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은 덕이 하늘을 찌르는 전주 고덕산(高德山)
■ 고덕산 (603m)
▲ 전북 전주시 완산구 - 완주군 구이면 - 상관면 소재
▲ 삼경사 - 천경대 - 메뚜기바위 - 헬기장 - 송전탑 - 정상 - 어두마을
▲ 2008, 6, 22 일요일 (약 5 시간 소요)
산행 들머리 근처 남고산성 내에 위치한 관성묘를 찾았더니
크거나 작은자 할 것 없이 모조리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의 엄명.
관성묘 (關聖廟)
지방문화재자료 제 5호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주왕묘(周王廟) 혹은 관제묘(關帝廟)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명(明)나라 장군이었던 진인이 부상을 입고 지금의 서울에 있는 남묘에서 치료를 받을 때,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군사들을 지켜준다고 믿어 이곳에 묘를 세우고 상을 모셨다.
이것이 관우신앙의 원조가 되었고 그 후 무신으로서 그를 모시는 신당이 널리 전파되게 되었다.
전주에 있는 이 관성묘는 고종 32년(1895) 당시 전라도 관찰사였던 김성근과 이신문이 발기하여 세운 것이다.
건물은 장엄하고 짜임새가 있으며 내부의 양쪽 벽면에는 조선 후기 화가인 소정산이 그린 ‘삼국지연의’ 그림이 있고,
기둥에는 유려한 필체로 쓴 법훈이 걸려 있다.
※ 보충설명
관성묘는 남고산성내 만경대(萬景臺)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왕묘(周王廟) 또는 관제묘(關帝廟)라고도 하며,
중국 후한(後漢)의 성장(聖將)인 주우(周羽)를 무신(武神)으로 제사지내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관우(關羽) 신장(神將)을 신봉하는 신당이 널리 전파되기는 임진왜란때로서,
당시 명나라 유격장군이었던 진인(陳寅)이 울산싸움에서 부상을 입고 지금 서울에 있는 남묘(南廟)자리에서
머물러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명나라 군사들은 싸움터에서 자주 관우신장의 령(靈)을 통하여 그 가호(加護)를 받았다고
믿는데에서 열열한 관우숭배자인 그는 이곳에 묘(廟)를 세워 관우의 신상(神像)을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남묘의 전신으로서 관우신앙의 시조가 되었다.
전주의 관성묘는 고종 32년(1895년)에 당시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金聲根)과 남고별장(南固別將) 이신문(李信文)의 발기로
각처 유지들의 헌납성금으로 건립되었다. 건물은 매우 짜임새 있고 장엄하다.
묘내(廟內)에는 관우의 소상(塑像)이 있고, 그 양쪽 벽에는 삼국지의 벽화가 걸려있다.
신자들은 년초에는 이곳에 찾아와 한해의 행운길복을 점친다.
- 문화재 자료에서 발췌 -
돌다리를 건너고 일차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솟을 대문이 나오는데 그 양편으론
적토마 임이 분명한 말과 고삐를 쥔 신상이 지키고 서서 이 곳이"미염공 관운장"의
영역임을 확실히 주장하고 있었다.
여포를 내려놓고 운장 관우를 태운 적토마는 분명 한 필 이었는데
양 쪽으로다가 적토마를 배치한 이윤 뭘까?
관우를 잃은 적토마는 끝내 식음을 전폐하고 영웅의 뒤를 따랐다던가.....!
적토마가 지키는 솟을대문과 중문을 지나니 또다시 2층 기단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돌계단이 사당으로 오르라 재촉하고 있었는데.
아~~암 ! 천하 호걸이요 난세 영웅 관운장이 어디 쉽게 모습을 드러내리오.............
계단 끝으로 머리를 들어올리니
관운장의 동생 쯤으로 여겨지는 육덕 좋은이가 들어와 앉기를 권 한다.
사당 양 옆을 호위하고 있는 건물 내부에 걸려있는 그림 들인데
아마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중 중요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
조선 말기의 화가 소정산의 삼국지연의도 10폭이 보존되어 있는데,
1975 1월에 도난 당했다가 다시 찾았다고한다.
본전 네 기둥에는 법훈들이 주련으로 걸려있다
때마침 울리는 법고소리와 함께 정식 혼례를 간소화한 "언약식"이 열렸다.
도교 사당에서의 이런 모습은 내 생전 처음 보는 거라서 흥미롭게 지켜본다.
법사님의 말씀인즉,
늦게 만나 오늘 이 곳 관성묘에서 약식으로 예를 올리게 되었다는 설명.
나름대로의 품위와 격식을 갖추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무었보다도 너무 번잡스럽지 않은 느낌이 좋았다고나 할까?
"부디 늦은 인연으로 맺어진 두 분의 앞 날에 밝은 영광과 축복이 깃드시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온갖 수 많은 군상의 종교가 우리곁에 널려있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대개는 내세를 이야기 한다지만,
도교는 지금, 곧 현세를 매우 중시한다고 얼핏 어디선가 주워 들은 것도 같은데.....
이 쯤에서 발길을 돌려
계단을 내려선다
중문에서, 아까 괜찮게 들려오던 북소리의 실물을 대한다
그나저나 관운장께서는 생전에 막걸리(?)를 무척 즐기셨나부다.
사당 곳곳엔 모조리 막걸리 일색이라,
그것도 "전주막걸리" 일색.
관성묘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가 있으나 조금 내려와 삼경사을 들머리 삼는다.
일전,
만경대를 거쳐 이 곳에서 멈추었었다. 마저 남고산성을 이어
고덕산을 향 하려고 삼경사 앞의 산성을 들머리 삼게된다.
한참 오르다 돌아본 모습
오른쪽으로 이어진 산성의 끝이 "만경대다.
비교적 근자에 복원한 남고산성 위를 걷다보면 "천경대"에 이른다
멀리 고덕산의 뾰족한 모습이 아스라하다.
약간 당겨본 고덕산
메뚜기 이마를 닮았다나 뭐라나 이른바 "메뚜기바위"
울창한 그늘 아래 기분좋은 등로를 가고있는 중,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
바로 "전주천등산악회"의 회장님을 만나게되어 한 컷.
계속되는 만남
퍼질러 앉아 점심을 거진 다 해결하고 있던차
어디서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가 쪼르르 달려오고
한참있다 위를 바라보니"호남지리탐사회"의 최병옥 부회장님께서 떡하니 서 계신게 아닌가....
무지 반가웠습니다.
작은 헬기장에서 바라본 고덕산
등로에 우뚝 솟은 송전탑
정상 직전에서 돌아본 모습
고덕산.....
날이 후텁지근하고 더워서였을까?
결코 동네 뒷산의 산책 코스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리라는 생각
잘 하면 한바탕 비가 쏟아질 기세라....
하산을 재촉한다
저 아래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곳이 상관면이고 오른쪽은 한일장신대학이다
되돌아본 정상(왼쪽 봉우리)
왼쪽편 울창한 숲을 뚫고 내려와
골짜기를 따라 어두마을로 향 한다.
어두마을에서 돌아본 고덕산
자귀꽃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차를 회수하기위해 돌아온 삼경사 약수터
@ @ @
관성묘 가파른 계단 끝으로 머리를 밀어 올리니 육중한 상체를 모시적삼으로 감싼이가
사무용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서 사당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 들어서 쭈빗쭈빗 다가가니 육덕 좋게 생긴 법사(?)께서 앉을 것을 권 한다
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도 전에 관성묘의 유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어지는 말씀이 가히 '청산유수'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이 곳에 자리를 하게된 연유에서부터 세계 각지을 주름잡는 화교들의 동태에서 부터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현대 중국의 경제를 실지로 이끌고 있다는 "용강회"의 실체를 상세히 설명하고
그 들이 인천의 "차이나타운"에도 얼마를 투자했다는 애기 등등, 일단 그 중국인들의 자본력에 촛점을 맞춰
애기를 이끌어가고 아울러 그 들이 성심으로 받드는 신이 바로 '운장 관우'라는 말씀이다.
여기까지의 설명을 듣자니 이제사 대충 감이 오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신"으로 받듬은 물어보나마나 "도교"다.
그 '도교'가 우리나라에선 어떤 형태로 토착화 되어있는지가 궁금하다.
쌩뚱한 질문을 던져본다.
'혹, 역학을 하시는지요?'
" ....... 말 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본격적으로 이 곳 관성묘에에 얽힌 이런 저런 애기를 쏟아놓기 시작한다.
근세에 태동한 이런 저런 종교 들과 인물 들 치고
이곳 전주 관성묘와 인연을 맺지않은 경우가 드믈다는 말씀.
모악산을 중심으로 태동한 각종 종교와 종파 들,
이른바 증산도의 강증산에서부터 원불교의 소태산.
마이산의 천지탑 주인공 이갑룡 처사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기도빨을 접수하지 않은 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양양 낙산사의 화재를 미리 예언했노라는 말씀에 구미가 동 한다.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귀를 세워가며 열심히 듣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그의 입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때 어디선가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만
보살이 놋바리에다 수북히 밥을 담아 사당으로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실은 얼마 전부터 옷을 잘 차려입은 자들이 하나 둘씩 계단을 올라와
내게 얘기를 들려주는 주인공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사당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열심히 이런 저런 애기들을 내게 들려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보살 한 분이 곁에 다가와 뭔가를 재촉하는 모습이다.
..............?
" 실은 오늘 저 두 분 께서 언약식을 하게 되십니다, "
화사하게 웃음짓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분 그리고 양복차림의 남자를 두고 하는말이다.
아마도 두 사람의 인연 맺음 자리을 주재하려는 모양이다.
성심으로 관성묘를 찾아와서일까?
참으로 재수 좋은 날이다, 내 어찌 저런 광경을 평소에 어디서 쉽게 구경이나 할 수 있었겠나.
그나저나 주머니에 배추이파리가 두둑했으면
저 육덕좋은 이에게 관상이든 뭐던 길흉화복에 대한 애기 좀 들어봤음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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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사 앞의 남고산성을 따라 천경대에 오르니 고덕산이 아스라한 모습이다.
잔뜩 흐린 날씨에 습도가 높다보니 계속해서 흘러 내리는 땀을 주체할 길 없는 지경이다.
반가운 이 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수 많은 미로가 엉켜있는 등산로를 따라
신록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뾰족하게 솟은 고덕산 정상에 서게된다.
대개들 오던 길을 되돌아 전주 시내를 향 하는 모습인데
나는 저 아래 한일장신대학을 목표로 하산길에 접어든다.
그럭저럭 치고 내려오는데 마지막 골짜기에 내려서는 부분이 엉망이다.
산객이 거의 다니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동네뒷편 밭에 이르니 들깨를 이식하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길을 묻는데 무슨영문인지 몰라도 짜증 일변도의 답변이다.
" 이디서 왔쏘?"
당신 밭으로 산객이 내려온 자체가 못 마땅한 모양.
큰길로 내려와 자귀꽃에 들이대고 있는데 들려오는 소리
" 빨리 타요...! "
헐레벌떡 타자마자 곧바로 출발이다.
이만하면, 역시 재수 좋은 날 임에 틀림 없으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