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연회 참석자가 뿔잔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
소그디아나 판자켄트의 8세기 벽화 일부다.
해상로를 이용하면 금속, 유리, 도자기 등 크고 무겁고 깨지기 쉬운 화물들을 더 효율적이고 값싸게 운송할 수 있었다.
3~4세기 베이오에서 발견된 로마 모자이크에 보이는 코끼리 같은 동물이나 노예도 마찬가지였다.
이 14세기 원형장식은 실크로드 교류의 전형적인 사례다. 서아시아 일한국에서 만들어진 이 태피스트리는 중국의 일반적인 무늬지만 서아시아 기볍인 무명실로 감은 동물 털 금실을 사용했다, 그림은 중앙의 군주 양옆에 몽골 군주와 아랍 또는 페르시아 대신이 있는 모습이다. 이 도상은 이슬람 금속 공예품의 것과 닮았다.
실크로드 지도 중 《카탈루냐 지도》로 알려진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의 이 해도는 서명도 없고 제목도 없다.
보통 유대인 악기 제작자이자 책 삽화가인 엘리샤 벤 아브라함 크레스케스(1325~1387)의 작업장에서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폴로 경기자들.
706년 건설된 중국 시안에 있는 당나라 장회태자 이현의 무덤 벽화의 일부다.
중국 시안의 진시황제 능에서 나온 기병의 말과 마부.
서기전 210~209년의 것이다.
8세기 중국의 여성 폴로 경기자가 '외국인의 옷', 즉 호복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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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되네르의 투구
1910년 네덜란드 되르네의 한 늪지에서 발견된 이 투구는 로마 군대의 정예 기병부대 장교의 것이었다, 아마도 320년 무렵에 거기에 떨어졌을 것이다. 도금을 한 이 은제 외측 투구는 지름 20센티미터, 높이 28.5센티미터인데, 원래는 가죽을 댄 내측 철모자가 있었다. 새겨진 글로 '6사단'이라는 소속 기병부대와 제작자 이름, 그리고 사용된 은의 양이 500그램임을 알 수 있다. 이 투구는 현재 네덜란드 레이던의 국립고대박물관 소장이다.
(우), 금과 석류석으로 만든 새
석류석은 칠보 세공 기법으로 만들어지는 금 장신구에 흔히 사용되는 붉은 돌이다. 4세기에 스텝의 훈 제국과 그 이웃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것은 스텝과 유럽 각지의 무덤에서 발견되며, 장신구나 옷 장식으로도 쓰였다. 높이 6.5cm로 1812년 지금의 루마니아 동북부에 있는 프루트강 부근의 4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다. 현재 예르미타시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상당한 파르티아인. 162~165년 로마가 파르티아를 격파한 것을 축하하는 기념물의 일부다.
스텝의 기마인. 서기전 5~3세기 파지리크 고분의 아프리케장식 펠트로 된 무덤 걸개 일부다.
페르시아의 옛 수도 파르사에 있는 아파다냐 동쪽 계단의 돋을새김 벽화.
히말라야 피르판잘산맥이ㅡ 5~6세기 무렵 유적지에 있는 말과 기마인 석상 들.
황제의 춤추는 말
높이 14.8cm 부분 도금한 이 8세기 은주전자는 아마도 중국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1970년 실크로드 중국의 중심 도시 장안 교외 허자춘에서 1천여 점의 금 · 은제품과 주화 더미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현재 산시역사박물관 소장인데, 아마도 황실 보물이었다가 혼란스러운 시기 땅에 묻었던 듯하다. 이 주전자는 그 형태나 재질, 디자인 면에서 실크로드 교류의 전형적인 사례다.
2~3세기 무렵 콘스탄티노플 히포드로모스에서 전차 경주를 위해 만들어진 사두마차.
도금한 은제 그릇에 사산 황제 샤푸르 2세(재위 309~379)가 맷돼지를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금제 허리띠 장식판
이 금제 허리띠 장식판은 중국의 전국시대(서기전 475~221) 말기 남성 귀족 전사의 것이다. 이 전사는 동부 스텝 오르도스 지방의 동북쪽 황하 굽이에 있는 시거우판에 묻혔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이 장식은 독특한 작품이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동물 싸움 모티프를 묘사하고 있다. 이 경우에서 호랑이와 멧돼지 간의 대결이다. 동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다른 허리띠 장식판과 달리 이 작품은 동물 묘사가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현재 내몽골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위) 북부 중국에서 나온 허리띠 장식판 주조 모형. 서기전 2~1세기의 것이다.
(아래) 중국 쉬저우 텐치산의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금제 허리띠 장식판. 서기전 2세기에서 서기 2세기 사이이 것이다.
원형장식 허리띠
이 금제 허리띠는 9개의 원형장식이 꼰 사슬로 연결된 것인데, 텔라테페에 있는 귀족 전사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연대는 1세기 말로 추정된다.
'용사(龍師)' 신전의 펜던트
여기에 제시된 양면 펜던트는 1세기 후반 틸랴테페에 묻힌 화려한 차림의 귀족 여성이 쓴 관에 달려 있던 것이다. 펜던트에 묘사된 것은 남성 신이다. 눈초리가 올라가 있고 '신분 표지'가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선 자세다. 양손에는 날개 달린 용 같은 것을 잡고 있다. 그는 짐승들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수사(獸師)' 다. '수사'는 고대 서아시아와 이란 미술에서 오랫동안 유행했던 테마다. 그는 아마도 아케메네스에서 기원한 듯한 관을 쓰고 있다.
서부 스텝에서 나온 1~3세기 사르마티아인의 환두(換頭) 단검.
카프탄을 입은 태양의 신과 달의 신.
아프가니스탄 폰도케스탄의 불교 석굴 사원에 그려진 7세기 벽화의 수채 사본이다.
두라에우로포스 유대교 회당의 3세기 중반 벽화. 구약 ,에스델서>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 모르데하이를 묘사하고 있다.
페르데하이는 카프탄을 입었고, 네 명의 구경꾼은 그리스풍의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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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가 그려진 바지, 벽걸이 양모 태피스트리로 만들었다.
신장 삼풀라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서기전 3~2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우) 중국 궁정의 두 여인. 두 사람은 전통적인 복장을 입고 있으나, 한 사람은 당시 유행하던 '외국 옷', 즉 호복을 입었다.
중국 시안 부근 태자 이현의 묘(706)에 그려진 것이다.
5세기에 세워진 아르메니아의 호르비랍 수도원.
뒤로 아라라트산이 있다.
카타리나 성인: 시나이산의 기독교 수도원
시나이반도 남쪽의 산들이 성스러운 고행의 장소로 떠올랐고, 구약에 나오는 모세의 생애와 연관 지어졌다.
그래서 그곳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나중에는 유대교 공동체들에게 성스러운 장소가 됐다. 시나이산 정상에는 또 다른 교회가 들어서 구약에 나오는 다른 장소들을 보호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수천 개의 계단이 진짜 구약 '테마파크'의 탐방로 끝을 연결했다. 이 성채는 곧 수도원이 됐고,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그 수호성인인 카타리나(알렉산드리아의, 287?~305?)의 보호 덕분이었다.
서가트산맥이 석굴 사원
위에 보인 레냐드리의 외딴 수도원은 서력기원 초 몇 세기 사이 준나르 부근 서가트산맥의 바위 벼랑을 깎아 만든 10여 개의 불교 수도원 가운데 하나다. 이런 수도원에 거주하는 비구와 비구니들은 아랫쪽 사진에 보이는 베드사의 차이티아(남아시아의 사리탑 역할을 하는 아치형 건물) 같은 훌륭한 그림과 조각품이 많은 바위굴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웅장한 기둥의 차이티아 법당은 경배하는 장소로 쓰였고, 안뜰의 비하라 동굴은 개인 및 집단생활 공간이 됐다. 수도원은 고대 도시와 항구, 산악의 교역로 가까이에 위치했다. 비구와 비구니들이 고립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거대한 비문들은 이들이 더 넓은 사회와 연결돼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고, 저수지, 동굴, 땅 등을 기증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타파칼한(하다)에서 발견된 불상.
1927~1928년 췰 바르투 팀의 발굴 과정에서 촬영한 것이다.
봉헌물을 바치는 숭배자들을 그린 타지키스탄 칼라이카피르 사원의 벽화. 5~8세기의 것이다.
둔황: 하서주랑의 불교 석굴 사원
박트리아인들이 낙타를 끌고 이케메네스왕에게 가는 모습.
이케메네스 수도 파르사의 건물인 아파다나의 동 쪽 계단에 새겨진 것으로, 서기전 6~5세기의 것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제와 희생의로 바칠 동물들.
대략 650년 무렵의 것인 소그디아나 아프라시압 사신청 벽화의 모사본이다.
토끼 세 마리
세 마리 토끼가 서로 귀 하나 씩을 공유해 삼각형을 이루며 돌아가는 구성의 세 마리 토끼 모티프는 여러 문화권이 공유한 상징이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널리 확인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사례는 불교의 것이다. 6세기 말 하서주랑 돈황의 몇몇 석굴 천장에 그려진 연꽃 한 가운데 있다. 위 왼쪽은 407호 석굴에 그려진 토끼다. 불교적 맥락과 함께, 세 마리 토끼는 의례용 또는 가정용 물품에 장식으로 나타난다. 이슬람 미술에서도 세 마리 토끼 모티프가 나타난다. 위 가운데 사진은 이집트나 시리아에서 나온 유약 바른 도자기 잔편 중 하나다. 제작 연대는 12세기에서 13세기 초로 추정되며 현재 카이로의 이슬람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구니 절에 들어가기 직전 삭발을 하고 있는 여성. 돈황 모가오 445호 석굴에 있는 8세기 그림이다.
불교와 교역: 간다라에서 중국으로
5세기 북인도 아잔타 불교 석굴 사원 가운데 하나인 26호 석굴 내부
왕실에서 불교를 후원하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마우리아 제국(서기전 322?~108?)의 아소카 왕(재위 서기전 268?~232?)은 붓다의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인도에 8만 4천 개의 사리탑을 건립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 곳에서는 불교 신자들이 모여 경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수도원 시설이 크게 발달한 것은
중앙아시아의 쿠샨 제국(1~3세기) 시대였다.
붓다가 설법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9~10세기의 벽화. 타림분지 쿰투라에 있는
불교 석굴 사원 가운데 하나인 43호 석굴에 있는 것이다.
한국 경주 남산 칠불암 뒷편 바위 벼랑 위의 마애석불.
8세기의 것이다.
북중국 윈강에 있는 5~6세기 불교 석굴 사원.
초보 신도들이 인도식이 책에 경전 내용을 베끼는 모습.
타림분지 카라샤흐르 부근 호르추에 있는 7~9세기 불교 사원에 있는 그림이다.
타림분지 미란의 사리탑 벽화가 헬레니즘 양식을 보여준다. 3~4세기의 것이다.
- 불교 미술: 스와트에서 타클라마칸사막으로-
간다라 불교 미술은 1세기 초 북쪽의 스와트 계곡에서 이른바 '소묘' 양식으로 시작됐다. 양감보다는
선을 중시하는 것으로 분명히 구분 지을 수 있으며, 당대 인도의 시각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바드라사나 불상
붓다가 다리를 포개지 않고 앉아 있는 바드라사나 자세의 모습을 묘사한 제 1천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을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여기 제시한 채색 소상과 동상 같은 것들이다. 모가오의 405호 석굴에서 바드라사나 자세이 채색 붓다 소상이 발견됐다.(사진 왼편)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암스테르담 열대박물관에 소장된 작은 붓다 동상(사진 오른쪽) 같은 것이다. 이 동상은 스리위자야의 수도 팔렘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며, 7세기 말이나 8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식 종이 두루마기를 읽고 있는 불교 승려.
돈황 모가오 201호 석굴에 있는 그림으로 8세기 말에서 9세기의 것이다.
3세기의 돌기둥에 묘사된 하리티 여신. 스와트 계곡 바리코트의 사원 B에서 나온 것이다.
간다라의 불교 수도원과 마을들 사이의 상호의존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소홀했다. 푸슈칼라바티(샤이한테리)와
탁실라(시르캅 및 시르수흐)에 관해 기록된 많은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대 도시들과 그 주변의 부유한
수도원들의 관계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탁실라 계곡에서는 시르수흐 도시의 유적이 발굴조차 되지 않았다.
성배와 자신에게 바쳐진 염소 머리를 들고 있는 신의 모습.
3세기 것으로 마리코트의 주거지 D에서 나왔다.
이집트 와디엘나트룬의 스케티스 기독교 수도원. 6세기의 것이다.
토칼르킬리세: 카파도키아의 기독교 동굴 교회
데브레다모: 에티오피아고원의 기독교 수도원
은자인 오누프리오스 성인의 모습이 담겨 있는 6~7세기 벽화.
이집트 사카라의 아파제미아 기독교 수도원에 있다.
인용 : 수잔휫필드 《실크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