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생로병사
조선왕실의 생로병사 질병에 맞서다
청동초두靑銅鐎斗
삼국시대 / 길이 36cm, 너비 13.5cm, 높이 10.5cm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청자상감상약국명합靑磁象嵌尙藥局銘盒
고려 12세기, 높이 9.6cm, 지름 7cm,
보물 제646호.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상약국尙藥局은 고려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던 의료기관이었다.
글씨가 그릇의 위 아래에 각각 白土로 상감되어 있다. 뚜껑 윗면에는 雲龍文이 새겨져 있다.
도자기 가운데 의료기관 이름이 새겨진 유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청자유발靑磁乳鉢 및 유봉乳棒
고려 12~13세기. 유발높이 12cm, 지름 20cm, 유봉 길이 23cm.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청자태호靑磁胎壺
고려 / 높이 23cm, 입지름 9.5cm, 바닥지름 10.3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태조 이성계 태항아리
고려 후기 / 입지름 33cm, 밑지름 20cm, 높이 44cm
도기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태조 이성계 태지석胎誌石
1929년 세로 29.3cm, 가로 23.2cm, 높이 2.3cm
오석 / 국립고궁박물관.
태조 이성계 옥책
조선 1683년(숙종 9) 각 세로 25.3cm, rkfh 21.7cm
10폭 옥책 / 국립고궁박물관.
산실구봉안産室具奉安 현판懸板
조선 1773년(영조 49) / 세로 46cm, 가로 94.6cm,
나무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탄생당誕生堂 현판懸板
조선 1773년(영조 49) / 세로 43.5cm, 가로 90.1cm
나무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백자태호白磁胎壺
조선 18세기. 높이 45.5cm, 입지름 22.5cm
한독의약박물관
영조 태지석
1695년. 세로 25.9cm, 높이 4.8cm,
오석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태실太室
조선 / 높이 110cm, 너비 120cm, 사암.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집복헌유감시集福軒有感詩 현판懸板
조선 1730년(영조 6). 세로 22.6cm, 가로 61.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창경궁 집복헌에 걸었던 현판으로 영조의 글씨이다.
1735년 정월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1790년 6월 순조가 태어났다.
보양청輔養廳 현판懸板
조선. 세로 61cm, 가로 153.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양청은 원자(元子)와 원손(元孫)의 보호, 양육을 이해 설치한 임시 기구이다.
명주적삼明紬赤衫
조선. 1466년(세조 12). 길이 72cm, 폭 189.cm, 비단.
보물 제793-16호,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원종 어찰 元宗 御札
조선 1580년~1619년(선조 13~광해군 11).
세로 28.2~28.4cm, 가로 26.3~27.1cm, 두께 7.6cm, 무게16.3kg, 미정질 대리암(회색).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편지글을 돌에 새긴 것으로 고열에 시달리던 원종의 모습이 담겨 있다. 원종은 뜸으로 치료를 받았음에도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이에 초남태初男胎 즉 임산부가 첫번째 출산하면서 낳은 아들의 태胎를 사방에 구하였다.
쉽게 구하지 못했다가 수신인이 태를 보내주었으니 아주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원종은 인조의 아버지로 선조의 5남이다. 그는 1627년 왕으로 추존되었다.
효종孝宗 어찰御札
조선 1649~1659년(효종 연간) 세로 37.7cm, 가로 29~29.4cm, 두께 9.1cm, 무게 28.9kg
연옥질 대리암(녹회색).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점점 심해지는 질병에 시다리리던 효종이 서산瑞山 수령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로 병든 처지에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내용이다.
정조 어찰正祖 御札
1799년 (정조 23). 세로 12.8cm, 가로 33cm.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낮에는 구름이 모였다가는 밤에는 별리 초롱초롱해져 비가 내릴 가망은 까마득하니, 애만 탈 뿐이다.
밤새 안부가 또 평안한가? 나는 갈증, 체증, 현기증, 피곤증과 더불어 입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온갖 잡스런 증세가 있다.
연사흘 상참(常參, 의정을 비롯한 중신들과 측근 신하들이 날마다 국왕에게 정무를 아뢰는 일)에 고사를 서술하려 했으나
정력이 미치지 못하니 그만한 안타까움이 어디 있겠느냐.
사망 직전 격열에 시달리던 정조 어찰正祖 御札
1800년. 세로 53.4cm, 가로 34.7cm, 종이에 먹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앓았던 질병을 보여주는 편지이다.
꽤 오래 비가 오지 않은 후라 한바탕 쏟아지면 좋겠습니다. 지금 안부가 더욱 평안하시지요?
나는 그동안 격열로 눈에 치증이 있어 연달아 양료를 쓰고 있으나 치은과 이근의 통증이 한꺼번에 있다가
며칠 전부터 조금 덜 합니다. 정계상의 의술이 꽤 정밀하여 근자에 어머니의 환후에도 그 의술의 도움을 받았고
지금 또 내가 효험을 보니 그 사람은 '팔천 냥짜리 높은 어른' 이라고 합니다.
문상(홍낙윤) (딸의) 혼례일이 점점 다가오니 아주 기쁩니다.여기 어첩을 보내니 헤아려 받기 바랍니다.
잠깐 쓰고 이만 줄입니다.
정조 어찰正祖 御札
1796년. 세로 56.9cm, rkfh 36.4cm, 종이에 먹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정조가 창동의 박윤원(1734~1799)에게 보낸 편지로써 '어찰집'에 수록되어 있다.
원자(나중의 순조)가 천연두를 겪고 건강을 되찾은 일을 크게 기뻐하는 내용이다.
왕세자 천연두 회복 축하 의식 병풍
1879년(고종 16) 각 폭 세로 136.5cm, 가로 52.5cm.
비단에 채색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1879년 12월 세자가 천연두에 걸렸다. 세자의 나이 겨우 5살이었다. 다행히 12월 12일에 들어 나아지는 징조가 보였다.
세자의 발진이 반쯤 가라앉고 종두 딱지는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세자를 치료하던 의약청을 철파하고,
의약청 도제조 등에게상을 내렸다. 한숨을 돌린 셈이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121월 23일에 의관들이 입진하여 세자의 안부를 살폈다.
드디어 12월 28일 고종은 신하들의 축하를 받고 사면을 반포 하였다. 세자의 완쾌를 축하하는 중광시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듬해인 1880년 경진년 중광시가 실시되어 관리들이 선발되었다. 이 병풍은 세자가 천연두에서 회복한 것을
축하하는12월 28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했던 축하 의식 장면을 병풍 형식으로 꾸몄다.
병풍의 첫 폭과 마지막 폭에는 그림의 제작 배경과 함께 축하 인사를 드린 신하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때 천연두에 걸린 세자가 나중에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는 순종이다.
강우석 교지
1879년(고종 16). 세로 47.7cm, 가로 67.2cm,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1879년 12월에 강우석을 가선대부(종 2품)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교지 마지막 부분에 '세자의 천연두가 나아서 신하들이 출하를 올리자 고종이 백관에게 친히 관직을 제수했다.'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아마도 12월 28일의 축하 의식 및 사면 반도와 함께 실시된 임명일 것이다.
『동의보감』
1613년(광해군 5). 세로 34cm, 가로 21cm. 충북유형문화재 제345호. 한독의약박불관 소장.
『동의보감』에서는 눈의 각 부위를 五臟六腑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눈에 대한 한의학의 이해를 그림으로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조 시력측정 글
1758년(영조 34) 세로 18cm, 가로 27.2cm, 두께 5.7~5.9cm, 무게 8.1kg
연옥질 대리암(녹회색)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65세 노인이던 영조가 자신의 시력을 시험하기 위해 글씨를 써서 돌에 새긴 것이다.
또 다른 돌에서는 아주 작은 글씨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와 그 존속 年收를 적었다.
영조 시력측정 글
1758년(영조 34) 세로 21.5~28.1cm, 가로 18.9~20.9cm, 두께 5.7~6.0cm, 무게 10kg.
미정질 대리암(암회색)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백자양각 '수복' 명주전자
월정사 목패 月精寺 木牌
높이 각각 70cm, 68.5cm, 68.3cm, 나무에 채색 /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목패는 부처, 보살의 명호나 발원 내용 등을 나무에 적어 기원의 대상으로 삼는 패이다.
임금, 왕비, 세자 삼전三殿의 목패 3점이 한 조를 이룬다.
각기 '주상전하성수만세', '왕비전하성수제년', 세자저하성수천추'라고 적혀 있다.
외형은 구름 모양이고 상 · 중 · 하로 구분된다. 임금 위패의 상부에는 봉황, 나머지는 구름 모양이 새겨져 있다.
왕비와 세자 위패는 테두리를 연봉오리가 감싸고 그 안에 채운을 그려 넣었다.
은제 약숟가락
조선,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銀은 금속 가운데 열전도율이 가장 높다.
그럼에도 은이 약숟가락 같은 의약기에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독약에 쉽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백자은구약주전자
조선 후기, 전체 높이 28cm, sjql 23cm, wlfma 17cm
백자, 한독의약박물관
기품 넘치는 당당함과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함, 재료의 고급성, 격조 높은 미적 감각, 화려한 아름다움,
소박함과 편리성 등을 두루 지닌 것이 특색이다. 은 자물쇠를 부착한 희귀성까지 갖추고 있다.
독극약궤
조선 18세기 세로 23.5cm, 세로 43cm, 높이l 24cm, 목제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상자 표면에 독약, 극약, 극성약품과 그 종류를 구분하여 써 놓았다.
웅황, 신석, 경분, 보두, 파두, 부자, 백부자, 천오, 초오, 황단, 감수, 영사, 전충이 보인다.
안전을 위해 안쪽에 뚜껑 하나를 더 만들어 덮은 것이 특징이다.
『초산일기』에 실린 송시열의 최후
"초8일 새벽에 금리가 사약을 내리려는 뜻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자손과 문생들은 모두 쫒겨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선생의 기식이 가물가물하여 다시 몸을 일으켜 옷을 입을 기운이 없었으므로 옷을 펼쳐 몸에 얹고 와석에 누우신 채로
받을어 대청 위로 나갔다. 도사가 교생으로 하여금 전지를 읽게 하였는데, 선생은 옷으로 무릎을 가리고 몸을 구부리고서
들으셨다. 도사가 드디어 약 두 사발을 드리라 선생은 이를 다 마시고 그대로 베개에 누워 운명하셨다."
소줏고리
18~19세기, 입지름 36cm, 높이 50cm, 옹기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보호성궁
- 군주의 몸을 보호한다 -
조화어약
- 군주의 약을 조제한다 -
내의원에 걸었던 편액으로, 내의원의 임무를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영조의 어필이다.
내의원 칙지
고종 31년, 세로 39cm, 가로 49cm, 한독의약박물관.
1868년생으로 1885년 의과에 합격한 현동완의 내의원 의원 임명장이다.
대한제국시기까지 의료인으로 활동하였다.
『동의보감』 목판
19세기, 세로 24cm, 가로 60cm, 두께 3cm
한독의약박물관
『동의보감』책궤
18세기, 세로 26.5cm, 가로 32cm, 높이 22.5cm
한독박물관 소장
『답조선의문答朝鮮醫問』
일본 1720년 왕응린, 세로 27cm, 가로 19cm
한독의약박물관
1622년(광해군 14)7월 12일 동지가 파견되어 중국 의학자를 대표한 왕응린과의 응답을 적은 것이다.
조선과 중국 의학자들의 토론은 일본 의학자들에게도 관심거리였던 것.
거의 100년이 지난 1720년 일본의 나카무라가 교토에서 이 책을 재간하였다.
먹감나무 약장
조선 18~19세기, 세로 42.5, 가로 93, 높이 118cm
한독의약박물관
약장
조선, 세로 27.4, 가로 100.5, 높이 138cm
국립고궁박물관
백자 '典'자명약호
조선 18세기, 높이 15, 입지름 11.6cm, 백자호
왕실 휴대용 약상자
조선 19세기, 높이 34.5 너비 22 두께 12cm
한독의약박물관
영친왕비 향갑단작 노리개
20세기 초, 길이 42.5cm, 비단, 옥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용 놋쇠 약연
17세기, 나무 놋쇠, 한독의약박물관.
석재 약연
조선 19세기, 화강암, 나무,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나전연엽소반 螺鈿蓮葉小盤
조선 19세, 높이 20.5, 지름 30cm, 한독의약박물관.
일반적으로 약소반은 손바닥 2개를 합친 것보다 조금 넓은 편이어서 이 소반은 소형에 속한다.
탕제를 담은 약사발 정도만 올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외다리 소반은 약소반으로 추측된다.
거북 문양이 두드러지는 것은 십장생 중 하나라는 점이고 무병장수를 염원한다고 해석된다.
백자청화칠보 '壽'자명약사발
조선 19세기, 지름 15, 높이 7.6cm,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그릇의 안쪽에는 겹으로 원을 그리고 그 안에 壽자를 쓰고 외부에는 칠보를 그려 넣어 여백을 적절히 처리했다.
구리 약숟가락
조선,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경혈을 표시한 銅人
조선 높이 86cm, 청동, 국립고궁박물관
침구를 공부하기 위해 구리로 사람 모형을 만들어 시술 위치를 표시하였다.
경락의 흐름을 동인의 몸 표면에 선으로 표시하고, 점으로 혈위穴位를 나타내었다.
동인도銅人圖
조선 19세기, 세로 168, 가로 65cm, 한독의약박물관
외과수술용 피침
조선, 5.5~9.5cm, 한독의약박물관 소장
대한제국의 황실의료
알렌의 의료기구
조선 1880년대,
알렌이 사용하던 수술기구, 약잔 검안경 등이다.1884년 9월 내한한 알렌은 미국 공사관의 공의 신분으로
의로 선교를 모색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의 와중에 자상을 입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서양 의술로 치료하게 되었다.
1885년 4월 10일, 한국 최초의서양식 병원 광혜원이 개원하였다. 10여일 뒤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개칭되었다.
고종과의 친분 관계를 토대로 알렌은 고종의 어의로도 활동하였다.
한독의약박물관 / 국립고궁박물관
화려함과 위엄 뒤에 가려진, 왕의 질병과 왕실 구성원들이 느꼈던 인간적인 고통이
시공을 뛰어 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 내용 중에서 -
Northern Seascape - Jim Wi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