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아네트 메사제

茶泉 2019. 7. 27. 11:28

 

발랄한 상상이 던지는 따끔한 진실

 

 

 

 

 

 


 

매일매일을 모으는 수집가

 

아네트 메사제Annett Messager, b. 1943

 


 

파리 국립 장식 예술대학에 들어갔지만 수업보다 미술관과 영화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그리고 스물 한살인 1964년에 코닥 포토그래피 인터내셔널 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 1995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현대미술관(LACMA)과

뉴욕의 MoMA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1999년 파리 근대미술관, 부에노스아이레스 근대미술관, 2007년 퐁피두센터,2008 도쿄 모리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파리 비엔날레(1979, 도쿠멘타 VI(1977)와 XI(2002), 시드니 비엔날레(1979, 1984, 1990),

베니스 비엔날레(1980, 2003, 2005), 그리고 2000년 리옹 현대미술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2005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품 「카지노」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 아네트 메사제는 오랜 파트너이다.

1970년에 처음 만난 둘은 작업하는 동료에서 시작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 둘과 인터뷰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각자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만나고자 예의를 지키려 했다.

 섭외할 때도, 볼탕스키 선생을 먼저 만났을 때도, 며칠 후 아네트 메사제 선생을 만날 거라는 귀뜸도 하지 않았다.

 두 분 모두 내가 아는 척을 하지 않았기에 속으로는 혹시 내가 두 사람을 인터뷰 한다는 사실을 서로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듣자 하니 두 분은 일에 대해서는 서로 일체 관여하거나 평하지 않는단다.

(·····)

 

 

 

 

 

 

「나의 바느질」, 설치(천 · 바늘 · 실 · 카드도드 · 종이에 먹 · 손으로 쓴 메모).

30.4×45.4cm(앨범), 약 100×200cm(wjscp), 1972, 그로노블 미술관

 

(····)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인기 작가 아네트 메사제는 미술관에 옮겨 놓아도 괞찮을지 의문이 드는 쑥스럽고 사소하며

괴상한 물건조차 예술로 불리게 했다. 1968년, 아네트는 종이로 만든 하이힐을 신고, 종이 선글라스를 썼다.

그러고는 종이로 손목시계, 반지 따위를 무수히 많이 만들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

 

30년을 신인처럼 작업해온 경쾌한 아네트 메사제를 2010년 가을, 파리 근교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만났다.

그날 그녀와 함께 사는 오랜 동반자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집에 없었다.

 

 

 

 

 

 

자택에서 아네트 메사제 / 사진: 안희경

 

 

(····)아네트의 거실에는 총을 든 토끼도 서 있다. 총구멍이 나를 향했더라면 손을 번쩍 들 뻔했다. 영락없이 살아 있는 들토끼처럼 보였다. 동화 속에서 나온 듯 인간의 말도 할 것 같았다.(····)



「나의 트로피들(남성성기)」, 캔버스에 붙인 젤라틴 실버프린트 사진에 아크릴릭 · 목탄 · 파스텔, 86×43cm,

1987Courtesy Marian Goodman, New York/Paris

그녀의 작업 가운데 「나의 소원들」이나 「엄마, 그녀의 초록 드레스 이야기」「나의 트로피들」
등의 작품들은

살아 있는 몸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30여 년에 걸친 작업에서 인체의 부분 부분이 다양한 조합과 형식으로 드러났다.

하트 모양이나 나선형, 사람 모양으로 조형미를 갖추어 전시되는, 퍼즐 같으면서도 스토리가 자가 증식하듯 복합적인

 아우성이 울린다. 혀 속에서 기어나오는 메두사, 다리 털 속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웃으며 유영하는 여인들도 있다.

입 모양, 눈 모양, 성기 모양마다 경쾌하다가도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

아네트 메사제의 쿨한 면모는 인터뷰 하면서도 여러 번 느끼게 됐다. 그녀의 작업에서 받은 느낌에 곁들여

 내가 의미를 덧붙이려 하면 손사래 치기 일쑤였다. 메시지를 담고자 포장하려는 말에도 아네트는 몸짓으로, 언어로 거부했다.

논리를 갖추어 작품관을 뚜렷이 밝히고 전달하는 작가들과 달리 그녀는 규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론으로 감싸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지 아니면 부질없다 여기는지·····

 

 

 

 

 

 

 

 

 

 

 

 

(·····)

작가에게 있어서 아이디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아네트는 말한다.

예술가들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데, 가끔은 그 아이디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오히려 위험하게 보인다는 의견이다.

이 말을 하는 아네트에게서 파리 국립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교수의 면모가 물씬 풍겼다. 아네트의 프랑스어를 내게 영어로

통역해준 작가 캐서린 오에게 들은 교수 아네트의 모습은 격을 갖춘 스승의 면모였다. 아네트가 힘주어 말했다.

 


아이디어는 반드시 오브제라는 틀로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비주얼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아이디어는 반드시 보이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아네트 메사제이 작업 「연결된-탈구된」에는 많은 조작된 캐릭터와 사물 들이 등장한다. 일종의 관절로 연결된

사람 모형들이모터에 연결되어서 끈에 매달려 있거나, 땅바닥에 서 있으며, 천천히 움직이고,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곤 한다.

그렇지 않은 사물들은 꼬여 있거나 엮어서 벽에 고정되어 있다. 팔이 아래로 늘어져 있엇, 내가 보기엔 예수님 같은 형상이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인형 같은 인간들이었다고 했다. 인형이어도 아직은 살아 있는 존재 말이다. 인간에 중점을 둔 건지 인형에 중점을

둔 건지 잠시 생각해 보게 됐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의지대로 살아간다기보다는 몸 가는 대로 살아간다. 당장 일주일 뒤가 시험이라

밤을 세우겠다고 작정을 해도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하는 이는 많지 않으니까. 추워서, 감기로, 피곤해서 등등 많은 이유가

'나'를 끌고 간다.살아 있는 우리의 의지를 꽁꽁 묶어두는 우리의 몸뚱이는 그러고 보면 인형의 몸인 것도 같다.

관계와 환경이라는 동아줄이 우리를 조정한다.

 

(·····)

그녀가 만든 인형들은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여러 번 맞으면 제대로 타격을 입는 잽과 같은 면이 있다.

그녀의 도록 『글자 그대로Word for Word』가운데 아네트가 "나는야 말 도둑I'm a word thief"이라고 한 부분이 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사실 그녀는 초기부터 언어를 이용한 작품을 했고, 전시장 벽에 글짓기를 해놓기도 하고 액자에 글을 써서 걸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시지 같이 생긴 인형으로 'Rumour'같은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작업 전반에 코미디 같으면서도 날카로운 '말놀이'가 있다.

 

 

 

 

 

 

 

 

나의 언어들은 시각적 창작 작업과 평행적입니다. 독립적인 창작 활동이기도 하고요.

내가 설치하면서 조작한 단어들도 일종의 정보를 전달합니다. 평론가들은 이를 보고 나의 비주얼 아트에서 핵심을 이루는

요소라고도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아네트 메사제, 수집가라 부릅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 갈수록, 시간이 흘러

사라지는 것과는 반대로 수집품은 늘어갑니다. 처음에는 컬렉션이 적었어요. 그러나 시간과 함께 성장했죠.

참, 한국에도 이런 관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 수집가라고 말하며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수집가는 여성형일 때 그 여자가 수집하는 대상이 남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단어거든요. 그러니까 남자 수집가와

여자 수집가는 완전히 가치가 달라요. 이는 '공적인 남자un homme public' 라는 단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럴때 남자는 공인인 남자, 정치권에서 일하는 남자, 신문에서 볼 수 있는 남자, 이런 유명 인사를 지칭합니다.

그렇지만 여성의 경우 '공적인 여자une femme pubique' 는 공공의 여자, 즉 창녀를 뜻합니다.

 

 

선생에게 물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 라고. 그녀가 '푸하'하고 웃으며 매혹적으로 답했다.

"나는 그저 여자예요je suis une femme."

 

 

 

 

 

 

 

 

작가는 경계에 선 사람이다

 

 

그녀의 말은 그녀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흐르는 액체이 이미지를 갖는다.

각설탕 처럼 딱딱 떨어지는 답을 주며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출렁이고, 새어나갈 것처럼 각이 잡히지 않은 플러버 같은 느낌이다.

그녀에게 "최근 당신의 작업은 검정의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다가오고, 검정이 동양의 음양오행에서 상징하듯 많은 것을 흡수하는

물의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 라고 말하니 자신의 검정 그물에 대해 설명했다.

 

 

나의 그물들은 항상 어두운 검정이죠. 내게 있어서 망은 무언가를 감추는 겁니다.

또한 검은색 스타킹을 신는 여자처럼 매혹적으로 보이려는 욕망도 담겨 있어요. 그리고 무언가를 그물로 감쌀 때,

한편으로 우리는 이를 보호하는 동시에 그것을 봉해버리는 거지요. 이는 일종의 감옥입니다.

 

 

그녀를 덮고 있는 그물은 무엇일까? 아마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작가라는 역할이 그녀에게 감옥 같은 압박이 아닐까 싶다.

예술을 하든 무엇을 하든, 지금의 호칭을 유지하려면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하니, 끊임없는 부담일 것 같다.

그녀에게 작가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작가에게 있어서 정해진 배역이란 없다고 봐요. 작가는 역할이 없어야 합니다.

작가는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관찰하는 사람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일이죠. 작가는 사람들이 보지 않았던 것을

끄집어 냅니다. 경계에서 가장 앞선 곳에 머물러야만 해요. 약간은 미쳐서 머물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교수가 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리고 좋은 작가는 좋은 교수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작가는 또한 교육이나, 미술관, 수집가에게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만의 길을 발견해야 하죠. 유행에 빠져선 안 되고, 대신 일에 푹 빠져들어야 중독되어야만 해요.

 

 

 

 

 

 

 

 

 

교육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깊게 울린다.

중학교 입시부터 미대에 갈 아이와 가기 힘든 아이가 나뉜 한국이라는 세상을 떠올리니 꼭 필요하다 싶은 대답이었다.

미대를 가기 위해서는 교육에 얽매여 있어야 하지만, 작가가 되는 데는 오히려 교육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니까 말이다.

좋은 작가란 아마도 그 모든 교육에서 자유로이 노닐 수 있는 영혼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네트 역시 아이 같은 자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이들이 놀 때, 그들은 매우 심각하죠. 그렇게 사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바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에요.

그 아이디어가 품고 있는 의미와 놀고, 형식과 놀고, 예술은 놀이예요. 하지만 이 놀이는 심각한 것이죠.

 

 

그렇다. 이 놀이는 심각하다. 그래서 놀면서도 누구나 허덕인다. 행복하면서도 아프고 절망한다.

그 절망이 일상이려니 알게 될 즈음 놀이에서 고수가 되는 것일까? 세상 누구나 인정하는 작가이자 멕시코, 미국, 프랑스,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각국의 대표 미술관에 수집물을 마음대로 펼치며 놀이를 벌이는 아네트 메사제조차

아직도 한계를 느끼며 허덕인다고 했다.

매일매일이 한계라고 그녀는 말했다. 다만, 그 한계를 벗어나는 길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의 저자 안 희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