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러시아 회화 II

茶泉 2021. 2. 25. 04:14

<레이스 뜨는 여인>, 1823년, 바실리 트로피닌,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소녀들의 순수함을 포착해 내는 트로피닌의 시선과 표현력이 놀랍기만 하다.

농노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지만,

지주가 허락치 않아 작품 활동을 많이 하진 못했다.

신분해방 후 초상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황금자수를 놓는 여인>, 1826년, 바실리 트로피닌, 트레차코프 미술관

인간 개개인의 심성 표현을 중시한 러시아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의 표정과

내면 정서를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트로피닌은 귀족의 전유물인 초상화에

과감히 평민 소녀를 모델로 등장 시키고, 일하는 모습 속에서 발현되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진실되게 표현한다.

 

 

 

 

 

 

<실 잣는 여인>, 1820년, 바실리 트로피닌, 트레차코프 미술관

위의 트로피닌이 그린 초상화들은 모두 다 신분해방 이후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농노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뜻한 배려가 예술로 승화되어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소녀와 복숭아>, 1887년, 발렌틴 세로프, 트레차코스 미술관

풋풋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겻, 햇볕을 등진 소녀의 젊고 맑은 생명의 설레임이

잘 표현되어 있다. 고전적인 정갈한 붓 터치에 인상주의적 색채가 어우러져

소녀의 청춘과 햇살의 찬란함이 하나의 교향악이 된다.

 

 

 

 

<소녀와 송아지>, 1829년,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농부의 딸로서 어린 송아지를 돌보는 소녀의 순박함이 그림 전체를 수놓는다.

아름다움과 순수는 결코 화려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네네치아노프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청강생>, 1883년, 니콜라이 야로센코, 키예프 박물관, 키예프

야로센코는 19세기 말엽의 여학생, 노동자 등 과거 작가들의 그림과는 다른 계층 사람들의 이미지를

많이 남겼다. 신흥 지식인으로 성장해 가는 여학생의 종종걸음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겨드랑이에 책을 낀 채, 비가 내리는 거리를 다부진 표정으로 걷는 모습에서

배움에 적합산 시기를 읽어낼 수 있겠다.

 

 

 

 

<러시아 미녀>, 1915년, 보리스 쿠스토예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미적 기준과 선호도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되곤 한다.

보리스 쿠스토디예프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미인의 표상, 즉 '민중적 미의 이상형'을 제시하고 있다.

선홍빛 뺨에 푸른 눈, 붉은 입술, 황금빛 머릿결, 윤기 나는 피부,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풍성한 몸매 등임을 확실히 주장하고 있음이 그림에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상인의 아내>, 1918년,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비너스>, 1925~1926년,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러시아 박물관 소장

볼셰비키 혁명 후 내전을 거치고 스탈린이 당을 장악할 즈음 러시아의 식량문제는 아주 심각했다.

그러 현실 앞에 풍만하고 살찐 여인을 러시아 미녀로 제시한 작가의 그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새로운 시대상에 걸맞는 풍성한 미와 생활력 있는 민중적 여인상을 원하는 심정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미지의 여인>, 1883년, 이반 크람스코이, 트레차코프 미술관

작가는 이 여인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안나 카레리나>에서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날 때 이 그림 속 비슷한 분위기의 검은 벨벳 차림이다.

19세기 중 후반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고급진 의상에다 그윽하고 고혹적인 눈빛을 보내는 자태,

그리고 깊숙한 원숙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미지의 여인> 그 자체이다.

한 한때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영화 <안나카레리나>에 출연한 소피 마르소는

바로 이 그림을 본떠 분장을 하였다고.

 

 

 

 

 

<가을 꽃다발> (화가 일리야 레핀의 딸 베라의 초상화), 1892년, 트레차코 미술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다.

내 품에서 자라나 어엿한 성인이 된 자신의 딸을 그려내는 애비의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진리란 무엇인가>, 1890년, 니콜라이 게, 트레차코프 미술관

예수와 빌라도가 마주보고 서 있다.

살찐 빌라도가 앙상하게 마른 예수에게 한쪽 손을 내밀고 거만하게 질문한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 그림은 <요한복음> 18장을 바탕으로 한다. 그림에서 선과 악을 표현할 때 키아로스쿠로(명암대조법) 가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선에는 밝은 빛을 주고 악의 영역엔 어둠을 주어 극적 효과를 노리는데 이 그림에서는 반대로

진리와 선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 속에 묵묵히 서 있고, 비단옷을 걸친 빌라도는 환한 빛을 등지고

진리를 심판하려 한다. 거짓 잣대를 들고 진실인 양 선을 물으려 하는 것이다.

작가는 톨스토이의 정신에 큰 감화를 입고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 속 그리스도는 어둠에 갇혀 신음하는 러시아 민중을 대변하고, 기득권층을 빌라도로 표현한 것이다.

 

 

 

 

<배반자 가로 유다(부제: 양심)>, 1891년, 니콜라이 게, 트레차코프 미술관

러시아 황제의 압제와 제도적 모순으로 수난을 당하는 약자의 고통에 눈과 귀를 닫아버린 지식이들의 몰염치를

배반자 유다를 빌어 아프게 꼬집는 작품이다. 시커멓게 그림자 진 권력층의 양심을

검은 어둠 속에 묻어 힐난하고 있는 내용이다.

 

 

 

 

<골고다 언덕>, 1892년, 니콜라이 게, 트레차코프 미술관

예수가 절망하고 있다. 그가 서 있는 그곳에 놓여 있는 상실 앞에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절규한다.

왼편,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 채 절대부정을 상징하는 손가락이 예수에게 어둠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흑역사를 화폭 속에 옮겨놓은 것으로 러시아의 예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 내용이다.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837~1857년,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그림 중앙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이 저 멀리 보이는 예수를 가리키며 외친다.

"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한복음

그림 왼편 터번을 두른채 눈을 감고 마치 현실을 외면하는 듯한 표정의 푸른색 옷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러시아의 작가 고골이다.  이바노프는 그리스도 보다 거의 1900년이나 후에 태어난 고골을 그곳에 그려 넣은 것.

고골은 <죽은 혼>, <검찰관> 등을 쓴 작가 고골을 뜻하는 것으로 시대의 참혹함에 맞서 싸우기 보다

현실을 외면한 동시대 사람 중에서 고골을 선택하여 그림에 그려 넣은 것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 1827~1833년, 카를 보률로프, 러시아 박물관, 상태페테르부르크

서기 79년 8월 24일, 휴화산이었던 베수비오 화산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양의 폭발물이 도시 전체를 덮어 버린다.

그 처참한 순간을 화폭에 담아 러시아 최고의 그림 중 하나가 된 로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

충실한 고전주의 화풍의  이 그림으로 그는  파리 살롱전에서 일등상을 받고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친다.

아카데미 화파의 수장의 위치에서 폼페이 최후를 그렸다는 것은,

아마도 러시안들의 자극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스텐카 라진>, 1906년, 바실리 수리코프, 러시아 박물관

스텐카 라진은 러시아 최대의 농민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광대한 볼가강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상념에 잠겨 있다.

갈피를 잃은 시선과 공허함에 모두들 지쳐 보인다. 비록 실패에 그치긴 했지만, 작가는 그를 현실로 불러내어

혁명의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빌려 현재를 구원코자 하는 염원이 화폭을 채우고 있다.

 

 

 

 

<광야의 그리스도>, 1871년, 이반 크람스코이,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아픈 시대를 고민하는 인간의 내면적 비극을 예수 그리스도를 빌려 표현하고 있다.

인기척 없는 황야의 바위에 걸터앉아 깊은 고뇌에 잠긴 그리스도의 모습과

동녘으로 떠오르는 해의 성스러움이 더해진 묵묵함이 인상적이다.

 

 

 

 

<타라카노바 공주의 죽음>, 1864년, 콘스탄틴 프라비츠키, 트레차코프 미술관

매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홍수로 네바 강이 범람한다. 1777년 역사상 가장 큰 홍수로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여인은 수장되고 만다. 바로 예카테리나 2세와의 권력 싸움에서 참패하고 지하 감옥에 갇힌 타라카노바 공주의

마지막을 그린 그림으로, 거센 물줄기와 곧 닥칠 죽음과 공주의 절규가 너무도 사실적이다. 타라카노바 공주는

엘리자베타 여제(표트르 대제의 차녀) 와 그녀의 애인 라주모프스키 사이에서 태어난다. 여제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라카노바를 낳아 이탈리아로 보낸다. 엘리자베타 여제가 죽자 표트르 3세가 등극하지만 아내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독살되고 왕권은 예카테리나 2세에게 넘어간다. 혹시나 있을 왕권 쟁탈 권력투쟁을 막기 위해 1785년 예카테리나 여제는

해외에 있던 타라카노바 공주를 러시아로 소환하여 강제로 모스크바의 이바노프 수도원에 위폐시킨다.

공주는 평생을 수도원에 갇혀 살다 죽는다. 이 강렬한 느낌의 명화는 트레차코프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1914년, 미하일 네스테로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이 그림에서는 당대를 이끌어가던 여러 지성인들을 등장시킨다.

레닌도 보이고 톨스토이며 있으며, 도스트에프스키도 있고, 솔로비요프도 있다. 바로 당시 러시아 정신을 상징하는

인텔리겐차들이다. 그들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대가 제시하는 그 모든 것을 잘 읽어내고

생각해서 판단해야 한다 말하는 거다.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성찰이 필요함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아! 자유>, 1903년, 일리야 레핀,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는 미술계는 물론이고 러시아 사회 전반에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던 시기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듯,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조의 그림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러시아 아방가르드로 들어서게 된다. 화풍의 대변혁, 자유가 시작된 것이다.

 

 

 

 

<봄> 1954년, 아르카지 플라스토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이다. 봄의 달콤함과 더불어 또 다른 뜻을 품은 그림이기도 하다.

바로 해빙, 즉 소련 공산사회에 분 개혁의 바람, 민주화의 바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련 정권기에 사회성과 정치성을 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그린 대표작이자 첫 작품으로 꼽힌다.

 

 

 

 

<무지개>, 1873년,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트레차코프 미술관

세계 최고 수준의 바다 그림을 그려낸 아이바조프스키의 붓놀림이 이차원의 화폭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당연히 폭우 속 흔들리는 난파선을 그리면서도 희망의 메세지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아홉 번째 파도>, 1850년,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반 아이바조프스키는 바다 그림의 대가 답게, 파도 표현과 바다 거품의 아른아른 빛나는 움직임,

바다 전체의 달빛 퍼짐 등의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아르메니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페테르부르크 미술 하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러시아 유일의 해양화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앉아 있는 악마>, 1890년, 미하일 브루벨, 트레차코프 미술관

우수에 젖은 서글픈 검은 눈빛이 악마의 공허한 내면을 드러낸다.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천사는 악마의 모습으로 절대고독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꽉 다문 입술이 고독에 몸부림치는 악마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

 

 

 

 

<악마의 얼굴>(레르몬토의 시 「악마」의 삽화), 1890~1891년, 미하일 브르벨

 

 

 

<춤추는 타마라>(레르몬토프의 시 「악마」의 삽화), 미하일 브루벨, 트레차코프 미술관

지상을 떠돌던 악마느 어느 날 작은 마을에서 왕자와 이웃나라 공주 타마라의 약혼식을 보게 된다.

악마는 춤추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열렬히 구애하게 된다. 모자이크와 같은 터치, 화려한

장식적 패턴들로 인해 무채색이 그림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말을 탄 사람>(레르몬토프의 시 「악마」의 삽화), 미하일 브루벨, 트레차코프 미술관

타마라에 대한 사랑이 차고 넘친 악마느 결국 공주의 약혼자를 죽여버리고 만다.

말 위에서 죽어가는 약혼자의 긴박함이 브루벨의 자유로운 터치에 묻어난다.

 

 

 

 

<타마라와 악마>(레르몬토프의 시 「악마」의 삽화), 미하일 브루벨,

카드보드에 검은 잉크,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타마라와 악마>(레르몬토프의 시 「악마」의 삽화), 미하일 브루벨

 

 

 

 

<누워 있는 타마라>(레르몬토프의 시 「악마」의 삽화), 미하일 브루벨

카드보드에 검은 잉크

미하일 브루벨은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수도원의 벽화를 복원하는 일을 하였으며,

모스크바로 와서는 마몬토프의 오페라극장에서 무대미술을 담당, 일련의 대장식 내널을 완성하기도 했다.

러시아 미술의 사실주의 화풍엣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며

러시아 미술사에 한 획을그은 작가라는 평이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지 1년 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1698년 표트로 대제가

그녀의 친위병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1879년, 알리야 레핀, 트라차코프 미술관.

미간을 찌푸리고 꽉 다문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을 억누르며 분노를 참고 견디는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소피아는 표트르 대제의 이복 누나다.

소피아는 친동생 이반 5세와 이복동생 포트르 1세가 공동 차르가 된 1682년,

아직 어린 그들을 대신해 7년간 섭정을 한다.

소피아는 훗날 차르의 자리를 놓고 표트르 대제와 왕위 쟁탈전을 벌인다.

 

 

 

 

<표트르 대제>, 1907년, 발렌틴 세로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1712년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다.

2미터 장신의 건장한 체구의 대제는 지팡이를 짚고 무리의 맨 앞에 당당히 서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네바강변을

힘차게 걸어간다. 저 멀리 대제가 개발한 함선도 보이고, 미래에 갖춰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화 모습도 보인다.

대제의 뒤를 따르는 수행자들은 대제와 보폭을 맞추려 애쓰지만 어딘지 역부족으로 보인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수행원들의 모습에서 개혁의 속도를 감당 못하는 당시 러시아의 힘든 현실이 느껴진다.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 1881년, 바실리 수리코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배경이 되는 붉은 광장과 그 뒤쪽으로 성바실리 성당이 보이고 오른쪽엔 크레물린 궁의 하얀 석조 벽이 보인다.

표트르 대제 시기에 모스크바 크레믈은 현재의 붉은 벽돌이 아닌 흰색 석조 건물이었다.

표트르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펼칠 때 , 당시 황제의 총병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구조조정에 반발한 총병들이 개혁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이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되고 총병들은 붉은 광장에 마련된 처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모두 사라진다.

표트르가 말을 타고 위풍당당 그림 오른편에 나타났다. 이 일로 사형당한 총병의 수는 이천명이 넘는다.

군복이 벗겨진 블라우스 차림의 남자를 시작으로 모두 단칼에 베어질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의중은 위정자들을 꾸짓고 있다.

지도자가 민중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선택권은 오로지 민중에게만 있다. 소통의 덕목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알렉산드르 2세 이후 왕권에 오른 3세는 더욱 더 불통정치를 강화하고

니콜라이 2세에 이르러 결국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된다.

 

 

 

 

<표트르 대제의 죽음>, 1725년, 이반 니키든, 러시아 박물관

한겨울 차가운 얼음물에 빠졌다 약한 열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작가인 이반 니키틴은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은 궁정화가로,

중세 러시아의 이콘 화법에서 벗어나 바로크 양식화를 그린 대표적 화가이다.

 

 

 

 

<베레죠프 촌의 멘시코프>, 1883년, 바실리 수리코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표트르 대제는 멘시코프(1673~1729) 를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 라고 불렀다. 궁정 마구간 총감독의

아들로 태어나 대제의 최측근이 되어 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러시아 왕자' 라는 칭호까지 받은 인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초대 총독 후 여러 권력을 전전하다 결국은 시베리아로 유형 당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이반 뇌제>, 1897년, 빅토르 바스네초프, 트레츠코프 미술관

계단을 내려오는 이반 뇌제,  심술맞고 고집스러운 늙은이임이 한 눈에 읽혀진다.

의심의 눈초리를 희번덕대는 모습이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이반 4세는 어떻게 뇌제, 즉 " 그로즈니(공포, 난혹) " 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을까?

어릴적 부터 피 튀기는 암투를 고스란히 보고 자라나며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그의 광폭함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바실리사 멜렌티예바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반 뇌제>, 1875년, 그레고리 세도프, 러시아 박물관

사실리사는 뇌제의 여섯 번째 황후로 미모가 아주 뛰어나 총애를 받았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실리사는 잠꼬대 가운데 다른 남자 귀족의 이름을 부른다.

이튿날 아침 뇌제는 총주교를 불러 국장(國葬)이 있음을 알리고 무덤 두 개를 팔 것을 명한 다음,

바실리사아 잠꼬대의 주인공 귀족을 잡아들여 둘 다 산채로 묻어 버리는 광기를 보인다.

 

 

 

 

<수도원장 코르닐리에게 수도사가 되게 해달라고 청하는 이반 뇌제>, 1898년,

클라브디 레베데프, 벨라루스 국립 박물관, 민스크

동서양의 역사를 돌아보면 폭군의 말로는 거의 비슷하다. 모두가 반쯤 미쳐나가 처참하게 끝을 맺곤 한다.

이반 뇌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시간를 발작과 후회와 눈물, 또는 폭정을 거듭하며 메말라갔다.

 

 

 

 

<꽃 파는 여인>, 190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러시아 국립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18세기 이전 러시아 그림은 이콘화가 대표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서유럽식 회화가 등장한 것은

표트르 대제의 개혁 후인 1700년대 초반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현대 추상주의의 토대를 닦는

쾌거를 러시아 미술이 이뤄낸다. 러시아 미술사의 큰 회인 추상주의의 선구자 말레비치는 러시아

이콘화의 특징을 자신의 그림에 자주 표현한다. 그러므로 현대 회화의 평면성은 러시아 이콘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자화상은 우선 이콘화가 가지는 정면성을 충실히 따른다. 또

얼굴을 반으로 나눠 색채 대조를 표현하면서 하나의 얼굴이 도 다른 얼굴에 덧칠된 것처럼 그린다.

 

 

 

 

<자화상>, 1908 또는 1910~1911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종이에 구아슈, 러시아 박물관

앨프레드 바(뉴욕 현대미술관 초대 관장)는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에서,

20세기 미술사에서 말레비치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추상 미술의 역사에서 말레비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선구자, 이론가이며 예술가로서, 러시아의

많은 추종자들뿐 아니라 리시트키와 모홀리 나기를 통해, 중부 유럽의 추상 미술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무꾼>, 1911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나무꾼과 통나무를 소재로 하나의 통일을 이룬다.

원, 네모 등 간단한 도형만으로 사물을 표현하고 단순화 시키는 작업은 모든 소재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말레비치가 추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표현 기법을 읽어낼 수 있다.

 

 

 

 

<건초 말리기>, 1911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트레차코프 미술관

동화나라의 한 장면처럼 색채며 구성이 재미있다.

사실성을 배제한 말레비치 만의 회화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좌), <검은 사각형>, 191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우), <검은 십자형>,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좌), <검은 원>,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러시아 박물관

우), <절대주의 구성>, 1916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스위스, 개인 소장

 

 

 

 

<풀밭 위의 소녀>, 1928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트레차코프 미술관

 

 

 

 

<백조공주>, 1900년, 미하일 브루벨, 트레차코프 미술관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를 연기한 화가 브루벨의 아내 자벨라의 모습이다.

백조의 새하얀 날개에 투영된 무대 조명 빛이 백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은빛 색감이 아주 고급스럽다.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 표현을 위한 붓 터치와 살아나는

깃털의 터치가 참으로 조화롭다. 속삭이듯 뒤돌아서며 말을 건네는

백조공주의 자태에 누구나 황홀감에 빠져든다.

역시 러시아 모더니즘의 처음을 연 브루벨의 작품이다.

 

 

 

 

<눈 아가씨>, 1899년, 빅토르바스네쵸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어둑한 기운이 온 세상을 덮고 있지만, 새하얗게 내린 눈이 눈 아가씨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얼음의 왕인 아버지와 봄의 요정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랑으로 잉태된 눈 아가씨, 그녀는 인간 세상을 동경한다.

바스네초프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오페라 <눈 아가씨>의 무대 의상을 맡는다. 이때 탄생한 눈 아가씨다.

<눈 아가씨(The Snow Maiden)> 는 러시아 민요를 기반으로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러시아

오페라의 제목이기도 하며 잿마로스(눈 할아버지) 와 함께 러시아 새해를 맞이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판>, 1899, 미하일 브루벨, 트레차코프 미술관

아르카디아 산자락에 사는 요정 시링크스는 아르테미스를 따르며 사냥을 즐긴다.

천사같은 그녀를 보고 우락부락한 얼굴에 셤소 다리와 뿔을 가진 괴물 판은 한눈에 사랑을 느낀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시링크스에게 열렬히 고백해 보지만 공포의 꽥꽥거림으로 나타나는

판의 목소리에 요정은 필사적으로 도망만 다닌다.

그런 판의 구애에 진저리 난 시링크스는 결국 자신을 포기하고 갈대로 변해버린다.

사랑을 잃어버린 판의 한숨소리가 갈대 속을 지나 가냘프고 애끓는 소리로 변하니,

그 갈대를 엮어 만든 피리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로 변하니, 그 아름다운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된다.

요정의 이름을 따 '시링크스' 라고 불리는 판의 피리인 팬 플루트는 그 애절한 음색만큼

슬픈 사연을 내재한 악기인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새 알코노스트와 시린>, 1896년, 빅토르 바스네쵸프, 트레차코프 미술관

 

 

 

 

<해저왕국의 사드코>, 1875~1876년, 일리야 레핀,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그림은 리스키 코프사코프의 오페라 <사드코> 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바다속 최고의 미녀들이 그를 유혹하듯 지나가지만 사코드는 고향에 있는 자신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장면이다. 저 멀리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등을 돌리고 선 여인이 아마도 사코드의 아내인 듯하다.

 

 

 

 

<엘리우시스 포세이돈 축제으 프리네>, 1899년, 겐리크 세미라드스키,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외형적인 미를 갈망하는가?" 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장님이 아니라면 그런 바보같은 질문을 할 수 없는 거죠" 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예쁜 건 절대불변의 진리며 선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미, 비너스에 비견되는 아름다운 여자 프리네.

그녀를 러시아 화가 세미라드스키가 그린다.

프리네는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직업여성 '헤타이라' 다. 그리스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서

일반 여성은 사회생활의 참여에 엄격한 제한을 받았는데, 조선 시대의 황진이처럼 춤과 음악을 즐기고,

지식인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연애할 수 있는 '헤타이라' 만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프리네는 독신으로 살며, 직접 재산을 관리하고, 정치에도 관여한 당찬 '헤타이라' 이다.

 

엘레우시스에서 열린 포세이돈을 기리는 축제 때, 프리네는 아프로디테로 분장하고

옷을 하나하나벗어 던지며 황홀한 알몸으로 바다에 걸어 들어간다.

이것은 화가인 아펠레스에게 아프로디테에 대한 영감을 주기 위한 프리네의 퍼포먼스로,

이 사건을 계기로 프리네는 당대 최고 아프로디테 모델이 되며 비너스로 칭송을 받기 시작한다.

바로 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러시아 화가 세미라드스키가 화사한 빛과 색채로 찬란하게 표현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가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러시아 미술의 힘을 볼 수 있다.

 

 

 

 

<판사 앞에 선 프리네>, 1861년, 장 레옹 제롬, 쿤스트 할레 독일 미술관

프리네에 대한 신화는 어떻게 전개될까?

찌질한 남자의 대명사 에우티아스가 프리네에게 구애를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 사건을 복수의 기회로 삼는다. 신성 모독죄로 그녀를 법정에 세운다.

'어떻게 창녀 따위가 여신임을 자처하느냐' 가 문제였다.

법정은 그녀에게 사형을 구형하려 했지만 그녀의 애인이던 웅변가 히페리데스는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녀의 옷을 찢어 보였다.

배심원 앞에 누드로 선 프리네.

그녀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배심원들은 마른 침만 삼킨다.

" 저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다. 신의 의지에 감히 인간의 법을 적용시킬 수 없다."

법정은 그녀에게 무죄를 선언한다.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은 신의 영역이고 선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녀를 용서하는 것은 신의 의지인 선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프랑스 화가 제롬이 그린 이 그림은 너무도 유명해서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다.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그려진 세미라드스키와 제롬의 프리네는 쌍을 이뤄

흥미로운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인용 : 김희은 著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