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미술 2
윌리엄 호가드
영국 미술을 미술사에 등장시킨 최초의 화가
<케리커처> 동판화, 1743
<옷 갈아입는 서커스 단원들> 동판화, 1743
「탕아의 편력」중 <상속자> 1733~35, 런던, 손스 미술관
호가드의 대표작으로 곱히는 이 연작의 첫 작품이다, 비 양심적인 해적판을 막고 자신의 생계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미술가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하고자 했는 그는 1735년 '호가드법'이 통과 된 후에야 이 연작을 발표했다.
「탕아의 편력」중 <술집> 1733~35, 런던, 손스 미술관
「탕아의 편력」중 <술집> (부분)
「탕아의 편력」중 <결혼식> 1733~35, 런던, 손스 미술관
「탕아의 편력」중 <감옥> 1733~35, 런던, 손스 미술관
「탕아의 편력」중 <정신병원> 1733~35, 런던, 손스 미술관
8점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의 마지막 작품은 정신병원이 배경이다.
「탕아의 편력」중 <정신병원> (부분)
「정략결혼」중 <계약> 1744, 런던, 내셔널 갤러리
호가드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연작의 첫 번째 작품에서는 '그림 속의 그림'을 통해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가들의 그림은 이곳이 허세에 가득 찬 귀족의 저택임을 암시한다.
「정략결혼」중 <아침> 1744,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정략결혼」중 <아침> (부분)
신랑과 신부는 이 결혼에 대해 관심이 없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얻은 돈과 명에로 각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각자 밤새 즐기고 난 후 노곤한 표정의 신부는 아직은 만족스러워 보인다.
「정략결혼」중 <부인의 침실> 1744,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정략결혼」중 <그 남자의 죽음> 1744,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정부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있다.
두 사람에게만 비치는 은은한 조명 속에 정략결혼의 최대 희생자 중 한 사람인 신랑이 죽어간다.
「정략결혼」중 <그 여자의 죽음> 1744, 런던 내셔널 갤러리
남편을 살해한 정부가 교수형에 처해지자 신부는 독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쓰러진 의자와 우는 아이, 사람들로 북적한 중에도 신부의 아버지는 죽어가는 딸의 손에서 반지를 빼내고 있다.
이제 하나 남은 정략결혼의 희생자마저 세상을 뜬 것이다.
<애견과 함께 있는 자화상> 1745, 런던 테이트 갤러리
<그램의 아이들> 1742, 런던, 테이트 갤러리
프란스시코 고야
생의 마지막까지 새로움을 추구한 진정한 대가
<양산> 왕립 카피스트리를 위한 밑그림, 1777,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의 초기 작품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타피스트리를 위한 밑그림 중 하나로,
그의 초기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1780,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 작품세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크 미술 전통을 읽을 수 있는 초기 작 중 하나이다.
<마리아 발현> 천장화, 1780~81, 사라고사, 파스콸 데퀸토 성당
<카롤로스 4세 부부와 가족> 1800~01, 마드리드 , 프라도 미술관
고야는 명예와 세속적 성공을 좋아했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상류사회와 후원자들에 대한 그의 작품은 신랄하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 또한 보기 흉하고 천박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벨라스케스, <공주와 시녀들> 1656,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카프리초스」(일부) 동판화, 1799년 완성
82점의 동판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고야는 풍자만화의 대중적 상상력을 이용하여
정치적 · 사회적 · 종교적 악습을 비판했으며 수준 높은 독창성을 발휘했다.
「전쟁의 참화」(일부) 동판화, 1820년 완성
1792년 병을 앓고 귀머거리가 된 뒤 고야는 자신의 예리한 눈과 비판적인 정신으로 관찰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자신이 목격한 난폭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기록 형식의 사실주의가 아니라
선묘와 애쿼틴트를 써서 극적으로 구성했으며, 빈틈없는 사부묘사로 실물 같은 생생한 효과를 창조해 냈다.
<1808년 5월 3일> 18147,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마네 등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좌) <아들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1~23,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우) <보로도의 처녀> 1827,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프레라파엘리티
정교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지향한 근대미술 운동
단테 가르리엘 로세티, <마리아의 소녀시절> 1848~4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성서에 언급되지 않은 마리아의 생애를 당시 중류층 집안의 한 때를 묘사하듯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시, <성모영보> 1850, 런던 테이트 갤러리
발표 당시에는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종교 주제를 버리고 세익스피어나 단테 등의 작품에 나오는 장면을 주제로 삼게 되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로세티의 상상력을 더 자유롭게 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베아트리체 사망 일주년> 1853, 옥스퍼드 애셔몰린 미술관
단테의 작품을 주제로 하면서 베아트리체, 자신과 애인 엘리자베스를 나란히 등장시켜
상상의 세계를 사실적인 묘사로 실현해 내고 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블루 스튜이도> 런던, 테이트 갤러리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장식적 모티프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현대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는 듯하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기를란다타>, 런던, 기달아트 갤러리
존 애버릿 밀레이, <오펠리아> 1851~52, 런던, 테이트 갤러리
존 애버릿 밀레이, <낙엽> 1855~56, 맨체스터, 시립 미술관
당대의 위대한 사상가 존 러스킨의 초상화이다.
월리엄 홀먼 헌트, <이사벨라와 바실리코 화분> 1866~68, 뉴 캐슬 업폰 타인, 라잉아트 갤러리
월리엄 홀먼 헌트, <자각> 1853~54, 런던, 테인트 갤러리
월리엄 홀먼 헌트, <샬롯의 여인> 하트포드, 웨즈워스 아테네움
휴스, <사월의 사랑> 1858, 런던 테이트 갤러리
안토니 가우디
자연으로 빚어낸 환상적인 조형언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1883~현재, 바로셀로나
가우디는 자신의 말대로 자연과 하나되는 건축을 추구했고 그의 건축물은 완전한 자연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매달렸고 사후에도 지금까지 계속 건축되어 있는 성가족 성당은 고딕 성당이 전통과 첨단의 건축공법,
거기에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인류의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
가우디의 고딕적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딕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개의 파사드로 되어 있으며, 상공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이다.
모두 5개의 동랑(navata)으로 되어 있으며 동랑의 총길이는 95미터, 측량은 60미터, 탑의 높이는 100미터이다.
알함브라 궁전 내부의 타일벽, 그라나다
귀엘 공원의 파딜리온, 바르셀로나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를 넘어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귀엘 백작은 가우디에게 자신의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가우디 특유의 곡선미와 환상의 세계가 유감없이 실현된
귀엘 공원은 주변의 자연경관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