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음악 9
비틀스 열풍
비틀스는 20세기를 통틀어 음악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발표한 음반은 대중음악의 기준점으로 의미가 있으며,
비틀스의 경괘한 노래에 담긴 기상은 오늘날에도 영감의 원천이다.
24시간 감시의 대상이 된 비틀스
팬과 언론은 비틀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이 사진은 1964년 2월 7일
미국으로 떠나는 비틀스를 사진에 담기 위해 런던의 공항에 모여든 사진 기자 들의 모습이다.
비틀스 열풍에 편승한 밴드
1963년 영국 뉴캐슬에서 결성된 애니멀스는 비틀스를 뒤따라 1964년 미국에
진줄해 '부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킨 밴드 가운데 하나다. 이는 영국의 팝 밴드들이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미국의 팝 음악계를 장악했던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 TV 데뷔(1964년)
비틀스가 미국 TV 프로그램인 '에드 설리번 쇼'에서 펼친 공연은 영국 밴드가
미국 대중문화를 장악한'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날 7,300만 시청자가 비틀스의 공연을 지켜본 것으로 추산된다.
블루스 록
1960년대 불루스가 미국에서 설득력을 잃어다고 생각되던 바로 그때, 대서양 건너편인 영국에서는플리트우드 맥과 롤링 스톤스 등의 젊은 뮤지션들이 불루스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헤비 록
음악 축제와 콘서트홀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스피커와 증폭 장치의 크기도 커졌다.
록 밴드는 새로이 등장한 시스템을 맘껏 활용했고 청중은 점점 더 시끄러운 노래를 갈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탄생한 장르가 헤비 록이다.
쌓아올려 소리를 키우다.
앰프 가게를 운영하면서 드러머로도 활동했던 짐 마셀은
딥 퍼플의 리치 불랙모어와 더 후의 피트 톤젠드가 크고 강렬한 음색과
효과를 내는 기타 앰프가 없다고 볼평하는 것을 들은 후 앰프의 상징인 '마설 스낵'을 개발했다.
번쩍이는 키스의 공연
키스는 미국의 그 어떠한 밴드보다도 많은 골드 음반을 기록했다.
이 사진은 1992년 공연 모습으로 왼쪽부터 진 시먼스,(드럼 뒤에 보이는) 피터 그리스, 폴 스탠리, 에이스 프렐리다.
퓨전 재즈
퓨전 재즈는 앰프로 소리를 증폭한 혼성 장를 1960년대 중 · 후반 미국에서 발전했으며 재즈 록이라고도 불린다.폭넓은 인기를 누렸으며 포크 음악과 라틴 음악 등 다양한 민족 음악의 요소가 결합되어 여러 가지 하위 장르로 분화되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마법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는 비밥 이후의 재즈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것은 물론 재즈, 록, 펑크를융합하는 데 열의를 다함으로써 퓨전 재즈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퓨전 재즈의 고전존 맥러플린이 결성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의 데뷔 앨범 <THE Inner Mounting Flame>(1971년)은퓨전 재즈의 고전이다. 빠르고 음량이 큰 기타 사운드 때문에 록 취향의 청취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일렉트로닉 록
1950년대 로큰롤이 탄생한 때부터 전기 기타는 록 밴드에 반드시 필요한 악기가 되었다.
전기 기타뿐 아니라 1960년대에 출시된 무그 신시사이저부터 오늘날의 랩톱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전자 악기가 내는 소리는 록의 음악 언어를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자 음악의 선지자
브라이언 이노가 1973년 앨범 <Here Come the Wam Jels>를 녹음할 당시 모습이다.
프로듀서와 전자 뮤지션으로서 이노는 탁월한 선견지명을 지녔다.
70년대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인 록 음반 가운데 대다수에 참여했다.
(좌) 창백한 크루너
사진은 보위가 1976년 신 화이트 듀크로 공연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캐릭터는 <Slation to Staion>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1920~1930년대 크루너나 은막의 스타를
모델로 하여 탄생했다. 실제로 원조 크루너인 시나트라가 보위의 녹음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우) 커버걸
보위는 이기 팝과 함께 쓰고 기존에 이기 팝이 녹음한 바 있는 <China Girl>을 직접 불러
1983년 앨범 <Let's Dance>에 실었고 이 곡은 큰 성과를 거뒀다.
인도의 음악 - 라가와 탈라
최면적인 리듬, 장식적인 선율, 매혹적인 신비주의가 특징인 인도의 고전 음악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적이고 명상에 빠져들게 하는 인도 음악의 특텃에 빠져드는 이가 많으며, 여러 서구 작곡가와 연주가가 그 마력에 사로잡혔다.
음악 페스티벌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야영을 하고 성향이 비슷한 음악 애호가와 어울리면서 일종의 성년식을 치른다.
평화와 사랑의 시대인 1960년대에 시작되어 이제 대규모 상업 행사로 성장한 음악 페스티벌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섬으로 몰려든 청중
1970년 아일 오브 오이트에 너무나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바람에 허가증 없이는 이 섬에서
5,000명을 초과하는 집회를 열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내슈빌 사운드
컨트리 음악의 모태는 농촌의 민속 음악이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컨트리 음악은 재즈, 스윙, R&B,
로큰롤, 팝의 요소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내슈빌 사운드'다. 오늘날에도 내슈빌 사운드의
기본 공식을 따르는 컨트리곡들이 크게 히트를 치고 있다.
컨트리 음악의 다재다능한 여신 둘리 파튼
벤조, 피아노, 드럼을 비롯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직접 곡을 쓸 수 있다.
그녀가 작곡한 노래 가운데 <Backwoods Barbie>, <Jolene>, <I Wil Always Love You> 등이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레게
섬나라인 자메이카의 음악은 고립된 상태에서 발달했다. 그러나 미국과 가깝기 때문에 R&B, 소울, 펑크의 영향도 컸다.
레게는 이러한 장르들을 받아들여 율동적이면서도 느긋한 음악으로 변신했다.
가수와 영화배우로 성공한 지미 클리크
자메이카의 레게 가수인 지미 클리프는 14세에 첫 히트곡을 냈고
레게를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키는 데 공헌 했다.
그는 1972년에 레게 영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에서 주연을 맡았다.
음악계를 장악한 팝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과 팝의 여왕 마돈나가 부른, 시대를 초월한 명곡부터 유명세를 얻기 위해 급조된 밴드의
단명한 히트곡에 이르기까지 팝은 강력한 선율, 단순한 가사, 확실한 재미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호소력을 갖는다.
마이클 잭슨의 'Bad' 세계 순회 공연
1987년 마이클 잭슨은 솔로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세계 순회공연에 나섰다. 그 당시에 발매한 앨범 제목을 따서
'Bad' 로 명명한 이 공연은 16개월간 계속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콘서트 순회공연이었다.
사진은 잭슨이 1998년 7월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펼친 공연 모습이다.
팝의 상업화 - 차트와 뮤직비디오
대중음악은 시대를 막론하고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그러한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음반 판매량이 급증하고 차트에 오르거나 음악상을 수상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졌으며 뮤직비디오가
마케팅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대중음악의 상업화에 발동이 걸린 것이다.
디스코 열기
1970년대 초반 도심의 나이트 클럽은 국제적인 분위기로 명성을 얻었다.
나이트클럽에서 틀어 대던 디스코 음악은 댄스 플로어에서 인상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던 이들에게
우아함과 세련미를 더해 주는 수단이었다. 디스코는 전 세계 나이트클럽을 장악했다.
디스코 밴드 시크
나일 로저스와 버너드 에드워즈는 영국의 글램록 밴드인 록시 뮤직이 풍기는 퇴폐적인 상류층 이미지에
영감을 받아, 1976년 시크를 결성했다. 이들은 퀸, 힙합 밴드인 슈거힐 갱, 인디 댄스 밴드인
뉴오더에 영향을 끼쳤다.
폭발적인 펑크 음악
20세기 음악을 통틀어 펑크만큼 독특한 움직임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시끄럽고 거칠며 불경스러운 펑크는 불만이 많은 세대의 공감을 샀다.
기존 전통 음악을 묵살하는 음악은 물론 유행하는 것임 무엇이든 펑크로 불렸다.
수지 앤드 더 밴시스
섹스 피스톨스의 영향을 받은 캔트 태생 수전 재닛 밸리언은 1976년
'주기도문'을 20분간 즉석에서 공연한 이후에 기타리스트
스티븐 세버린과 함께수지 앤드 더 밴시스를 결성했다.
영국 왕실을 모독한 노래
논란을 일으킨 섹스 피스톨의 싱글 <God Save the Queen>의 표지는 펑크 아티스트 제이미 리드가 디자인한 것.
이 노래는 'Queen(여왕)'과 <전체주의 정권>의 각운을 맞춘 가사로 충격을 주었다.
펑크의 왕자들
1978년 섹스 피스톨의 마지막 순회공연 기간 동안
시드 비셔스(왼쪽)와 조니 로튼이 공연하는 모습이다.
얼터너티브 록
펑크 록의 자급자족 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80년대 초반에 독립 음반사가 많이 불어났다.
차트 진입에 관심이 없는 신세대 밴드는 적은 비용으로 음반을 녹음하고 대학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이러한 밴드의 음악은 인디 록 또는 컬리지 록으로 불렸다.
대학 동창으로 구성된 R.E.M
조지아대를 중퇴한 기타리스트 핕 벅(왼쪽)과 마이클 스타이프(왼쪽에서 두 번째)가 결성한 R.E.M은
대학생 대상의 라디오 채널에서 스타디움으로 무대를 옮긴 대형 밴드가 되었다.
뮤지컬의 부활
1960년대 로큰롤 열풍이 식은 직후만 해도 미국의 음악 극장은 과거와 같이 재즈의 영향을 받은 춤과 대중적인 노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팝이나 록의 언어가 뮤지컬 악보에 스며들면서 뮤지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아프리카의 음악
아프리카 뮤지션들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단으로 혁신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재능이 있다.
또한 이 거대한 대륙에서는 이웃 나라와 음악적인 특징과 스타일을 공유하고 서구 음악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일리 성행한다.
힙합
힙합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되었으나 3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슬럼과 게토의 배경 음악에서
세계적 상품성을 인정받은 세력으로 발전한 힙합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럽 문화
댄스 음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것은 향락적인 분위기가 넘쳐나고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이
일상 활동이 되다시피한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에 따라 DJ가 아티스틀오 대접받게 되었고 댄스 음악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레이브 파티
하우스 음악은 1980년대 후반 유럽으로 건너와 주로 공장에서 밤을 세워 댄스파티를 하는 레이브 문화로 이어졌다.
이 문화는 다시 미국으로 전파되어 대대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한류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거대한 파장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젊은 신진 아티스트들이 힙합과 일렉트로 팝 같은 서구 장르에 색채를 입히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로부터 불과 20년 만에
소셜 미디어의 힘에 의해 그 물결은 해일처럼 거세게 세계 음악계를 휩쓸었다.
싸이 <강남 스타일>
한국인 래퍼 싸이가 2012년 9월 NBC 방송국의 '투데이'에 출연해 말춤을 추는 장면.
당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조차 재선 축하 파티에서 추기 위해 말춤을 연습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전 음악의 새로운 물결
1960년대에는 미니멀리즘 음악이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음악 단위를 반복함으로써 서서히
전개되는 ㅁㅣ니멀리즘 음악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오늘날 작곡가들은 극도로 단순한 음악에서
극히 복잡한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혁명
신기술의 출현으로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의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신기술은 소비와 오락은 물론 작곡 기법까지 바꿔놓았다. 콤팩트디스크로 시작된 재생 매체는
MP3을 거쳐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포멧으로 진화했다.
인용서적: 이안 블렌킨솝, 키쿠 데이 外 著 | 서정아 옮김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