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행·여행·풍경

축령산 자락 설경(雪景)과 겨울 시(詩)

茶泉 2007. 12. 13. 10:44

2006-01-11 20:04

 

 

 

 

 

겨울을 넘기려면.......

 



겨울 사랑



 
- 문정희 -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겨울 나무

 


- 이 정하 -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되어 어지럽다


따라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겨울 연가





- 신달자 -


한번 더 용서하리라
겨울 이별은
땅끝까지 떨려

설악산엔 이미
안개처럼 눈 덮히고
서울엔 영하로 떨어져
내 창의 울음 커지는 때

한번만 더 용서하리라
5시에 몰려오는 새벽 어둠은 차고
12월의 노을은 너무 적막해
몸속의 뼈는
회초리로 모두 일어서서
심장을 내려치는
영웅적 고독을
나는 혼자서는 견딜수가 없어

그대여
좀 더 따뜻한 날에
이별할지라도
지금은 혼자서는 결딜 수가 없어



 

 

** 겨울 바람 **

- 김용택 -


당신과 헤어져 걷는 길에
겨울 찬바람 붑니다

내 등뒤에
당신이 꼭 계실 것만 같아
뒤 돌아다보면
야속한 바람만 불어댔지요

뜨거운 눈물 삼키며
휘청이는 내 발등 위로
억새꽃잎 같은 눈발이 서성거렸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행여 당신 모습 잡힐랑가 뒤돌아다보면
섬진강 갈대들이
몸 비비며 사노라고
그러노라고
무수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갈대밭에
내 까칠한 머리 풀어놓고
걷자걷자
당신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겨울 찬바람만 휘몰아 쳤습니다.


 

 

 

** 겨울 길을 간다 **

- 이해인 -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아는 이 하나 없다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 어느 겨울날 **

- 김윤배 -


어느 겨울날 나는 얼음처럼 투명한 시간 속을 걸었네
앞서간 사람들의 발소리가 따뜻하게 남아 있었네
바람은 모든 떨림을 담아내고 햇살은 추억이었네
내가 만난 것은 버려진 것들의 슬픔이었네

버려진 것들은 한동안 빛이었으나
회색의 단단한 몸으로 굳어져
깨지지 않는 말이 되어 있었네
나는 말의 완강한 슬픔을 보았네

시간 속에서 들꽃이 피고 물소리가 들리고
잎들은 색깔을 바꿔입었네
바람은 모든 떨림을 담아내어 슬픔에게 주었네
물소리가 떨고 색깔들이 떨었네
그것들은 떨면서 버려질 것이네

버려져 슬픔으로 빛나고 내가 시간 속을 걷는 동안
단단한 몸으로 굳어져 슬픔이 될 것이네
슬픔은 오랜 후에 터지는 힘이 될 것이네 .

 

 

 

 

 

 

 

 

** 겨울 숲에서 **

- 안도현 -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 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 겨울 들판을 걸으며 **

- 허형만 -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차 한잔 하기 위해 세심원을 찾았더니 화가 한 분이 황토방에 이젤을 펼쳐 놓고 유리창 너머의 설경을 담고 있었습니다.
충분히 감상을 한 연후, 축령산 자락 이곳 저곳을 기웃 거린 다음 산을 내려 왔습니다.

 

** 겨울이 오기 전에 **

- 백창우 -


겨울이 오기 전에
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몇 장의 편지를 쓰자

찬물에 머리를 감고
겨울을 나는 법을 이야기 하자
가난한 시인의 새벽노래 하나쯤 떠올리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를 심자

이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큰 것만을 그리느라
소중한 작은 것들을 잃어온 건 아닌지

길은 길과 이어져 서로 만나고
작은 것들의 바로 곁에 큰 것이 서 있는데
우린 바보같이 먼 데만 바라봤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인데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온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데
우린 참 멍청했어

얘야, 오늘은 우리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
겨울이 오기 전에...

 

 

 

 

 

 

 




               첨단산인
                   사진과 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하나의 작품앞에서 다시금 겸손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지극히도 메말라가는 가슴에 편지한장 써보기가 그다지도 어렵게만 느껴지고
                   글 한자락 읽어볼 여유조차 없이 바쁜척 하는 요즈음에 환기형님 만이 줄수있는
                   여유와 감동의 싯귀들로 인하여 이 아침 가슴 한편이 따뜻해 옴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2006-01-12
08:30:59

 
 
히어리
무식한 넘이 오랜만에 좋은 시를 대하니
가슴이 포근해지네요.
시도 시지만
성님이 올리신 사진이
시와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성님 덕분에 오늘 아침 기분좋게 출발합니다.
2006-01-12
10:25:22
 
 
 
산수유
영혼의 시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겨줍니다.

눈...
우리의 마음을 아늑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사진에
시를 담아 주시니 정말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2006-01-13
00:40:39

[삭제]
 
 
 
공명
시를 읽는 마음은 붓글씨를 쓰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할까요.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아무리 힘을 써도 글씨가 엉망이 되듯이
시인의 가슴이 느껴지지 않으면 아름다운 싯귀는 그저 겨드랑이 사이로 스치는 바람일 뿐.

나이를 논하면 우습지만 그래도 옛날처럼 가슴에 팍팍 와 닿지 않는게 시가 아닌가 싶은데
형님이 이리 많은 시를 올리심이 한 겨울, 많은 눈에 고립된 덕인가요??? ㅎㅎ

형님이 올리신 글이라 쉬 넘기지 못하고 머리를 텅비웠다가 다시 채우니 그것 참! 좋네요.
항상, 시를 사랑하고 즐기시는 형님의 모습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를 사랑하고 즐기시는 분은 항상 마음이 풋풋하고 아름다울 것이니
언제나 형님에게 그런 마음으로 살게하여 주시길 손모아 기원하겠습니다
2006-01-13
11:50:35

[삭제]
 
 
 
MT사랑
형님 아우가 시를 얼마나 좋아하고 읽기를 즐겨하는지
앞으로는 산행기보다 이런 시와 사진들을 많이 올려 주세요.
산행 사진은 아우들이 책임지겠습니다.
형님이 올리신 시를 감상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 아세요?
겨울 계곡

/ 김 내식

석양은 서산을 넘고
물길은 동해로 향하는데
칼 같은 겨울바람
깊은 계곡을 쓸어 올라
낙엽들이 숨어 다닌다

개울 가 물푸레나무
두레박 끈을 걷어 치우고
다람쥐는 토굴에 옹크리며
산 까치도 입 시려
울지 않는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물마저
공중에 주렁주렁
하던 동작 멈추는데

어디선가 돌돌돌
얼음 속 구르는 물소리
가냘픈 거문고 가락으로
세파에 찌든 마음
텅 비워지고 맑아진다
2006-01-13
21:36:34

[삭제]
 
 
 
김환기
MT love님, 사람의 겉 모습과 내면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른다는 사실......!
어누 누가 MT의 겉 모습을 보고 시와 연관을 지으리오!
동명이인 인지는 몰라도 김내식님의 시를 내 한편 알고 있어 여기 소개 합니다.


- 나 목 -

/김내식


이 세상에 부귀영화
화려하게 꽃 피워도
한 순간에 떨어지는
잎 새 같은것


삭풍에 몸을 떨며
침묵으로 외치는
너의 모습이
애처롭고 아름답다


삶의 시작도
허무의 점 찍고 가는 종말도
잎 새 하나 없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벗은 몸으로 외치는
진리의 전도자
말 못하는 만물이
무지한 인간을 깨우치고 있다
2006-01-13
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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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님의 자유가 부럽고 맑은 눈이 그립습니다.
2006-02-02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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