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916년 4월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의 고달픈 인생 행로는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쳐온 대다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삶과 궤를 같이한다.
1956년, 41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는 찬란한 예술혼의 씨앗을 이 땅에 뿌려 놓았다.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1941, 4, 2, 종이에 먹지 그림 · 수채, 14×9cm
<누운 여자>
1941, 6, 3, 종이에 잉크 · 수채, 9×14cm
이중섭의 편지글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발가락 군'은 마사코에게 붙여 준 애칭.
또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를 닮았다 하여 '아스파라거스 군'으로도 불렀다.
<소와 여인>
1941, 5, 29, 종이에 먹지 그림 · 수채, 14×9cm
<연꽂 봉우리를 든 남자>
1941, 6, 1, 종이에 먹지 그림 · 수채, 9×14cm
<활을 쏘는 사람>
1941, 6, 2, 종이에 종이에 잉크 · 수채, 14×9cm
<발을 치료하는 남자>
1941, 6, 4, 종이에 종이에 잉크 · 수채, 14×9cm
연애 시절 산책 중 중섭이 마사코의 다친 발을 살피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거의 모든 요소를 곧은 직선으로 처리하 점이 인상적이다.
<연꽃 밭에서 새와 노는 소년>
1941, 10, 6, 종이에 잉크, 9×14cm
<소를 든 사람>
1942, 8, 28, 종이에 잉크, 9×14cm
<야수를 탄 여자>
1941, 5, 13, 종이에 잉크 · 과슈, 9×14cm
<소와 어린아이>
1942, 8, 10, 종이에 잉크 · 수채, 9×14cm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종이에 잉크 · 유채, 20.3×32cm
<봄의 어린이>
종이에 유채 · 연필, 32×49cm
<꽃과 어린이>
종이에 잉크 · 유채, 26.7×20.3cm
<아이들과 끈>
종이에 잉크 · 수채, 19.3×26.5cm
<물고기아 노는 세 어린이>
종이에 연필 · 유채, 25×37cm
<사슴과 두 어린이>
종이에 연필 · 유채, 13.8×20cm
<달밤>
종이에 잉크 · 수채, 17.5×13.5cm
<다섯 어린이>
종이에 잉크 · 수채, 24..3×18.4cm
<아이들과 물고기와 게>
종이에 잉크 · 유채, 33×20.4cm
<꽃과 어린이와 게>
종이에 잉크, 9×26.4cm
<네 어린이와 비둘기>
종이에 연필, 31.5×48.5cm
<그리운 제주도 풍경>
종이에 잉크, 35.5×25.3cm
한국전쟁 시기 이중섭은 원산에서 부산으로, 제주로 다시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다 결국에는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그림 편지를 늘상 그려 보낸다.
- 편지 봉투에 적힌 이중섭의 글씨 모음 -
이중섭이 오산학교 시절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은박지 그림'.
담배곽에 들어 있던 것으로 연필이나 철필로 눌러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한다.
이 물감이 다 마르기 전에 헝겊 등으로 닦아내면 선각이 나타난다.
이중섭이 개성박물관에 드다들며 본 분청사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릇 바탕위에 유약을 바르고 그것을 긁어내어 무늬나 그림을 표현하는 분청기법을 그림에 적용한 것이다.
<신문을 보는 사람들>
<낙원의 가족>
<복숭아 밭에서 노는 아이들>
<아이를 돌보는 부부>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가족>
<두 아이>
<즐거운 가족>
<가족에 둘러싸여 아이들을 그리는 화가>
<복숭아 밭에서 노는 가족>
<게와 물고기가 있는 가족>
<추모>
<아내와 두 아이를 그리는 화가>
<아이들에 둘러싸인 부부>
<사랑>
<새로운 부처님>
<바닷가 아이들>
<가족과 비둘기>
<길 떠나는 가족>
<파란 게와 어린이>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두 아이와 게>
<가족>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들>
<아빠와 아이들>
<닭과 가족>
<돌아오지 않는 강>
참고서적 / 최석태, 최혜경 著 『이중섭의 사랑, 가족』
※ 아래는 「주간조선」과 이중섭의 부인 마사코 여사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201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