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음의 감동, 야은재 영산홍
2013. 5. 4
기리시마 계열의 철쭉
여기서 부터는 야은재와 대문을 마주한 작은댁 영산홍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야은재(野隱齋)를 찾았다.
이진환 선생님을 비롯,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총 동원되어 모판 작업에 분주한 모습.
지난 주 개화 상태를 살피느라 한 번 다녀갔기에 오늘이 절정임을 예감하고 다시 찾아온 것.
영산홍을 비롯 자산홍, 백산홍, 삼색영산홍, 기리시마 계열의 철쭉에다 목단에 이르기까지
팔앙산을 배경삼은 초당과 안채 할 것 없이 야은재 전체가 온통 꽃불에 휩싸인 모습이다.
야은재 영산홍의 핵심은 수백 년 수령의 고목 토종 영산홍의 존재와 그 감상에 있다 하겠다.
그 어떤 수식으로도 이 아름다움을 형용하기가 난감한 지경이지만
딱 한 가지는 알겠다. 이것이 진정 조선을 대표하는 붉음의 원형이라는 사실.
마음을 들뜨게 한다거나 피곤하게 하는 따위의 대책없는 빨강이 아닌 포근하고 따스한 붉음을 말이다.
붉은 계열의 색감은 시선을 확 끄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식상하는 속도 역시 빠르다.
그만큼 마음을 가라앉히기엔 적절치 않은 영역의 색감이라는 얘기로 요약될 수 있겠는데
단 하나 이 토종 영산홍의 붉음만큼은 절대 예외에 속 한다는 사실.
토종 영산홍은 그 값어치에 걸맞게 선비를 포함 모든 도인들의 총애를 받는 꽃이기도 하다.
기리시마 계열의 철쭉이나 바글거리는 꽃송이의 일본 영산홍에서는
절대로 조선인의 심성에 와 닿는 따스함이나 포근함 등의 격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숫제 마음만 어지럽게 할 뿐 완상의 대상으론 적절치 못하다는 말씀.
위의 주장은 순전히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격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면
꽃이라는 자체만으로 거의 다 아름답기에 굳이 까탈을 부리거나 유난을 떨 필요는 없으리라.
어쨌건 계사년의 봄도 어김없이 아낌없는 감동을 내게 듬뿍 선물해 주었다.
야은재 영산홍이 피워올린 붉음의 감동.
고백컨데 自然보다 더 위대한 스승, 四季보다 더 위대한 경전을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오로지... 영산홍의 감동을 주체치 못하는 소인배의 허튼 변명이라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