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행·여행·풍경

운무 속의 미로

茶泉 2007. 12. 25. 09:31

2007-08-30 21:30

 축령산 초입 백련동의 폭포

 

 

 

 

 

 

 

 

 

 

 

 

2007, 8/30 목요일   장성 축령산에서...

 

 

 

안개 속에 숨다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은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안개속

    - 헤르만 헷세


안개속을 거니는 고독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않으니
모두들 다 혼자다

나의 삶이 밝던 그때에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에 안개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다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이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그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안개속을 거니는 고독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나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다

 

 

 

 

 
 
 
명경헌
오늘은 축령산에 운무가 내렸군요.
안개 속에서 누구나 외로움을 타겠지만...

'이제 여기에 안개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다'는 Hesse의 독백에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문득 공감이 가는군요.

좋은 음악과 글, 사진...
김선생님의 오늘 심경인 것 같습니다.
2007-08-30
22:29:52
 
 
 
한병인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산책로 걸어가는데 쉽지는 않지만
안개속 걸어가는 황홀함은 기대가 됩니다.
2007-08-31
10:21:05
 
 
 
류재원
좋은사진 좋은글 좋은 음률 감사합니다
내가 축령산 편백숲속에 운무속에 걷는듯 합니다.
류시화의 시가 이 풍경을 위해 지은듯 합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류시화의 시처럼 우리는 외롭게 사는것이 아니라 고독하게 살아가야하는 존재잖아요.
외롭다는것은 홀로 있으면 괴롭다는 것이요 고독하다는것은 홀로 있어도 그것을 즐긴다는것이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랍니다.
우린 어차피 홀로 고독을 즐기며 홀로 태어나 홀로 살다가 홀로 다른 여행을 떠나야 할 존재잖아요.
같이 죽을 사람 없잖아요?
고독을 즐기며 잘 살아 봅시다.
감사 또 감사!
2007-09-01
10:59:56

[삭제]
 
 
 
김환기
류제원님
외롭다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에 대한 명쾌한 정리, 대단히 고맙습니다.
권유하신대로 고독을 즐기며 살아보렵니다.
2007-09-02
22: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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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컴김종호
상당히 어려운 주제군요.
저도 편백 숲속에 안개사이로 잠시만 감춰 질수 있으려나......
김 환기형님이 부럽습니다. 고독을 즐길 수 있으니.
정말로 부럽습니다
2007-09-05
16: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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