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매정 원림 (順天 松梅亭 園林)
순천 송매정(松梅亭) 원림
정자 바로 앞에 조성해 놓은 연못으로
아담한 석가산과 주위론 꽃나무들이 호위하는 형국이다.
샛노란 은행잎이 깔린 송매정 입구
정자에 이르는 길, 커다란 사철나무가 마치 환영의 아치를 그린 듯
각종 편액과 주련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모습이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석가산에는 오죽이 심겨있고,
한 켠으로는 11월의 철부지 자산홍이 붉게 피어난 모습이다.
우산 안방준(牛山 安邦俊)이 1614년(광해군 6년) 소뫼(牛峯) 마을에 정착한 후 정자를 짓고,
소나무 한 그루와 매화나무 여덟 그루를 심었던 곳에 후손 직우당 안창훈(職憂堂 安昌勳)이
1817년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다시 정자를 짓고 ‘외로운 소나무와 여덟 그루의 매화’라는
뜻의 송매정(松梅亭)편액을 내걸었다고.
헌데 아무리 둘러봐도 소나무 다운 소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안채 마당에서 낙엽을 태우고 있던 '송매정'의 쥔장을 만나 곡절을 물었더니
연못가에 노송이 연못 쪽으로 기운 모습이었는데, 수 년 전 호우로인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고
정자와 안채 등 전체적으로 원림이라기엔 다소 미진한 느낌이었지만,
아마도 정자와 함께 연못과 수림 등 전체 주변 경관을 아우르는 풍광과 역사성,
학술적 가치 등이 고려되어 '원림' 지정을 받게 된 모양.
정자 옆 동산에 선 매화 한 그루에서 본디 '고성팔매'의 칭호를 떠올린다.
원림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가 바로 준수한 나무의 배열이라 하겠다.
사진상의 향나무도 관리만 잘 받는다면 명품 대열에 오를 수 있으리라.
서서히 비틀어지는 폼이 향나무 다운 기품을 갖춰가는 중.
연분홍 산다화도 피어나고
오랜만에 만수위를 보이는 주암호가 안채 마당 앞까지 차오르고.
안채와 송매정 모두 여순사건 때 백선엽이란자가 불을 질러 모조리 타버리고
지금 건물들은 그 후로 신축한 것이라는 쥔장의 말씀.
정자를 비롯한 건물들이 오래된 고가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그저 안타까울 뿐.
시대의 아픔이 진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당
나무에 대한 원림 쥔장의 안목이 읽혀지는 수목들을 둘러 본다.
바로 앞은 상당한 수령의 탱자나무 아랫부분이다.
왼편 뒷쪽으론 엄청난 굵기의 배롱나무가 윗 부분이 사라져 버린 채
아랫 둥치 부분만 남은 모습.
배롱나무 둥치 윗 부분은 부러져 나갔고 아랫쪽에서 몇 가지가 뻗어 올랐다.
기괴함이 느껴질 정도의 배롱나무 근원부.
이 역시 상당한 굵기와 크기를 지닌 석류나무.
이 정도 굵기의 무궁화나무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
탱자나무 윗 부분.
모과나무도 제법 위용을 갖춰가는 중이다.
이 정도 굵기의 찔레나무를 본 적이 있으신가?
도대채 어디서 이런 굵기의 찔레를 옮겨다 심었단 말인가!
송매정 원림의 쥔장이신 안도섭 선생을 찔레나무 옆에 세우고
귀한 나무 들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기 바빴다는 사실을 내 어이 고백치 않을 수가....
사당을 지키고 선 대추나무의 위용과,
사당 앞으론 향나무 한 그루가 늘상 향을 피워 올리는 형국이었다.
이 '송매정 원림'은 지금 보다도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해야겠다.
여러 자연 조건과 더불어 원림을 가꿔나가는 쥔장의 의지가 읽혀지기에 하는 말이다.
주암호 옆 '고인돌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하기에
들러보기에도 아주 수월한 위치에 자리한다.
원림의 구성 요소에는 다양한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언뜻 원림이라면 호남의 3대 원림 등의 준수함이 먼저 떠올려질 것이다.
하지만 오늘 찾은 '송매정 원림'처럼 소박한 형태의 원림도
결코 작은 무게가 아님을 체득하고, 또한 모두가 사랑해야 함이 마땅치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