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한 * 중 * 일 문화코드
대나무
동과 서의 문화적 차이를 읽고 그것을 다시 세분화하여 한 * 중 * 일 세 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대나무는 귀중한 문화 텍스트로 떠오르게 된다. 동북 아시아인들이 오랫동안 이상으로 삼아 왔으나
역사적으로는 실패를 거듭했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
- 이질성을 통합해 가는「따로 그러나 함께」라는 역설적인 삶의 방식이 있다. -
요즘 유행되고 있는 말로 하자면 글로벌과 로컬을 한데 합친 글로컬리즘을 뜻밖에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대밭의 공간에서 찾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책임편찬 / 이 어 령>
- 대나무 문화권의 텍스트 읽기 -
묵죽(墨竹) |김진우(金振宇), 일제강점기 간송미술관 소장.
순죽(荀竹)과 신죽(新竹) · 통죽(筒竹) 그리고 고죽(枯竹)까지 대나무의 일생을 모두 한 화면에 담은 그림은 어린 손주부터 할아버지에 이르는 가족이 삼세 동당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고기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한 소동파(蘇東坡)의 대나무는철과 비교되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고기'가 몸을 보양하는 것이라면 마음을 살찌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나무이다. 고기가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실용적 가치를 대신하고 있는 데 비해서 대나무는 예술적 감동이나 종교적 이념을 추구하는 상징적 가치를 창조한다. 특별한 종교적 코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대나무의 마디는 인체의 뼈마디와 흡사하게 생겨서 쉽게 사람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시인 이상은 대나무를 엑스레이 사진에 찍힌 인체의 모양에 견준 시를 쓴 적이 있다.
더구나 대나무의 마디는 보통 60여 개가 된다고 해서 환갑을 일생의 단위로 삼고 있는 인간과 동일시된다.'자신이 곧바로 대나무가 된다'는 인간의 죽화(竹化) 현상 또는 대나무와 인간이 일체가 되는 심죽(心竹)의 경지는 비단 선(禪)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또한 죽부인의 경우, 가공품이기는 하나 아버지가 사용한 것은 아들이 쓸 수 없을때 이미 대는 대나무가 아니고 피가 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키소카시타에와카칸 竹圖 |다와라야 소타츠,
17세기 대나무의 위와 아래를 끊어 버린 이 그림은 소타츠가 그린 밑그림 위에 혼아미 코에츠의 글을 써 넣은 합작품으로,18세기의 화가 오가타 고린이 그린 죽매도에 이런 부분화법을 원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교 문화권에서의 대지팡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어버지'를 상징하는 종교 코드이다.《예기(禮記)》에는 「어버지의 상(喪)에는 둥근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의 상에는 네모진 오동나무 막대기를 짚는다.」고 적혀 있다. 기록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우리는 부모상을 당하면 대지팡이를 짚고 곡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부성원리(父性原理)요, 네모난 것은 땅을 가리키는 모성원리(母性原理)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상징체계 속에서 살아왔다. 효율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단순한 보행 조보 도구를 넘어서 그것이 아버지가 되고 군자가 되고 때로는 부처님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신선이 되는 대나무 숲의 몽상, 댓잎이 스치는 청량한 바람 소리와 빈 뜰에 흔들리는대나무 그림자의 은은한 움직임 속에서 아시아 문화의 횡단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지팡이가 아버지의 상징이 디는 유교 문화 코드는 무속신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우리나라의 제석풀이의 무가(巫歌)에 나오는 당금아기는 승려와 사통(私通)해서 아들 삼 형제를 낳는다.아이들이 자라 아버지를 찾자 대밭에서 오줌을 누어 너희를 낳게 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을 곧이 듣고 삼 형제가대밭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부르자 대나무는 "나는 너희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너희의 진짜 아버지가 죽은 뒤 우리를 베어다상주 막대로 삼으면 3년 동안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대지팡이가 아버지와 등가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으나 무속의 경우에는 다산과 풍요의 지모신(地母神)과도 결합된다.
당금아기의 이야기는 현실과 신화의 두 세계가 서로 뒤얽혀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대밭에서 오줌을 누어 아이들을 잉태하고 낳았다는 부분은 신화 축에 속한 것으로 대나무의 번식성과 생명력을 반영한 것이다.그리고 대의 번식성은 죽순(竹筍)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가 있다.
죽순의 '筍(순)'자는 대나무 죽(竹)자에 열흘을 뜻하는 순(旬)과 음이 통한다.이래저래 대나무는 자손들이 왕성하게 번창하는 것을 삶의 가치로 삼아온 아시아적 대 가족주의와 상통한다.죽순을 '용손(龍孫)'이라고도 부르고 노죽을 '죽조(竹祖)'라고 부른다. 이러한 죽순과 대의 문화 코드를 가지고 보면 왜 하필 당금아기가 대밭에서 오줌을 누어 세 형제를 얻었다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설죽(雪竹) |유덕장(柳德章), 조선, 간송미술관 소장.
푸른 댓잎과 하얀 눈발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지팡이 하나를 통해서 우리는 유교적인 깐깐한 부성원리와 무속적인 풍요와 생식(生殖)의 모성원리를 동시에 바라볼 수가 있다.
제석풀이의 무가(巫歌)에 나타난 대와 오줌의 관계를 중국 맹종죽(孟宗竹)의 기원설화로 옮기면 눈물과 대나무의 유교 텍스트가 출현한다.병환 중의 어머니가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여 맹종은 한겨울에 대나무밭으로 간다. 하지만 눈 덮인 대밭 어디에도 죽순은 보이지 않는다.맹종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슬피 울자 그 눈물방울이 떨어진 눈 속에서 죽순이 돋아났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설화를 통해서 '오줌과 눈물', '생식'과 '봉양(효)' 그리고 '무속'대 '유교'를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의 분석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그리고 그 같은 문화 텍스트의 모형은 불교의 상징 속에서도 확대 적용된다.
일본에서는 대나무를 상주의 막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대신 일본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대나무 세우기 전설의 하나인 '신란'의 대지팡이가 그렇다. 일본인들이 '사카사마타케'라고 부르는신란의 이 대나무 세우기 설화는 불교의 설법을 대나무의 생명력과 그 번식력으로 상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뱅종의 죽숙 설화, 당금아기의 무가 그리고 신란의 지팡이 세우기 전설을 통해서 우리는 대나무의 문화 텍스트를 읽는 분석 모델을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 세 이야기들은 종교적 층위에서 보면 유교 · 무속 · 불교, 물질적 상상력의 층위에서 보면눈물 · 오줌 · 물(설법), 인물의 층위로는 맹종 · 당금아기 · 신란 그리고 나라별로는 중국 · 한국 · 일본의 병렬 구조로 비교할 수 있다.
묵죽도(墨竹圖) | 신위(申緯), 조선,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전형적인 죽석도(竹石圖)로 커다란 바위를 중심으로 자라는 몇 그루의 대나무를 묘사한 것이다.선비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듯 부드럽고 온화함이 드러나고 있다.
서양에서 용은 불의 상징이지만 아시아의 문화권에서는 물(비와 구름)과 연관되어 있다. 동남아 열대우림의 대나무들은 근경(根莖)이 없이 족생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의 대나무들은 밑뿌리가 땅속으로 꾸불꾸불 깊이 뻗어 있어 잠용(潛龍)과쉽게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고 방풍림 등으로 강가에 심은 죽림들이 많아 대나무의 장소성에서도 물과 근접해 있다.
설화의 세계만이 아니라 대나무는 시화(詩畵)에서도 물의 이미지와 상징성이 짙게 깔려 있다. 대나무 잎에 이슬이 맻혀 있는 노죽(露竹), 비가 내리는 날의 우죽(遇竹), 과 안개가 낀 연죽(煙竹) 그리고 때로는 바람에 나부껴 급류처럼 물결치고 있는 풍죽(風竹)들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댓잎들이 스치는 대숲의 바람 소리는 계곡으로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푯현된다.시문 속에 자주 등장하는 '빈 뜰에 드리운 댓잎의 그림자'는 물의 물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차가움'과 관련된다.진각국사(眞覺國師)가 든 열 가지 대나무의 특성 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청량성(淸凉性)이다. 남방 열대의 식물이 이상스럽게도 한자문화권에 오면 북방의 겨울 이미지로 바뀐다.한자문화권의 대나무는 '설문해자'의 풀이대로 '겨울에 나는 풀(冬生草)'로 정의된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소나무나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의 하나로 등장하는 대나무는 오래 전부터 추운 겨울에 의해서 그 특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물의 차가움이 극에 이른 것이 설죽(雪竹)이다. 가령 유덕장(柳德章)의 통죽을 보면 오랜 세월을 차가운 눈발과 겨울을 견뎌온 설죽의 흔적이 오버랩 된다. 그 통죽 그림에 찍힌 '올바른 얼음집[正氷堂]'이라는 인장 글씨가 더욱 대의 차가운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반드시 겨울이 아니라도 대나무의 이미지가 얼음처럼 차가운 달빛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설월죽(雪月竹)'의 이미지다.대는 또 때로는 얼음과 같이 빙결한 차가운 바위와 어울리기도 한다. 이러한 액체의 결정체(結晶體)의 이미지는 종종 댓잎에 스치는바람 소리를 얼음처럼 차가운 백옥이 부딪치는 소리로 비유하는 시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대나무와 물의 이미지 관계는 결코 평탄한것이 아니다. 훨씬 복합적이고 양의성을 지닌 긴장관계를 나타낸다. 대나무는 물만이 아니라 원래 불의 물질적 이미지와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대나무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로 열대식물이다.
대를 뜻하는 영어의 뱀부(bamboo)가 말레가 말레이 반도의 토속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원은 열대림의 대밭이 불에 탈 때 나는 큰 폭음 소리를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적도의 원주민들은 마른 대나무로 불을 일으켰고 번제(燔祭)을 지낼 때에도 신성한 제례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대의 이미지는 물도다 불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비교적 남방 문화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
대밭에서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가구야히메>의 설화 역시 당금아기의 이야기와는 달리 물이 아니라 불빛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와서도 대나무는 폭죽(爆竹)의 불꽃놀이와 연결되어 있어서 불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여름과 겨울, 불과 물의 대나무의 복합적 이미지와 그 상반된 상징성은 남방적인 것과 북방적인 문화가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융합하기도 하는 복합적 문화 코드를 생성한다. 그것이 물의 변용적 이미지인 눈물, 피, 술과 같은 액체로 확대 · 재생산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당연히 액체화한 불의 요소라는 특이한 양의성을 내포한 상징 코드를 만들어 간다.
반죽(班竹)의 근원설화도 마찬가지다.
순(舜) 임금이 죽자 아황(娥黃)과 여영(女英)이 소상강 가에서 슬피 울다 강가의 대나무를 적셨다는 눈물 역시 뜨거운 불꽃을 지닌
액체이다. 효성이든 정절이든 그 농도가 짙어지고 그 불꽃이 더욱 타오르면 그 눈물은 피눈물로 화한다. 차가운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과 달리 뜨거운 물이 짙어지면 피로 바뀐다. 이렇게 정절의 불이 액체화하여 만들어낸 대나무가 다름 아닌 혈죽(血竹)이다.
물과 불이 혼합된 대나무 코드에서 불의 요소가 강화되면 이념색이 짙은 의죽(義竹)과 혈죽(血竹)이 태어나게 된다.
다리 위에서 살해된 정몽주의 일편단심(붉은 마음)과 그 피는 의죽이요, 혈죽으로 선죽교(善竹橋)의 이름 위에 남아 있다.
을사조약 때 순국한 민영환 의사의 죽어간 자리에서 돋아난 혈죽(血竹)도 있다.
호국이나 충의를 나타내는 대나무는 눈물이 피로 변용된 이념적 텍스트로서 한 · 중 · 일 삼국의 대나무 코드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꼽힌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대로 대나무의 물이 불로 변해도
벽사나 길상의 폭죽문화의 길상코드로 사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유황좌소도(幽篁坐嘯圖) | 우지정(禹之鼎), 청(淸), 산동성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청대 시단(詩壇) 어양산인(漁洋山人)의 우두머리인 왕사정(王士)을 그린 것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 숲에서 시인이 가죽을 깔아 놓은 반석에 앉아 아직 황금을 치지는 않고,
무슨 생각에 잠긴 듯 학자의 분위기를 단단히 내고 있다.
대나무가 호국 이념의 문화 코드로 사용된 것은 신라 때부터의 일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파식적(萬波息笛)과 죽엽군(竹葉軍) 설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설화가 다 같이
호국이념을 나타내고 있는 대나무의 텍스트이지만 만파식적의 대나무는 물의 상징 계열에 속해 있고, 미추왕의 죽엽군의 그것은
불 계열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두 설화에서 대나무의 종교적인 상징 코드는 유˙불˙선 삼교가 조금씩 융합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음양 사상이나 조상신과 같은 기층문화가 그 저변에 짙게 깔려 있다.
묵죽도6곡병풍(우측3폭) | 송상래(宋祥來), 조선, 고려대학교박물관소장.
묵죽도6곡병풍(좌측3폭)
성질이 곧고 지조가 굳은 대나무는 한 번 뿌리를 박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만파직적이 소프트 파워를 나타낸 것이라면 유례왕 때의 죽엽군(竹葉軍)의 이야기는 무력을 사용하는 하드 파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서국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원병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의 귀에는 대나무 잎들이 끼어 있었고
그들이 사라진 다음 미추왕의 능에는 대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추왕의 능에는 '竹' 자를 부쳐
죽현능(竹峴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불의 이미지가 직접 나타나 있지 않지만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처럼, 미추왕의 호국충절의 정신은 앞에서 본 그 의죽과 혈죽처럼 불의 이미지와 통해 있는 것이다.
세한삼우의 소나무와 매화에게는 없는 대나무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와 관련된 하드 파워라고 할 수 있다.
대나무가 지니고 있는 불의 문화적 코드다.
대나무의 직선적인 성격 그리고 외곬으로 달려가는 강직한 성품을 탈(脫) 코드화한 것이 다름 아닌 죽취일(竹醉日)이다.
대나무가 일 년에 딱 한 번 술에 취하여 정신을 잃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음력 5월 13일이 바로 그날이다.
아무리 포절군(包節君)이라고 일켣는 대나무의 절개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어디로 옮겨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취하는 날이
있다는 죽취일을 통해서 우리는 삼백예순 날 내내 맑은 정신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일탈의 사상과 그 미학을 배우게 된다.
고려 때의 시인 이인로(李仁老)는 죽취일의 대나무를 이렇게 찬미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제 홀로 술에 흠뻑 취해 있는 대나무여 / 멍하니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구나 /
강과 산, 자리는 비록 달라졌어도 / 어디든 경치는 달라질리 없으니 다시 술에서 깨어나지 말거라./
창을 들어 술 취해 지조나 행실을 잃었다고 시비하는 저 선비라는 자들을 쫒아 버리겠다./
이 대나무는 오히려 한 곳에만 매어 있는 것 부끄럽게 여기니 /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 하늘도 막지 못하리라.
<죽취일 이죽>
대나무들을 떠나 다른 공간으로 옮겨 심은 일탈의 대들
그것이 유교에서 도교적인 공간으로 옮아가는 죽림칠현의 그 대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대로 대나무의 문화 코드를 만들어내는 물질적 상상의 근원은 물이며 그러한 상징체계에서 대나무는 용과 동일시 된다.
그래서 죽취일을 용생일(龍生日)이라고도 한다. 물처럼 흐르는 것에는 대나무와 같은 마디(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