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正祖)의 번리어찰(樊里御札) 1
번리어찰(樊里御札) 1
(1799. 8. 7 ~ 1800. 4. 30)
● 정조가 외삼촌 홍낙임洪樂任에게 보낸 편지로, 번리(樊里)는 지금의 강북구 '번동'지역을 뜻한다.
35.2×54.3cm, 기미년(1799) 8월 7일. (정조 23년)
며칠간 가을날이 맑은데 안부가 평안하시지요. 나는 아침에 향소(享所)에 가서 직접 희생과 기물(器物)을 살피고 해질녘에
돌아왔습니다. 『주고(奏藁)』는, 이제 이미 서늘한 바람이 부니 마음을 집중하여 정성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이나 내일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한 편이 완성될 때마다 즉시 들여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
오면 즉시 서문을 지을 계획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즉 흠배(欠拜).
연방(蓮房) 30개를 편지와 함께 보냅니다. 또 20개는 문상(汶上)에게 전해주세요.
추알(秋謁)이 19일로 정해졌습니다. 32년 후 본 능에 거듭 배알하려니 추모의 생각이 갑절이나 간절합니다.
* 향소(享所):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景慕宮)을 말한다.
* 주고(奏藁)』: 정조의 외할아버지 홍봉한(洪鳳漢)의 문집.
* 연방(蓮房): 연방에서 연밥을 빼고 어육(魚肉)을 넣고 찐 음식. 연방어포(享所魚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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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53.8cm, 기미년(1799) 8월 11일. (정조 23년)
34.7×53.5cm
그제 온 편지를 받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안부가 더욱 평안합니까?
나는 여름 석 달 동안 『논어』7권, 두율(杜律) 777수, 육률(陸律) 4877수 등을 공부했습니다. 『논어』는 『정의精義』를 묶어
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두율가 육률은, 죽 읽고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여러 번 보았으니, 이제는 천 수를 뽑아 두고
늘그막의 볼거리로 삼으려 하며 아울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지향할 바를 알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뽑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두율은 오히려 작업하기가 쉬우나, 율률의 좋은 것은 혹 소품(小品)에 가깝기 때문에
취사선택하기가 지극히 어렵고도 어렵습니다.
근자에 들으니 좌상左相[이병모李秉模]과 문형文衡[홍양호洪良浩]이 육유(陸游)의 시를 꽤 공부했다고 하지만,
지금 누가 왕복하며, 내 뜻과 혹 맞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집사에게 질문하려 합니다.
동그라미 하나 한 것과 동그라미 둘 한 것은 내가 취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쌍점 한 것은 생각 중에 있는 것입니다.
동그라미와 점을 막론하고 집사의 의견대로 별지의 요령에 따라 첨지를 붙여주시 바랍니다.
내일 새벽에 인편을 보내겠습니다. 육유의 칠언율시와 두보(杜甫)의 오언과 칠언도 차례로 보낼 것입니다.
『주고』는 행행(行幸) 전에는 실로 착수하기가 어려우므로 제 2편 이하는 내가 돌아온 후 들여보내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즉시 올림(卽拜).
종이 머리에 논의를 써놓은 첨지는, 같고 다른 여러 의견을 대답한 것입니다. 그 중 용단(用短) 한 편을
취하고 싶으나, 혹 소품(小品)에 가까워 주저함을 면치 못합니다. 집사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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