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수목(樹木) 4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제107호
진도는 삼별초의 마지막 항거지다. 고려 원종 11년(1270 배중손을 중심으로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여
용장산성을 축조하고 끝까지 저항하다 끝내 관군에게 궤멸되고 만다. 그 한많은 역사가 배어있는 첨찰산.
우리나라는 서해안의 보령 앞 바다 외연도와 동해안 온산공단 앞 목도, 남쪽으로는
제주도 안덕계곡 등 모두 11군데의 상록수림이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상록수림은 무인도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4곳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이곳 쌍계사 상록수림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찌감치 천연기념물 반열에 올랐다고.
절 뒤쪽 약 2km에 걸친 계곡을 따라 상록수림이 형성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기에 숲이 파괴되어 그 면적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쌍계사 뒷편 첨찰산에 들어서자 마자 엄청난 세력의 구실잣밤나무 군락이 하늘을 가린 가운데
동백을 비롯, 후박나무, 감탕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종류 등 키 큰 나무와 차나무, 자금우,
광나무, 마삭줄,멀꿀, 모람 등 키 작은 나무와 덩굴나무가 섞여 숲을 이룬다.
위쪽으론 갈잎나무가 주로 서식하는데 오동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예덕나무, 자귀나무 등의 큰 나무와 소사나무, 쥐똥나무, 실거리나무, 조록싸리, 삼색싸리 등의 작은 나무가
섞여 있는데 동백 개체가 가장 많은 듯 보이고, 위쪽 경사지에는 조릿대가 점령한 가운데 신갈나무와 소사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입적하신 법정 스님께서 학창 시절 이 쌍계사에 왔다가 전생의 자신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렸다던가?
암튼 진도라는 섬은 일반 섬과는 다른 독특한 자연을 품은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같다는 생각이다.
첨찰산을 배경 삼은 운림산방(雲林山房)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이 기거했던 곳으로 그의 손자 남농 허건에 의해 복원되었다.허소치는 1840년 33세 때 초의선사의 동갑내기 스승 김정희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서화수업의 길에 나서 그야말로 시(詩), 서(書), 화(畵) 삼절을 완벽하게 이룬 인물로 평가 받는다.
일지매(一枝梅)
제자인 허소치가 향리로 내려가 산방을 열자 스승 김정희가 '운림산방'이라는 당호를, 초의는 이 매화를 선물했다고 전해온다,
소치 타계 후 제자 임삼현이 26년간 운림산방을 지켜오던 중, 산방이 팔리고 당시 의신주재소의 엔또 소장이란 자가
이 매화(2대목)을 일본으로 가져가려 하자 임삼현의 아들 임순재가 진도읍 동외리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는 1995년 187년을 끝으로 수명을 다 했지만, 살아있을 당시 뿌리나누기를 해 둔 자목 한 그루를,
임순재의 아들 임태영이 일지매의 본향 운림산방으로 옮겨왔다고.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제111호
높이 25m에 둘레가 6m나 되는 600년 이상의 수령을 지닌 거목이다.
독립된 비자나무가 이렇게 거목으로 자라난데는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보살핌 덕일테고,
당연히 마을 당산목으로 자리매김 되었을 터.
순천 조계산 천자암 쌍향수
천연기념물 제88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세를 자랑한다는 이 쌍향수(雙香樹)는 그야말로 용트림의 교과서인 듯.'송광사지'에 따르면 지눌스님이 중국 금나라에 갔다가 왕비의 불치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왕자 담당(湛堂)을 제자로 삼아같이 귀국하게 된다. 두 사람은 향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만들어 지친 육신을 의지하며 내려와 지금의 천자암 자리에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놓은 것이 싹이 터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이 삽목 전설은 우리나라 고목에 흔히 등장하는 얘기로 보조 지눌은 송광사 초대 국사이니 담당 스님과는 적어도 100년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로 미루어 전설일 뿐, 그리 따져 볼 일은 못 된다.
흔히 이 쌍향수를 곱향나무로 알고 있는데 곱향나무는 중국 동북부 및 함경남북도 산악지대에 주로 서식하는 키 작은 관목(灌木)이며 일반 향나무 보다 잎이 짧고 대부분 바늘잎이다. 반면에 이 쌍향수는 키가 크고 잎도 대부분비늘잎이다. 따라서 곱향나무로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일반 향나무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다.
그 옛날, 구불대는 산길을 헉헉대며 걸어 올라 해질녘 천자암 마당에서 바라본 낙조는 장엄 그 차체였다.쌍향수 아래 넋을 놓은채 세상에 이런 나무가 또 있을까 감탄 연발 가운데 스님의 재촉으로 산을 내려왔던 기억이다.
선암사 백매(白梅)
천연기념물 제488호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매화 중 가장 오래된 수령에 가장 수세가 왕성한데다
기품 또한 최상의 토종 5엽 백매라는 데 의의를 제기할 그 무엇도 찾지 못할 만큼 탐매 대상 제1호로 평가 받는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절집 선암사는 봄날 피어나는 매화와 영산홍을 찾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선암매'를 처음 찾았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만큼 너무도 강렬했었다.
선암사의 봄날을 보지 않고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보았노라 얘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라는 말씀.
이 선암사 매화만으로도 나무 이야기에 책 한 권을 할해 한데도 모자랄 지경이니 이쯤에서 그만~~~!
구례 화엄사 지장암 올벚나무
천연기념룰 제38호
국보 3개와 보물 4개를 소유한 구례 화엄사는 문화재급 수목에 있어서도 가히 최고의 전시장이다.
화엄사 일대에는 올벚나무가 유난히 많이 서식한다. 이 올벚나무 말고도 다른 고목 올벚나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벽암대사에 의해 많이 심어졌다는 화엄사 올벚나무는 유일하게 지정된 것이 바로 이 지장암 올벚나무다.
수령은 병자호란(1636) 이후 심은 것으로 계산해 약 350년으로 추정한다고.
불가에서는 벚나무를 사홍목(四弘目)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생을 도탄에서 구제하고 번뇌를 끊어
불도를 이룬다는 불가의 네가지 서원(誓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
지난 59년 태풍 사라호로 크게 상처를 입는 등 모진 세월의 풍상을 겪고서도 지금 껏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이 나무 말도고 두 그루가 더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그루는 화엄사 적묵당 건물 수리시 베어냈는데
얼마나 큰 나무였던지 나무 한 그루로 안마루를 전부 깔고도 남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한다.
흔히 보는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등의 벚나무 종류는 개화 상태가 아니면 구분이 어렵다.
올벚나무는 꽃이 다른 벚나무보다 조금 일찍 피며 꽃받침 아래 씨방이 항아리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특징.
또 오래된 나무줄기에 가로 숨구멍이 잘 나타나지 않은 것도 다른 벚나무와의 차이점이다.
화엄사 길상암 야매(野梅)
천연기념물 제485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이전,
경사지 시누대 밭 속에서 하늘로 치솟아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야생 매화로 분류되어 그 생물학적 가치를 인정 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데...
꽃과 매실이 작은데다 강한 생명력이 특징이라서 야매(野梅)로 분류했다지만, 개인적 소견으론 그리 큰 차이를 발견치 못했다.
이 매화를 부러 찾는이는 흔치 않다. 기품이나 화려함에 있어 그닥 주목을 끌지 못함은 저 화려방창한 화엄흑매 때문이다.
화엄흑매
비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이 각황전 옆 흑매(黑梅)야 말로
봄날 화엄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지 이미 오래다.
조선 숙종(1674~1720) 년간 계파선사가 각황전을 짓고 이른바 기념 식수한 나무로
너무도 강렬한 색감 때문인지 몰라도, 심지어는 화엄사 스님네들 조차 이 흑매를 천연기념물 매화로 잘못 알고 있을 정도.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제 239호
호젓함의 대명사 고흥 천등산(天燈山) 금탑사(金塔寺) 비자림(榧子林),
절 입구 오른편 계곡과 본당 서쪽 및 남쪽 각각 일천여 그루식 세 집단을 이룬다. 이 비자숲은 다른 나무가 들어오지 못하는
비자나무 단순림(單純林) 상태를 보인다.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인데 전체적으로는 같은 시기에 조림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의 굵기로 추정컨데 약 200여 년 전후로 짐작되며 금탑사는 비구니 절이다.
● 인용도서 : 박상진 著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