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문화 소고 (1)
내가 맨 처음 차와 매화를 접한 건 어릴 적 사하촌에 살 때였다.
스님네들이 우화루에서 무술 수련을 하고 있었기에 구경 삼아 늘상 큰 절을 들락거렸던 것.
꼬마 녀석이 기특하고 귀여우셨던지 재미난 얘기도 들려 주시곤 했는데,
그 와중에 가끔씩 당신들이 마시던 별 맛도 없고 쓰디 쓴 차를 한 잔씩 얻어 마셨던 기억이다.
봄이면 동네 여인네들을 동원하여 약사암 너덜겅 오름길의 차를 따서 덖고,
시루에 김을 올려 찧고 말리는 것도 봐 왔으니 제법 이른 시기에 차 맛과 차 문화를 접(?)한 셈.
내 어머니도 가정 상비약 차원에서 차를 따와 떡차를 만들어 처마 밑에 걸어 두고,
여차하면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차를 굽고 우려내어 마시게 했었으니까.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간 살아 오면서 소위 다인(茶人)을 자처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척추를 작대기 처럼 세우고 한 잔의 차에 삼라만상이 담겼노라 눈알에 힘을 주는 자에서 부터,
다경(茶經) 몇 줄 읽고 나서 당 나라 육우를 다신(茶神)으로 추앙한다며 입에 거품을 무는 자.
중원과 섬나라를 겨우 몇 번 들락거리고서 자신의 다력(茶歷)이 도(道)의 지경이라 떠드는 자.
자신의 평생은 물론, 몇 대를 마시고도 남을 양의 이런 저런 차의 산 더미 속에 허우적 대는 자.
가격 높음을 애써 강조하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다기와 다구등을 늘어 놓고 팽주를 자처하는 자.
짐짓, 화려한 언변과 몸짓을 동원 격조 높은 다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눈 너머 실제론, 상대의 주머니 사정을 가늠 하느라 몹시 바쁘고 피곤한 시선에 이르기 까지.
작금 우리 곁에 펼쳐지는 이런저런 찻자리를 보면 절로 한숨 부터 나오고 만다.
중원은 물론, 섬나라 센노 리큐까지 끌어들여 분탕질을 해 대는 꼴이란 가히 역겹기 조차 한 실정.
문제는, 차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보통의 초학(初學)과 다인(茶人)들이
이처럼 숨줄을 죄는 형태의 가식적인 작태에 점차 동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름지기 조금만 신경 쓰고 바라 보면 주위에 널린 게 야생차밭이다.
직접 내 손으로 채다하여 덖어 낸 한 잔의 차야말로 최고의 맛이자 최상의 격을 지닌 명차일 터.
곁에 있으면 마시고 차가 없으면 다소 헛헛한 것이 이내 차 생활이자 차 문화론.
한 마디로 그저 끽다(喫茶)의 차원에 불과 하다는 말씀.
그간 손에 잡히는 대로 이런저런 다서를 읽고 차를 마셔 왔지만,
차에 대한 인문학적인 접근 자체에는 게을렀던 것도 사실. 읽어 봤자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이내 한계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이번엔 아예 자판을 두드려 가며
머리와 가슴 양쪽 모두에 입력 시켜보기로 작정.
그 첫 대상으로 선택한 책은 한양대 정민 교수 著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그 동안 시나브로 읽어 오는 과정에서 이내 갈증이 다소나마 해갈 되었기에 선택 한 것이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차 문화 공부를 한답시고
저자의 노고가 깃든 저작물에 함부로 난도질을 해댄 건 아닌지 저으기 걱정스럽다.
오로지 눈 한 번 질끈 감아주시는 쎈쑤를 기대하면서...
'애일당' 소장 다관
한 잔의 차에 이내 마음이 담겼으니...
一椀茶出一片心 한 잔의 차에 한 조각 마음이 나오니
一片心在一椀茶 한 조각 마음이 차 한잔에 담겼네.
當用一椀茶一嘗 응당 이 차 한 잔 마셔 보게나
一嘗應生無量樂 한 번 맛보면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진다네.
-함허 득통 -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생가.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흔히들 우리 차에 관한 최초의 저술을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으로 알고 있는 이 들이 많다.
그러나 이덕리(李德履, 1728~?)의 『동다기(東茶記)』는 그보다 50여 년을 앞선 1785년을 전후로 씌여졌으며
2018년 현재까지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755년 이운해(李運海. 1710~?)가 지은
『부풍향차보(扶風香茶譜)』라는 책이야 말로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多書)라고 한다.
『부풍향차보』는 실학자요 박물학자로 재야인 들에게 잘 알려진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 1757년 6월 26일 자 일기 끝 부분에 실려 있으며 분량은 두 쪽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디 별도의 책자가 있었을 터이지만 불행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