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대(洗塵臺)를 향한 행진
☞ 용유담 - 선녀골 - 송대마을 - 세진대(洗塵臺) 마적송(馬迹松) - 용유담
용유담에서 선녀골을 오르는 세진대(洗塵臺) 마적송(馬迹松) 감상파.
굳게 문을 잠근 실상선원
코로나로 인해 이 땅 절 거개가 산문을 폐쇄.
오랜만에 찾은 송대마을이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예전 지리산 옛길 4구간은 (의탄교 - 의중마을 - 서암정사 - 벽송사 - 송대마을 - 세동마을) 코스였는데,
잘 모르긴 하지만 지금은 아마도 의탄교에서 강을 따라 산 아랫쪽 데크길로 변경한 듯.
이 마을에서 우리민족이 겪어낸 비극 토벌대와 마지막 파르티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음을.
정순덕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수감 중 1985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특별 석방된다.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소위 미전향 장기수의 북쪽 송환이 이루어진다.
정순덕도 북쪽 송환을 요구했으나 전향서 작성자로 북송 불가 판정을 받는다.
좌우익의 개념도 모른체 어린 나이에 빨치산 생활을 하게 된 그녀.
2004년 뇌출혈로 인천의 병원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예전에 보았던 이 안내소는 폐쇄된 지 오래된 듯, 잡풀이 무성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 송대마을 소위 '선녀골 루트'는 마지막 여자 빨치산으로 일컬어지는 정순덕과 함께 최후의 빨치산
3人 중 위원장이었던 이은조가 1963년 선녀굴에 은신 중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따스한 햇살 아래 묵방표 탁배기 타임
신바람 풍류 3인조~~ ㅎ
함양 상내봉 독바위 능선 조망
견불사 하경
지네바위를 돌아...
지리산 옛길 개설 당시엔 이런 안내판 따윈 전혀 존재치 않았다.
단군민족일체화
승안사(昇安寺) 사암산(蛇巖山)에 있다. 선열암(先涅菴)ㆍ고열암(古涅菴)ㆍ신열암(新涅菴) 아울러 지리산에 있다.
화장사(花長寺) 화장산에 있다. 엄천사(嚴川寺) 엄천 북쪽 언덕에 있다. 마적사(馬迹寺) 지리산에 있다.
고승 마적(馬迹)이 살았다는 것으로 명칭을 하였다. 앞에는 유가대(瑜珈臺)가 있고, 밑에는 수잠탄(水潛灘)이 있으며
탄 위는 곧 용유담(龍遊潭)이다. 금대암(金臺菴)ㆍ보월암(寶月菴)ㆍ안국사(安國寺) 아울러 지리산에 있다.
본조 중 행호(行乎)가 창건한 것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
홍암 나철로 상징되는 대종교(단군교) 시설물.
일제하 만주 일대 우리 독립군 대다수가 대종교인이었다는 사실.
청매림
대종교는 천진전이라 이름한 전각을 갖는게 통례.
단군성전은 세진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2017년 7월 태풍 노루에 의하여 ‘천진전’은 유실되었으며, 현재 이곳은 제당 터만 남아 있다.
휴천면 단군성전은 1980년대 초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운기마을에 사는 강길용이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594 일대를 매입하고 국조 단군성전인 ‘지리산 마적 천진전’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1987년 3월 15일에 완공되었다. 강길용 사후 단군성전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오늘의 하일라이트 세진대(洗塵臺) 마적송(馬迹松)에 도착.
마적(馬迹)이라는 통일신라시대 인물을 겨우 사백여 년 수령의 소나무에 적용시켰다?
그것보다는 세진송(洗塵松)이 훨 나은 작명이라는 생각인지라
좌우당간 앞으로 나는 세진송(洗塵松)으로 불러 드릴 작정.
티끌마저 씻어낸다는 세진대(洗塵臺) 세진송(洗塵松)
이 명품 세진송과 암반에서의 눈맛이 그리워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은 것.
아래로는 용유담과 임천이 굽이치고 앞으로는 법화산 삼봉산 등이 펼쳐진 기막힌 풍경.
번뇌를 씻어내고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라는 말씀.
재미있는 것은 명색 지리산꾼을 자처하는 이들 상당수가
아직도 이 곳의 진가를 잘 모른다는 사실.
이런 널찍한 암반 위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 세월을 견뎌냈는지 거의 불가사의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세진대와 세진송에 대한 소감이 어떠하신지요?
당근 감동이었다굽쇼? ㅋ~~
지리산 최고의 힐링 코스를 뒤로하고 용유담을 향하여 곧장 하산.
가파른 벼랑 거대한 바윗덩어리 틈새에 자리한 용유담 감상파 쉼터가 여러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