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조선시대 연회도 3

茶泉 2019. 2. 26. 15:14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宣廟朝諸宰慶壽宴圖帖) 내지(內紙)

1655년경, 지본채색, 28×40cm, 홍익대학교박물관

 

1605년(선조38) 4월 삼청동(三淸洞) 공해(公廨)에서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13인의 재신(宰臣)들이 열었던 경수연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경수연은 13인의 재신들이 봉로계(奉老契)를 맺은 결과로 시행된 것이며, 효행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당시 경수연의 모범적 사례에 속한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경수연도는 1605년의 경수연을 기념하여 만든 원화(原畵)가 병자호란 중에 산실(散失)되어 1655년경에 다시 그린

것으로, 의령남씨(宜寧南氏) 가전화첩(家傳畵帖)에 수록되어 있다. 좌목에서 의령남씨 남이신(南以信1562~1608)이 참석하였음을 확인 할

수 있다. 5장면의 그림은 각기 분리된 공간에서 진행된 연회 장면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제 1 · 2면은 연회가 열린 청사(廳舍)의 입구와 음식

을 준비하는 조찬소(造饌所) 주변의 장면을 그렸으며, 3~5면은 경수연이 진행되는 장면들을 표현하였다. 특히 5면은 이 경수연의 주인공인

부인들의 연회 장면을 그린 것이다. 도첩(圖帖)은 그림에 이어 경수연절목(慶壽宴節目) · 대부인좌차(大夫人座次) · 차부인좌차(次夫人座次)

· 계원(契員) · 집사자제(執事子弟) · 예조계사(禮曹啓辭) ·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백세채부인경수연도서(百歲蔡夫人慶壽宴圖序) · 허목

(許穆)의 경수연도서(慶壽宴圖序)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좌) 선묘조제대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2. 32.5× 23cm

우) 선묘조제대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1. 33×23cm

 

 

 

 

선묘조제대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3.  32.7×24.5

 

『선조실록』권186, 선조 38년(1605) 4월 9일(계축)조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풍악을 금했으나,

경수연에는 이를 허락하여 사악(賜樂)하였다.《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의 제3면 부터는 경수연을 그린 것으로 춤과 음악연주 장면이 있다.

남자 참가자의 복식이 홍익대, 고려대 문화재연구소본 등의 <중묘조서연관사연도>에서와 같이 두 가지로 그려 있다. 춤과 음악 연주 모습은

각 장면에서 조금씩 다르다. 제3면에는 화관을 쓰고 향발(響鈸)과 유사한 의물을 갖춘 무동 두 명이 마주보고 춤추고 있고, 그 뒤로 박(拍)을

잡고 홍포를 입은 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왼쪽 끝에 북이 있고, 오른족 끝에 집박이 있다.

 

마지막 면에서는 대청에서 자제(子弟)가 부인들을 향해 절을 올리고 대청 아래에서 다른 자제 두 명이 서로 마주보고 춤추고 있다.

왼쪽 끝에 여기 두 명이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악공은 제3, 4면에서와 달리 칸막이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1과 해금1명이 보인다.

이것은 궁중 진연 혹은 진찬의 내연(內宴)에서 악공이 칸막이 뒤에서 연주하는 것에 비추어 사가(私家) 부인들의 잔치에서도 악공이 칸막이

뒤에서 연주를 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악공 옆에 악공과 같은 복식의 남자들이 상을 받고 있어서 이 부분은

전후 폭의 장면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부도> 악대 · 무동 · 여기(女妓)

 




 

선묘조제대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4.  32.7×24cm

 

 

 

 

<세부도> 음악과 춤

 

 

 

 

선묘조제대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5.  32.7×23.7cm

 

 

 

 

 

<세부도>

여기(女妓)의 가야금 · 자제(子弟)의 춤

 

 

 

 

 

<세부도> 해금 · 북

 

 

 

 

경수연(慶壽宴) 절목(節目)

 

 

 

 

경수연(慶壽宴) 좌목(座目) · 계사(啓辭)

 

 

 

 

경수연도서(慶壽宴圖序) 56×40cm, 허목(許穆)

 

 

 


백세채대부인경수연도서(百歲蔡夫人慶壽宴圖序) 56×40cm, 이경석(李景奭)

 

 

 

 

 

 

선묘조제재경수연도권(善廟朝諸宰慶壽宴圖卷)  18세기 모사, 지본채색 , 34×125.8cm, 고려대학교박물관

 

 

 

 

 

 

1605년(선조38) 4월 삼청동(三淸洞) 공해(公廨)에서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13인의 재신들이 열었던 경수연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선묘조제재경수연도>는 《의령남씨전가경완》에 <중묘조서연관사연도>, <명묘조서총대시예도>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채색의 색감이

부분적으로 짙게 채색된 점, 인물의 이목구비가 생략되었고 의습선의 묘사가 단정하게 처리된 점 등에서 원화(原畵)보다 활력이 빠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제1 · 2면은 연회가 열린 청사의 입구와 음식을 준비하는 조찬소 주변의 장면을 그렸으며, 제3면은 이날 행사의 주관자인 계원들의

연회 장면, 4면은 집사자제들의 연회장면, 5면은 경수연의 주인공인 부인들의 연회 장면을 각기 독립된 공간 안에 그린 것이다. 특히 경수연

장면에는 차일로 불필요한 공간들을 가리거나 분할하면서 연회 장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선묘가 굴곡의 변화가 없는 철선묘(鐵線描)

위주로 사용되어 원화를 조심스럽고 충실하게 모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선묘조제재경수연도>는 문화재연구소본과 춤과 음악 연주 장면에 있어서 홍익대 및 고려대학교박물관본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홍익대 및 고려대박물관본의 셋째 면에서 집박 악사와 그 밖의 악공이 각각 홍포와 황포를 입은 것으로 묘사된 반면 이 문화재연구소 소장본의

셋째 면에서는 현행과 같이 집박악사는 녹포를 입고, 악공은 홍포를 입은 것으로 그려져 있다. 피리, 대금, 해금, 당비파 등의 약기가 보인다.

홍익대박물관 소장본과 고려대박물관 소장본에서는 왼쪽 끝의 악기가 방향으로 그려진 반면, 여기서는 황색과 백색의 경(磬)을 매어단

편경으로 그려졌다. 여기가 타는 두 현악기에는 부들이 크게 표현되어 있는데, 가야금으로 보인다. 악기 중에는 대금과 북이 보이는데.

 북은 현행 좌고에서와 같이 태극무늬가 있고 북면이 위를 향한다. 다섯째 면에서는 칸막이 뒤에 홍대본과 고대본에서의 북과 해금이

북과 장구, 해금으로 바뀌었다.

 

 

 

 

<세부도> 악대 · 무동 · 여기(女妓)

 

 

 

 

 

 

<세부도> 음악과 춤

 

 

 

 

<세부도> 여기(女妓)의 가야금 · 자제의 춤

 

 

 

 

 

<세부도> 해금 · 북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善廟朝諸宰慶壽宴圖帖)  서(序)

19세기 모사(模寫), 지본 채색, 48.2×33.3cm, 문화재연구소

 

 

 

 

 

좌) 선묘조제재경수연도(善廟朝諸宰慶壽宴圖) 2

우) 선묘조제재경수연도(善廟朝諸宰慶壽宴圖) 1

 

 

 

 

 

선묘조제재경수연도(善廟朝諸宰慶壽宴圖) 3

 

 

 

 

 

<세부도> 악대 · 무동 · 여기(女妓)

 

 

 

 

 

선묘조제재경수연도(善廟朝諸宰慶壽宴圖) 4

 

 

 

 

 

<세부도> 악대 · 무동 · 여기(女妓)

 

 

 

 

 

선묘조제재경수연도(善廟朝諸宰慶壽宴圖) 5

 

 

 

 

 

 

 

<세부도> 여기(女妓)의 가야금 · 자제(子弟)의 춤

 

 

 

 

 

<세부도> 해금 · 장구 · 북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善廟朝諸宰慶壽宴圖帖) 경수연절목(慶壽宴節目)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善廟朝諸宰慶壽宴圖帖) 경수연절목(慶壽宴節目)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善廟朝諸宰慶壽宴圖帖)  백세채대부인경수연도서(百歲蔡夫人慶壽宴圖序) 이경석(李景奭)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善廟朝諸宰慶壽宴圖帖) 경수연도서(慶壽宴圖序)  허목(許穆)



경수연도(慶壽宴圖) 1691년, 지본채색, 55×163cm 액장(額裝), 좌차(座次) · 서(序) · 각 53×38cm 12폭 병풍, 개인소장

 

1691(숙종17)년 숙종은 신하들 가운데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자들에게 쌀과 비단을 하사케 하였는데, 이를 기념하는 연회가 별도로 열렸다.

이 연회는 일곱 집안의 대부인(大夫人) 및 자손부(子孫婦) · 재신(宰臣) · 사대부(士大夫) 들을 초청하여 시행하였는데, 일곱 분의 노부인을 모신

연회라 하여 소위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 로 일컬어진다. 경수연도의 구성은 먼저 연회장의 배치도, 연회도, 그리고 권해(權瑎)

가 지은 찬문(撰文)과 발문(跋文) 등으로 되어 있다. 또한 경수연은 2곳의 내실과 차일을 친 공간 아래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첫 건물에는 초청된 7가족 부인들의 연회장면, 다음은 대신육관(大臣六官)의 연회장면, 마지막으로 일반 사대부의 연회 장면을 각

각 그렸다. 궁중행사도에서 볼 수 있는 좌우대칭의 엄정한 균형미가 잘 나타나 있다. 첫 번째 장면은 대부인의 자제들이 춤을 추며 연회가 진행

되고 있는 상황인데, 대부인 밎 사대부부인들은 그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당시 기록화에 여성을 그리는 것이 금기시 되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

되기도 한다. 현재 그림은 액장(額裝) 상태이고, 찬문과 발문은 12폭 병풍으로 꾸며져 있다.

 

<경수연도>의 첫째 건물에서 7가족 부인들을 위해 연회를 베푼 장면에는 여기(女妓) 두 명씩 좌우에 앉아 연주하고, 자제 두 명이 춤추고 있다.

<경수연도>를 <선묘조제재경수연도>와 비교하면, <선묘조제재경수연도>에서는 좌정한 부인들이 나타나는데 <경수연도>에는 없고, 자제의

2인춤은 두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건물과 밖에 16인으로 구성된 악대가 있다. 집박악사는 홍포를, 다른 악공은 녹포를 입고,

뒷줄 왼쪽 끝의 아공도 홍포를 입었다. 집박악사 옆에 편경이 있다. 집박악사는 홍포를, 다른 악공은 녹포를 입고, 뒷줄 왼쪽 끝의 악공도 홍포

를 입었다. 집박악사 옆에 편경이 있다. 이 악기의 틀에는 『악학궤범』이나 현행의 편경과 달리 깃붙이 장식과 꿩꼬리 유소가 없다. 북, 장구,

해금, 당비파, 관악기,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 등을 연주하는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둘째 건물에서는 자제의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는데, 당(堂) 밖에서 악공 8명이 앉아서 해금, 대금, 장구, 비파류의 현악기,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 등을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세부도> (부인들의 연회)

 

 

 

 

 

<세부도> 악대

 

 

 

 

 

<세부도>

 

 

 

 

 

<세부도>

 

 

 


경수연도(慶壽宴圖) 서(序)                         경수연도(慶壽宴圖) 좌차(座次)



 

경수연도(慶壽宴圖)  서(서)

 

 


 

경수연도(慶壽宴圖)  서(序)

 

 


 

경수연도(慶壽宴圖)  서(序)

 

 


 

경수연도(慶壽宴圖)  서(序)

 

 


 

경수연도(慶壽宴圖)  서(序)

 

 

 

 

 

사장원송도동료계회도(四壯元松都同僚契會圖)

1612년, 지본담채, 110×50cm, 국립중앙박물관

 

1612(광해군4)년 송도부(松都府)에 근무하는 4인의 관원이 모두 장원급제자(壯元及第者)였다는 사실을 기념하여 계회를 열고서 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참석자들은 송도부 유수(留守) 홍이상(洪履祥1549~1615)을 비롯한 이시정(李詩禎1568~?), 차운로(車雲輅1559~?) 등 4명

이다. 소속이 같은 관원들의 계회라는 점에서 이 그림은 동관계회도(同官契會圖)에 속하며,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제작된 드문 사례이다.

계회의 장소는 송도의 태평관(太平館)인데, 태평관의 중심건물을 화면의 중앙에 놓았으며, 화면 아래에 이중문(二重門)을 배치하였고, 전체

적으로 좌우대칭의 정면관의 시점이 적용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좌장(座長)인 홍이상과 나머지 3인이 북벽과 서벽쪽으로 자리 서열에 따라

앉아 있다. 계회 장소 주위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인물들이 실감있게 그려져 있고, 직함이 적힌 별도의 종이를 붙여 이들의

신분을 쉽게 판별해 볼 수 있게 하였다. 본처주위에는 연운(煙雲)을 그려 구체적인 묘사를 생략함으로써 본청의 건물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전체적인 배치방식이나 구성은 16세기 후반기에 전형을 이룬 관청계회도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사장원송도동료계회도(四壯元松都同僚契會圖)  세부도

 

사장원송도계회 장소인 태평관은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던 숙소의 하나이다. 용재총화(慵齋叢話) 권2에 의하면 악인(樂人)과

기녀(妓女)들이 태평관 근처의 동리에 거주하였다. <사장원송도동료계회도>에는 계단 뒤에 악공 5명이 앉아서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장구, 대금, 피리, 혹은 퉁소류의 종적, 교방고가 보인다. 교방고 채가 크게 두드러져 보인다.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1669년, 첩(帖), 견본채색, 59.2×41.8cm

 

과거(科擧)의 예비시험인 사마시(司馬試)에 함께 합격한 동기생들이 합격한 해(1609)로부터 60주년이 되는 1669(현종10)년 계회를 갖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도첩(圖帖)이다. 60년 만에 맞는 방회(榜會)를 회방(回榜)이라 하는데, 회방연은 보통 80세 정도의 고령에 이르러야만

가능하기에 방회 중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참석자들은 이조참판 이민구(李敏求1589~1670),  돈지돈녕부사 윤정지(尹挺之1579

~?), 동지중추부사 홍헌(洪憲1585~1672) 등 3명이다. 도첩의 구성은 방회도 · 좌목 · 홍헌의 글, 3인의 방회 구점(口占) · 허목(許穆1595~

1682)의 서문(1620), 하객으로 참석한 이경석(李景奭) · 박장원(朴長遠) · 심유(沈攸) · 이정(李程) · 권해(權해)의 차운시, 권협(權俠)에 대한

제망제문(祭亡祭文) 등의 순으로 되어 있다. 방회의 장소는 이민구의 집이며, 화면 좌측에 위치한 차일(遮日) 안에서 연회가 베출어지고 있다.

연회의 장면은 화면의 좌측에만 한정되었고, 그 주위에 부속 경물들이 함께 그려진 것은 이전의 방회도 형식과는 다른 점이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이 곳이 관청이나 공적인 장소가 아닌 사가(私家)라는 사실을 그림으로 설명해 주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세부도> 음악과 춤

 

중앙에 무동 2명이 춤추고 있는 가운데, 특이하게 여기(女妓)와 악공이 마주보고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연주 악기로는 거문고 · 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 당비파, 관악기 등이 보인다. 여기에서 연주하는 현악기에 부들이 강조되어 있고,

악공이 연주하는 현악기에는 부들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좌목(座目)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발문(跋文)  홍헌(洪憲)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시문(詩文)  이민구 · 홍헌 · 윤정지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서(序)  허목(許穆)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서(序)  허목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시문(詩文)  박장원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시문(詩文)  이정 · 심유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시문(詩文)  권해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제망제문(祭亡祭文)

 

 

 

 

만력기유사마방회도(萬曆己酉司馬榜會道)  제망제문(祭亡祭文)

 

 

 

 

 

 

 

 

 

 

평양감사환영도(平壤監司歡迎圖) 1, 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圖)  (좌측면)

1745년 지본담채, 71.2×196.9cm, 국립중앙박물관

 

새로 부임한 평양감사를 평양의 백성들이 환영하는 연회 장면이다.

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圖) · 연광정연회도(練光亭宴會圖) ·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의 세 폭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림의 누각 현판에

 대동문(大同門), 읍호루(挹灏樓), 연광정(練光亭)이라고 쓰여진 점으로 볼 때, 평양 대동강변에서의 연회장면임을 알 수 있다. 섬세한 건물의

계화적인 표현과 주변 산수경관의 비교적 단정한 채묵(彩墨)의 구사, 그리고 치밀하게 구성한 가옥과 인물들의 배치는 대단히 기량 있는 화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짙은 채색과 음영법을 사용한 부분에서 18세기의 화풍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앞마당에 춤과 음악 공연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끝에 녹포를 입은 집박악사가 위치하고, 그 옆으로 해금1, 대금1, 장구1, 좌고 1명이 보이는데

악기가 보이지 않는 나머지 2명은 현행 춤반주 편성인 삼현육각에 비추어 피리 2명으로 짐작된다. 여기(女妓)가 열을 지어 앉아 있고 동기(童妓)

도 끼어있다. 춤은 처용무(處容舞) · 무고(舞鼓) · 검무(劍舞) · 포구락(抛毬樂) · 헌선도(獻仙挑) 등이다. 그림자료로는 드물게 여기(女妓)가

처용무를 추는 장면을 담았다.

 

 

 

 

 

 

 

 

평양감사환영도(平壤監司歡迎圖) 1, 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圖)  (우측면)

1745년, 지본담채, 71.2×196.9cm, 국립중앙박물관

 

 

 

 

 

평양감사환영도(平壤監司歡迎圖) 2,  연광정연회도(練光亭宴會圖)  (좌측면)

평양감사가 연광정 안에서 가무를 관람하고 있는데. 사자춤이 있고, 2명의 여기가 마주보고 춤추고 있다. 계단 아래에는 학무(鶴舞)를 출 학탈을

 

입은 두 사람과 연통(蓮筒) 두 개, 선유락(船遊樂)에 쓰는 채선(彩船)이 놓여 있다. 반주 악대는 녹포를 입고 박을 든 집박악사 1명과 홍포를 입은

악공 4명이 보이는데, 일부 기둥에 가려져 있지만, 그 편성은 <부벽루연회도>에서와 같이 삼현육각일 것으로 추측된다. 좌고(座鼓)를 치는 사람은 세악수(細樂手) 복장을 하고 있다.

 

 


 

 

평양감사환영도(平壤監司歡迎圖) 2,  연광정연회도(練光亭宴會圖)   (우측면)

 

 

 

 

평양감사환영도(平壤監司歡迎圖) 3,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   (좌측면)

누선(樓船)에 평양감사로 보이는 인물이 앉아 있고, 배 앞쪽에 네 명의 악사가 각각 대금, 생황, 해금, 피리,

혹은 퉁소류의 종적 등의 악기를 연주한다.

 

 

 

 

평양감사환영도(平壤監司歡迎圖) 3,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   (우측면)

 

 

 

 

 

<세부도> 삼현육각(三絃六角)

박(搏) · 무고(舞鼓) · 포구락(抛毬樂) · 처용무(處容舞) · 헌선도(獻仙挑) · 검무

 

 

 

 

 

 

 

<세부도>

여기(女妓) 2인 춤 · 삼현육각 · 사자춤 · 학탈 · 연통(蓮筒) · 채선

 

 

 

 

 

<세부도>

해금 · 생황 · 대금 · 종적(縱笛)

 

 

 

 

 

 

신관도임연회도(新官到任宴會圖)

18세기 후반 지본채색, 140.2×103.3cm, 고려대학교박물관

 

지방 관아에서 감사(監司) 혹은 수령(守令)의 주관 하에 베풀어진 연회장면이다. 참석자들의 규모 · 위치 · 배열 등을 보면 궁중행사도의

장면과 유사한데, 이 연회가 공식적인 성격의 행사였음을 알려준다. 좌우대칭형 건물의 중앙에 착석한 감사(監司)의 모습과 시선은 마치

초상화의장면처럼 그려져 있어, 예법(禮法)에 따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초대손님과 구경꾼, 그리고 기생과 동자(童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검무(劍舞)의 공연 장면이나 관아 구석의 조찬소(造饌所)의 모습 등은 풍속화적인 요소가 다분하여 그림

재미를 더한다. 건물과 연회 장면에는 정면관(正面觀)과 부감(俯瞰)의 시점(視点)이 적용되었고, 건물을 그린 방식은 전통적인 계화법

(界畵法)을 따르고 있다. 민화(民畵)에서 볼 수 있는 어눌함이 느껴지며, 인물의 선묘(線描)에 나타난 이중윤곽선(二重輪廓線)으로 보아

19세기 작으로 추정된다. 19세기에 그려진 지방관청의 연회도로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세부도>

검무(劍舞) · 삼현육각(三絃六角)

 

인용서적 : 국립국악원 편찬 『조선시대 연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