북도 임실군 출신)

 대한민국의 목회자, 통일운동가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통일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2010년 6월 6·15 남북 공동선언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하였다가 구속되었다.

 

 전북대학교 농화학과 졸업(농화학 학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신학 석사) 경력 1970년대 반유신 운동,

 기독청년운동 활동 목사 안수 선교사로 활동 전국민주화운동협의회 의장

1986년 고백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참배의 끝,  

'역사의 문' 앞에서 그가 했던 말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

옥중수도를 통해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절망이 사라지고 오직 희망할 뿐,

질투와 교만을 잊어버리니 다만, 존중하며 경청할 따름입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피토하는 자연과 역사의 현장,

시국의 아픔으로 정직하게 울었습니다.

"얻은 것은 웃음뿐입니다, 다 님들 덕분입니다,

님들과 함께 이토록 살아 숨 쉬며

사랑,자유,정의,평화, 통일,자주,민주,평등 세상을 노래할 수 있고,

한몸평화 통일평화 춤추며 행진할 수 있으니 영광이요,

기적이요, 신비요, 행복입니다.

 우리겨레 하나 되기야 말로 세계평화의 열쇠입니다,

우리 함께 소통하며, 분단분열을 아파하며,

통일을 꿈꾸며 생활현장에서 통일의 삶을 살면서,

통일 공동체 새 역사를 반드시, 신속 정확 명백하게

이루어내어 온 우주생명과 함께 한몸평화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



 

 

육십대에 이르면 <참나>가 정리되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수감 생활동안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 심도 깊은 천착을 할 수

있었노라 확신에 찬 어조로 당당하게 털어놓는 한상렬 목사.

 

 3년 세월을 녹여낸 정수를 펼쳐 보이겠다는 말씀이었는데.

그의 언변과 온화한 어투를 미루어 볼 때  그것은 결코 공수표는 아닐 터.


통일운동가의 두 눈에선 신념의 기운이

팔월 태양빛 보다 더 강하게  쏟고 있었다.

 

처연하게 피어난 자미화의 붉음 가운데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망월묘역.

 

 전혀 의도치 않은 발걸음이라곤 하지만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열사들의 묘역을 헤집기가 여간 송구스러운게 아니었다. 

 

 

 

 

 


Les Larmes du Jacqueline
Jacqueline du Pre,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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