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강 흐르는 숲
● 축령산 편백숲 - 전남 장성 -
2009. 3. 13 (금)
몽따쥬
- 고중영 -
비오는 날은 생각해 보시지요.
낙백시절의 구도자처럼
낡은 지우산에 의지하여
잊혀지는 연인처럼 간곡한 슬픔을 감추며
꼿꼿이 떠나간 사람은 없었던지 -
비오는 날은 생각해 보시지요.
울렁거리는 수면같은
어지러운 生의 외나무다리
그 미끄러운 길을
실연처럼 기우뚱거리며 걸어서 간
차마 안 잊혀지는 사람은 없었던지 -
날개도 없이 날아오른 비가
말로는 다 못할 하늘 구만리 험로를
물집이 잽해도록 헤메다가
지상에 두고 온 못잊을 그 무에 있어
구슬땀 흘리며 흘리며
문 없는 허공에 수만 개 문을 만들고
궁녀들처럼
궁녀들처럼
비장하게 날아 내리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시지요.
그대의 우수처럼 말이지요.
이곳은
- 고중영 -
하얗게 내리는 눈이 아니다.
파랗게 움돋는 대지가 아니다.
지금 내가 앉은 이곳은
적막과 그리움이 쌓인
고독의 허파 속이다.
뜨거운 숨소리를 딛고 달은 뜨는데
나르던 새 한마리 가고 없는데
달이 토해내는 붉은 울음만
내 귓가에 낭자하다.
우주 미아의 절대 고독이
시퍼런 표정을 일그러뜨린 산 속
장렬하게 말을 버린 나를
보다 장렬해져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을뿐.
하얗게 쏟아지는 눈이 아니다.
파랗게 움돋는 대지가 아니다.
외로움을 여며내는 달의
피붉은 울음이 낭자한
이곳은 다만 산 속일뿐.
그에게는 山이 있다
- 고중영 -
산이 되자고
마음 속에 山을 품었더라는
그 사내는
품은 마음을 끌고 어디로 갈까 하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첩첩 산속에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고
헐일 없이
山속에 山을 부려놓았더라는군.
허나 어쩌리오
산은 이내 일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찾아 허둥대고-
그날 그 사내의 눈이 열리더라는군
산은 칩거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으로 向하는 길의 시작이었음이
눈에 환하게 보임에 오늘까지
마음 속에 산을 버려둔 채 산다고.
그제서야
자신이 산을 닮아가는걸 알겠더라고
겨울강, 그리고 안개
- 고중영 -
이른 새벽
물 빗금 사이에 누워있던 안개들이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안개들은 지난 밤 부질없이 누워보낸 까닭을
강의 심도에서 찾으려 하지만
모든 것의 깊이란 의외로 엷어서
자칫 방심하는 사이에
사람의 첫 약속처럼 찢어질 수가 있다.
깊이가 찢겨 드러나도
안개들이 수치스러울 리 없다.
뭣이든 묵살하기 버릇된 그들의 시력은
스스로의 일도 분별할 수 없어
태어나기 전에 잃어버린 추억을 더듬으며
다만 착하게 늙어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도 착하게 아주 착하게 늙어야 한다.
추운 새벽
섬득하게 건너야할 인생이라는 깊이를 어림하며
망서리기도 하고
밀집당한 어깨가 번거러워 몸부림 치다가도
그렇게 살아온,
또 살아갈 삶의 긍정과 부정 사이를
기웃거리며 착하게 늙어야 한다.
안개들이 제 몸을 벗는 시간
멀어질수록 더 부드러워지는 안개는
추운 겨울을 껴안고 더욱 착해진다.
마치 우리가
그렇게 늙어갈 수 밖에 없는것 처럼.
시간의 정박
- 고중영 -
이런게 바로 풍경이라는 것일까?
엊저녁 기척도 없이 내린 눈, 눈, 눈
머리에 얹힌 그 눈이 무거웠던지
얽힌 채 숙이고 잠든 대나무들
코고는 소리가 산안개로 번지고
가시(可視)거리에 곧추선
오동나무 가지에 걸터앉은 부엉이의
갸웃한 머리도
대나무 각도를 따라 기울었다.
내려가노라면 첫집,
흙으로 쌓아올린 굴뚝에서 뭉클거리는
생솔가지 태우는 연기에 군침을 삼키며
창 밖을 멀거니 보고 있던 내가
방안으로 고개를 돌려
詩쓰기 골돌한 나를 건성으로 보다가
픽 - 웃음을 깨문다.
엊그제 훈풍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온
고사리들
눈 속에서 곱은 손가락 호호 불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무슨 -
정지화면 같기도 하다.
- 축령산의 성자 춘원 임종국 선생 바위 -
바위
- 고중영 -
앉아서 백년
곰곰히 천년입니다.
듣도 보도 않고
말 감추는 법 하나로
바람을 견디고
세월을 여며온 행자처럼
두리뭉실한 형상인 채-
사람을 섬기는
아! 사람을 섬기는
그대 神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섬겨 갈
순명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