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창 50년 (1)
정악기악 50년
정악의 맥은 장악원, 이왕직 아악부에 이어 1951년에 개원한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져 왔다.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등 수제천, 여민락 등 궁중의 연향음악 그리고 현악 영산회상, 현악보허사 등
줄풍류 음악이 계속 연주 되고 있으며, 국악사 양성소와 일반 대학에 국악과가 설립되면서 체계적으로
정악의 교육이 이루어 졌다. 판소리나 산조 등 개인의 독주음악이 대부분인 민간음악과는 달리 정악은
여러명이 앙상블을 이루는 합주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적인 일가나 유파를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정악에 있어서도 청성곡이나 생소병주 등 독주곡이나 이중주곡이 있어 이에 대한
명인이 두드러지는데 정악 대금의 김성진과 단소의 봉해룡, 생황의 김태섭 등이 유명하다.
오늘날 시대적인 감성 추이가 느리고 아정한 정악보다는 직설적인 민속음악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수백년을 이어 오며 갈고 닦인 예술적 깊이로 인해 정악은 애호가들에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종묘제례악, 대금정악, 대취타 및 피리정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가 50년
수백년의 역사에서 그러했듯이 지난 50년 동안에도 정가(正歌 : 가곡 · 가사 · 시조)는 어김없이 불렸다.
그러나 음악문화적 감수성의 변화에 따라 정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감동을 느끼기 어려어져 그 향유층을 잃어가고
도태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50년간 국악계이 타분야에 비해 양적으로는 적지만, 꾸준히 펼쳐진 활동들을 여러 기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83년에 창립된 정가악회의 활동이나 서울가악회, 월하문화재단, 한국정가단 등 단체의 활동과
개인 발표회 및 음반 발매 같은 형태의 활동들은 정가의 전승과 보급 및 발전에 기여해 왔다.
정가의 명창으로는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를 거쳐 정가계에 큰 족적을 남길 이병성, 이주환 같은 명인에 이어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41호 가곡과 가사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홍원기, 전효준, 김월하, 정경태, 이양교 등이
각종 활동과 교육을 통해 현재까지 정가의 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현재 오롯이 정가의 부흥을 꾀하고 있는
예인들의 음악정신과 각고의 노력이미래의 '바른소리(정가)' 를 창출해 내리라 기대한다.
경(京) · 서도소리(西道唱)
지역을 중심으로 5가지로 나눈다. 황해도와 평안도 등 관서지방의 민요인 서도소리와 서울 ·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기민요,전라도 지역과 충청도 일부지역의 남도민요, 함경도부터 강원도, 경상도까지를 하나로 아울러 동부민요라 하고 제주민요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경 · 서도 소리는 이 가운데 서돕민요와 경기민요를 합친 것으로 본래의 뜻은 일반 서민들의 소리뿐 아니라 민요를 부르는 전문가의 소리인 잡가와 선소리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남북 분단 이후 서민들의 일노래와 같은 토속민요는 더 이상 전승이 이어지지 못하고 전문가의 소리만이 남쪽에 있던 몇몇 국악인에 의해 전승되어 이 소리들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서도소리는 1957년 이창배가 청구고전성악학원(靑丘古典聲樂學院)을 설립하여 진진들을 학습시키면서 활성화되었고,정득만, 김순태, 유개동, 김태봉 등의 명창이 활약하였다. 이들이 1960년 민요발표회를 가진 이후 벌인 많은 공연활동에 힘입어 1968년 선소리산타령에서 분리 지정되면서 장학선이 예능보유자로 지정 받았고, 장학선의 작고 후 김정연과 오복녀가 1971년 새로 보유자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경기소린느 여류국악인 모임인 한국민요연구회(韓國民謠硏究會)를 중심으로 성장하였는데,1962년 안비취, 이소향, 묵계월, 이은주, 김옥심을 중심으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벌였고, 1971년부터는 국악협회 주최의 전국민요경창대회의 일을 도맡아 해오면서 경기소리의 영역을 넓혔다. 1975년 경기12잡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면서안비취와 묵계월, 이은주가 각각 종목을 나누어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이들과 함께 할동하던 명창 김옥심은 오랜 병석에 있었던 이유로 제외되었다.
민속기악(民俗器樂)
민속기악이란 민간에서 가야금 · 거문고 · 대금 · 피리 · 해금 · 호적 · 북 · 장구등의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으로 주로 무속신앙이나
행진 · 농사일 등에서 연주하는 기능적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산업화에 따라 이 음악이 연주되던 의식은 줄어들고 기능성보다
예술성을 띠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민속기악은 산조 · 시나위 · 봉장취 · 거상음악 · 행악 · 풍물 등을 꼽을 수 있고.
특히 산조는 민속기악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산조(散調)는 장구나 북으로 장단을 곁들이는 기악독주곡으로서 시나위음악에서 출발하였으나 판소리 음악을 받아들이면서
그 음악적 성격이 변하였다. 19세기 말 김창조에 의해 가야금산조가 가장 먼저 창제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그 외에 거문고 · 대금 · 해금 · 피리 · 아쟁 · 단소 산조로 다양화 되었다. 산조는 일반적으로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의
장단으로 구성되고, 연주자의 음악적 개성과 그 전승계보에 따라 유파를 분류한다.
1959년 서울대학교 국악과의 설치를 계기로 구전심수로 전승되던 민속기악은 악보를 통하여 교육되는 등 체계화되기 시작하였고,
1964년부터 시행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제도에 의해 국가적 차원에서 민속기악을 포함한 전통음악 보존 · 계승의 길이 열렸으며,
1970년대 풍물놀이로부터 파생된 사물놀이나 새로 창작된 가야금 독주곡 등이 세계적으로 소개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인용서적 / 『국립국악원 개원 50주년 기념 사진전시회 기념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