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음악 3
고전주의 시대
1750~1820
명료함과 이성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계몽주의가 고전주의 시대 3대 거장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의 음악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모든 형식 가운데 소나타가 이 시대를 특징짓는 음악 형식으로 우뚝 솟았다.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등을 통해 고전주의 음악은 정점에 도달했다.
장 앙리 나데르망이 1797년에 제작한 싱글액션 하프
자연의 질서
프랑스 화가 앙투안 와토가 창시한 페트 갈랑트 양식은 그의 <야외에서의 즐거운 모임(1720)으로 대표되며
갈란테 양식 음악이 탄생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두 양식 모두 간결한 우아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18세기 목제 인쇄기
인쇄기의 발명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인쇄물을 배포할 수 있게 되자 작곡가들은 직접 쓴 곡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또한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들은 자습서로 연주법을 배울 수 있었다.
18세기 관현악단을 그린 이 그림을 보면 가수와 더불어 현악가와 관악기 연주자가 서 있다.
앉은 채로 하프시코드와 비올론을 연주하는 이들은 콘티누오 성부를 연주하고 있다.
콘티누오 성부는 베이스 성부를 강화하고 화성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나타
이탈리어어로 '소리 내다'라는 의미의 소나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50년경으로, 기악곡을 성악곡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소나타는 서양 음악에서 가장 폭넓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황궁의 소타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1712~1786)는 100편이 넘는 플루트 소나타를 작곡했다.
아돌페 폰멘첼의 1852년 회화 <상수시의 풀루트 콘서트>에 묘사된 것처럼 대제의 플루트를
건반으로 반주하는 일은 주로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가 도맡았다.
륄르리 궁의 콘서트
요제프 하이든을 비롯한 18세기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교향곡은 주로 파리의 콩세르 스피리튀엘이라는 공개 연주회에서 공연되었다.
륄르리 궁은 그 연주회장 가운데 하나였다.
쉼표는 침묵을 나타낸다. ---------------------
아마추어 음악가
18세기경에는 왕궁이나 귀족 저택의 전유물이던 음악 연주가 가정으로 보급되었다.
자신감 넘치는 신흥 계층은 2~4명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그럴 만한 여유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장이 남긴 메모
모짜르트가 1787년에 작곡한 세레나데<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작은 소야곡>는
주로 합주단에 의해 연주된다. 원래는 현악 4중주에 첼로를 보완하기 위해 더블베이스를 덧붙인 5중주곡이었다.
합리주의 시대
18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지식인들이 과학과 논리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식의 전파를 통한 사회 개혁을
도모함에 따라 창의력의 시대가 지작되었다. 구조와 명료함이 음악을 비롯한 각종 예술 장르의 지향점이었다.
조화로운 건축물
고대 그리스 · 로마 건축물의 위풍당당한 비율과 우아한 균형미는 18세기 음악 형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진은 스페인 남부의 로마 식민지 바엘로 클라우디아다.
계몽주의의 음악 문헌
디드로의 『백과사전』(14751~1772)에 삽입된 로베르 베나르의 도표는 다양한 관악기를 보여 준다.
이 백과사전에는 11권 분량의 도표가 실려 있다.
계몽주의의 승리
모차르트가 작곡한 <마술피리>의 리브레토는 계몽주의가 시행착오 끝에 미신을 타파하고 합리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음으로써
계몽주의의 가치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 그림은 1818년 상연 당시의 무대 디자인으로
밤의 여왕이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오페라의 인기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유럽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17세기에 오페라 극장이 연이어 개관하면서 왕궁의 여흥이었던 오페라가 대중 오락이 되었다.18세기에 일어난 오페라 개혁은 훗날 낭만주의 오페라의 초석이 되었다.
합창 음악
합창 음악은 18세기에 엄청난 도약을 이뤘다. 교회 예배용으로 작곡된 음악들이었으나
이 시기에는 콘서트홀에서 별도로 공연되는 형식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작곡가들은 경건함을 떨쳐 버리는 대신에 명백하게 세속적인 요소를 접목한 합창 음악을 썼다.
한 시대의 종말(부분)
하이든은 1808년 3월 빈의(천지창조)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화가 발타자르 비간트가 그린 이 그림은 당시 공연을 묘사한 것이다.
협주곡
협주곡은 관현악단과의 대화를 통해 독주 악기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는 형식이다.
18세기 후반에는 독주 악기로 인기가 높던 피아노와 바이얼린뿐 아니라 목관과 금관 악기를 위한 협주곡이 작곡되기 시작했으며,
작곡가들은 악기의 독특한 음색과 풍부한 관현악 반주부가 극명히 대비를 이루는 협주곡을 내놓았다.
피아노
피아노는 서양 음악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다채로운 음색은 관현악단을 방불케 하며
작곡가들의 가장 내밀하고 자기 고백적인 작품도 피아노곡으로 작곡되었다.
피아노처럼 변화무쌍하고 영향력이 큰 악기는 달리 찾아보기 힘들다.
1828년에 제작된 스토다트 피아노
금제 버팀틀만을 사용한 최초의 피아노로써 음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의 두께를 늘려 장력을 강화한 피아노다.
보청기
베토벤은 30세가 되기 전부터 청각 이상을 겪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증폭하기 위해 보청기를 사용했으나
1818년경에는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고 말년에는 청각을 완전히 잃었다.
보헤미아 음악
보헤미아는 오늘날 체코 공화국의 영토에 있던 왕국으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주목할 만한 작곡가를 다수 배출했다. 이들은 대부분 당시 표준이나 다름없던 독일의 음악 양식을 수용했지만
몇몇 작곡가는 체코의 목소리를 음악에 넣었다.
민속 음악의 영향
아쿠프 얀 리바는 관악기의 '외형적인' 음색으로 소박한 민속 음악의 분위기를 내려 했다.
예를 들어 바순을 사용해 백파이프나 손풍금의 지속음을 모방했다.
인용서적: 이안 블렌킨숍, 키쿠 데이 外 | 서정아 易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