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평생도

茶泉 2019. 3. 6. 11:00

 

- 평생도平生圖 -

 

 

 

 

회혼(回婚)                                      치사(致仕)                                        좌의정행차(左議政行次)

 

 

담와홍계희평생도(淡窩洪啓禧平生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5 이후), 18세기, 견본담채, 각 76.5×37.9cm, 6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 1703-1771) 평생도는 김홍도의 낙관이 없으나, 제2폭 뒷면에 부착된 별지 내용과 화풍을

볼 때 김홍도의 작품이 틀림없다.  별지 내용에 "임금이 봉조하 홍계희에게 하사하였다"고 했으니 홍계희가

봉조하가 된 1765년(김홍도 21세) 이후부터 홍계희가 죽은 1771년(김홍도 27세) 이전에 그려졌을 것이다.

홍계희는 1765년 봉조하로서 김홍도가 그 행사를 그린 경현당수작(景賢堂受爵)에도 참여하였으므로,

이 행사를 계기로 영조가 그려 하사하였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어쨌든 이 담와평생도는 원래 8폭이었으나 현재 남은 것은 1.<삼일유가>, 2.<수찬행렬(修撰行列)>, 3.<평양감사 부임>,

4.<좌의정 행차>, 5.<致仕>, 6.<회혼례>이다. 아마도 없어진 두 폭은 앞쪽의 <돌잔치>와 <혼인>일 것이다.

구도상으로 볼 때 이 병풍은 김홍도가 뒤에 그린《모당평생도》보다 좀 더 복잡하고 필치도 정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1.<삼일유가>는 과거급제 후 어사화를 꽂고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모습이며, 제2폭에서 4폭까지는 순탄한 벼슬살이의

모습이며, 제5폭 <치사(致仕)>는 벼슬을 사양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모습이며, 마지막 제6폭<회혼례>는

부부와 자손 모두 건강하고 무사한 행복한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평양감사부임(平壤監司赴任)                수찬행렬(修撰行列)                       삼일유가(三日遊街)

 


제1폭 <삼일유가>에서는 삼현육각 악대가 마당에 일렬로 섰다. 메고 온 북은 세워진 상태이다. 악공은 붉은 단령과 복두를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 공작깃을 단 광대처럼 보이는 인물 2명과 무동같은 인물도 보인다. 제3폭 <평양감사부임>

에서는 감사의 배가 대동강을 지나 평양으로 입성하는데, 황색 답호를 걸친 취고수들이 별도의 배를 타고 대동강을 지나

평양으로 입성하는데, 황색 답호를 걸친 취고수들이 별도이 배를 타고 징 등을 연주하고 있다.제5폭 <치사>에서는

구부러진 소나무 뒤로 서책과 거문고 등이 있어 퇴직 후 풍류있는 생활을 보여준다.

(이태호, "조선후기 풍속화와 기록화에 나타난 연주장면." 참조)

 

 

 

 

 

세부도 :<삼일유가> 중 삼현육각 · 광대


 

 

 

 

 

세부도 :<평양감사부임> 중 취고수

 


 

 

 

한림겸수찬시(翰林兼修撰詩)                                                응방식(鷹榜式)

 

 

모당홍이상평생도(慕堂洪履祥平生圖) 1~8폭

김홍도(金弘道, 1745-1805 이후), 1781년, 지본담채, 각 122.7×47.9cm, 국립중앙박물관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1549-1615)은 풍산인(豊山人)으로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 예조참의로서

평양으로 왕을 호종하였고, 1549년 성절사로 명(明)에 다녀왔으며,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1609년), 개성유수(1612년)등을

역임했다.이 작품에는 마지막 폭 상단에 "신축년 9월 와서 재직 중 그리다"라는 관서가 있어 김홍도가 정조어진(正朝御眞)

도사(圖寫) (1781 년 8~9월) 직후 와서별제 재직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 병풍에는 한때 각 폭에 등장인물마다 설명 쪽지가

써 붙여져 있기도 했고, 화면 여러 곳에 상한 부분도 있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또 후대에 평생도의 모범으로서

가장 많이 모방된 작품이기도 하다.현존하는 후대의 평생도들은 대개 이 작품의 내용, 구도,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모습까지도 거의 같은 것이 많다.
제1폭 <돌잔치> : 건물 안에 부모, 조부, 유모, 손님 등이 돌상을 받은 아이를 둘러싸고 있다. 

마당에는 돌잔치를 지켜보는 하녀와 아이들, 그리고 닭과 개가 보이고, 중문 밖에는 머리에 무엇을 인 여인이 들어서고 있다.

제2폭 <혼인식> : 흰 말을 탄 신랑 일행이 개천 변 길을 따라 신부 집으로 가고 있다. 행렬의 앞에는 청사초롱과 나무 기러기를

안은 사람도 보인다. 신랑 뒤에는 유모가 말을 타고 따르는데, 길가의 집에서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제3폭 <삼일유가>

: 과거에 급제한 주인공이 어사화를 꽂고 백마를 탄 채 개천 변 길을 의기양양하게 행진한다.앞에서는 풍악을 울리고 많은

구경꾼들이 보고 있다.제4폭 <한림겸 수찬시> : 초임 문관의 가장 촉망받는 직책인 예문관 검열이나 홍문관 수찬 벼슬을 한

주인공이 퇴근하는 모습이다.제5폭 <송도유수 도임식> : 말 두 필을 앞뒤에 맨 쌍교를 타고 고개너머 개성으로 부임하는 행차다.

길가에는 행인들이 앉아 구경하고 있다.제6폭 <병조판서시> : 병조판서의 초헌 행렬이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가는 모습이다.

제7폭 <좌의정시> : 달밤에 좌의정이 네 사람이 맨 평교자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이다.제8폭 <회혼식> : 자손들에게 둘러싸인

노부부가 모란병풍을 배경으로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교배례를 치르는 모습이다.아래쪽 사랑채에는 하객들이 접대를 받고 있다.

 

 

 

 

 

 

혼인식(婚姻式)                                                           초도호연(初度弧宴)

 

 

 

 

회혼식(回婚式)                                                         좌의정시(左議政詩)

 

 

 

 

병조판서시(兵曹判書詩)                                                   송도유수도임식(松都留守到任式)

 

 

 

 

세부도 : <응방식> 중 삼현육각 · 광대


 

 

 

 

세부도 : <송도유수도임식> 중 취타악대

 

 

 

 

 

 

한림겸수찬시(翰林兼修撰詩)                                                삼일유가(三日遊街)

 

 

1~8폭

전(傳) 김홍도, 19세기, 견본채색, 각 53.9×35.2cm, 8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것으로 전칭되는 이 병풍은 앞서 살펴본 <모당평생도병풍>을 본으로 하여 후대의 화가가 그린 것이다.

등장인물과 구도가 거의 같고, 제2폭과 제4폭만 구도를 약간 달리했을 뿐이다.

제3폭 <삼일유가>에서 《모당홍이상평생도》의 <응방식>에서와 같이 삼현육각과 광대, 무동이 과거 급제자를 앞서간다.

제5폭 <관찰사부임>은 취타악기를 연주하는 취고수의 의상에 황색답호와 적색답호가 섞여 있고,

 나각 · 나발 · 장구 · 자바라 등의 악기가 보인다.


 

 

 

 

혼인식(婚姻式)                                                          초도호연((初度弧宴)

 

 

 

 

 

회혼례(回婚禮)                                                                   정승행차(政丞行次)

 

 

 

 

 

 

판서행차(判書行次)                                                 관찰사부임(觀察使赴任)

 

 

 

 

 

세부도 : <삼일유가> 중 삼현육각 · 광대


 

 

 

 

 

세부도 : <관찰사부임> 중 취타악대

 


 

 

 

좌로부터,

 회혼례(回婚禮), 회방례(回榜禮), 정승행차(政丞行次), 판서행차(判書行次), 관찰사부임(觀察使赴任)

 

 

평생도

필자미상, 19세기, 지본담채, 각 130×36cm, 10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이 10폭 병풍도 김홍도의 <모당평생도 8폭 병풍>을 기반으로 한 후대의 번안작이다.

늘어난 2폭에는 과거응시 장면(제2폭)과 아들의 과거급제 장면(제9폭)을 추가했다.

그리고 상하로 길어진 화폭에 맞추어 위쪽의 여백과 산수배경, 아래쪽의 대문 바깥의 장면 삽입 등의

안배를 했을 뿐 기본적인 소재와 구도는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좌로부터,

한림겸수찬시(翰林兼修撰詩), 삼일유가(三日遊街) , 혼인식(婚姻式 ), 소과응시(小科應試), 초도호연((初度弧宴)

 

 


 

 

 

삼일유가(三日遊街)                                                                     혼인식(婚姻式)

 

평생도 1~8폭

20세기 추정, 지본채색, 각 110.2×51.5cm, 8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은 바탕지와 지나치게 선명한 채색, 그리고 전에 없던 여러 가지 새로운 구상 등으로 미루어

20세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제2폭에 서당 장면을 넣었고, 제3폭 혼인식은 신부가 시부모께

인사드리는 장면으로 대체했으며, 제4폭 삼일유가와 제5폭 관찰사부임도 구도를 새롭게 하였다.

그런데 이전 평생도에서 여러 폭으로 그려지던 벼슬살이 장면이 한 폭으로 축소되는 대신,

제7폭에는 회갑의 모습이 추가되었다.

이처럼 벼슬살이 장면이 줄어드는 점에서도 이 평생도가 조선시대가 아닌 20세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서당(書堂)                                                                 초도호연((初度弧宴)

 

 

 

 

 

회혼례(回婚禮)                                                                      치사(致仕)

 

 

 

 

 

회갑(回甲)                                                   관찰사부임(觀察使赴任)

 

 

 

 

 

세부도 : <삼일유가> 중 삼현육각 · 광대

 


 

 

 


세부도 : <관찰사부임> 중 삼현육각 · 여기(女妓)

 

◇ 인용서적 : 국립국악원발행 /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조선시대 음악풍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