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행·여행·풍경
일천구백칠십년 지리산의 모습
茶泉
2007. 12. 11. 21:44
2005-05-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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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여객의 맨 뒷자석에 앉아 구례 화엄사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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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화엄사에 들어서서
사진 왼쪽이 나, 가운데는 친구, 오른쪽은 노고단에 근무하던 공수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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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뒤쪽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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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종주 3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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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을 오르다 내려다본 화업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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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기운이 솟아 나무위에 올라가 도끼를 들고 산적 흉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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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바위로 기억 되는데 맞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그 위에서 한방,
저 멀리 섬진강이 흐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애정을 갖는 사진인데 색이 많이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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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만 해도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는 이처럼 울창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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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바로 만든 무거운 군용 A 텐트와 임걸령에서의 비박
자고 일어나 보니
발 아래 임걸령의 운해가 좌악 깔려있었던에 기억이 지금도 생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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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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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작전도로에 올라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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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처음으로 생겨난 교련과 교련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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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내내 설익은 밥(기압차로 인해)을 먹어야 했습니다,
앞에 놓인 항고 (반합)로 밥을 해 먹었습니다,그것도 무거운 돌을 올려놔야 겨우 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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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일주일 동안의 종주 기간 동안 딱 한 사람을 만났었는데
그 이가 바로 오늘날 지리산의 신화이자 전설이 되어버린
우천 허만수 선생이었다는 사실.
자그마한 표시석이 전부였던 천왕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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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지리산에 대피소 같은것 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장터목에서 자고 일어나 후레쉬를 비추며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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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일출을 배경으로,
겨울도 아닌데 되게 추워 덜덜 떨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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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의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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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천왕봉의 일출을 가리키며.....
지리산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올까요 ?.
면적이 어떻고, 산세가 어떻고,몇 개의 도와 몇 개의 군에 걸쳐있고 임학적, 생태적 가치와 높이와 기후의 변화 기타 등등.
심지어는 지리산록 곳곳에 거처를 마련, 나름대로 한 소식을 꿈꾸는 자만해도 자그만치 삼천명에 이른다는 산.
지리산 !
어찌 몇 마디의 수식으로 지리산을 다 말 할 수 있을까요? 그만큼 지리산은 우리에게 특히 남도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특히 민족비극의 상징인 한국전쟁과 이현상으로 대표되는 빨치산 활동과 토벌의 과정 등을 거치면서 지리는 단순한 산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지리산 등반에 나선건 일천구백육십구년 이었습니다. 그 때의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흑백의 지리산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딜 다닌다는게 그리 수월치가 않던 시절. 이유인즉, 김신조로 대표되는 124군 부대라는 북한 괴뢰의 무장공비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를 기습 하려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소탕되고 나서 부터는 온 나라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너나 없이 군사 훈련으로 하루 해가 짧았던 시절 인지라 어딜 나돌아 다닌다는게 사치이자, 곧 애국심이 결여된 자라는 따거운 눈총을 받기 십상 이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무전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아무튼 중학시절부터 역마살이 낀 놈처럼 어디고 떠나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좀이 쑤셔대서 무턱대고 어디고 쏘다니는 버릇이 생긴지라, 점점 집을 원점으로 해서 더 멀리 나 다니기 시작 했습니다.
여기 올리는 사진은 두 번째 지리산 종주에 나섰을 때의 모습인데 다행이 몇장의 사진이 남아있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지금의 지리산의 모습과 비교 해가면서 감상 해 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흑백의 사진이지만 상당한 양의 사진을 갖고 있었으나 슬금슬금 다 사라지고 그시절의 사진은 몇장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도 사진 이려니와 가장 아쉬운 것은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산행일기가 도대채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만 찾는다면 그 시절 애기가 술술 풀릴텐데 말입니다......! 기억에만 의존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더더욱 아쉽습니다.
누렇게 색이 바랜 흑백 사진을 딸 아이가 포토샾으로 요술을 부려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지만 사양 했습니다.
내겐 세월의 자연스러움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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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환기 형님! 대단하시네요. 그때도 종주라는게 있었군요. 산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다르네요. 친구분들도 그렇구요.... 세월을 뒤로 삼십오년을 돌리니 지리산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혹시 이 사진들은 형님의 가보 1호 아닙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제가 지라산종주를 처음으로 한게 92년도 6월이였는데... 그때의 사진이 몇장 있는데 정리해서 한번 올려보아야겠습니다. 아주 잘 감상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남도 산님들과 함께하시며 옛시절의 산행 추억들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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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7 20:53:39 [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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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귀한 자료를 공개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빛바렌 사진이라 할지라도 백운산 아우님의 말마따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겠습니다.
70년대, 겁 없이 도망빽-그 당시 공군에서는 따블빽을 그렇게 불렀답니다-을 뜯어 배낭을 만든답시고 설치고 단일산만 가끔 다녔지 제대로 된 산행은 해보지 못했었는데 가슴 뭉클합니다.
태고적 모습이 그래도 존재하였을 지리산 잘 둘러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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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7 21:57:47 [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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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인
참 귀한 사진을 공개하셨습니다. 1970년이면 제가 지리산에 첫발을 뗀 해가 1980년이니까 저보다도 11년이나 앞서 지리산을 향유하셨군요 80년에 바라본 지리산만 해도 섬진강가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토지와 연곡사길을 두어시간 거쳐야 겨우 지리산의 품으로 접근하곤 했으니 당시 피아골의 의미도 모르면서 계곡사이사이의 바위들을 헤집고 날아다니던 일이 새삼 기억나며 손가락보다도 훨씬 굵은 지네들이 구물구물 대고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달린 모과나무에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모과가 대여섯개 정도 달린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보았던 이름모를 폭포들도 그리워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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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7 22:57:28 [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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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사랑
정말 귀하고 아무나 볼 수 없는풍경들 형님 연배에 이런 귀한 사진들을 보관하고 계신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특히 70년대 누가 지리산종주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을까요? 저도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만 다녀 와도 지리산 다녀 왔구나 생각 했는데 말입니다. 사진에서 보니 형님과 공수부대원이 모습이 서로 대조적 입니다 ㅎㅎ 형님이 너무 당당해서 그런지 몰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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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9 12:4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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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선호 형님께서는 몸도 편치 않으심에도 이렇게 댓글을 주심에 그저 황송할 뿐입니다. 첨산 아우님도 대단한 매니아라는걸 문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시절엔 도대체 어지간한 산귀신 아니고선 감히 지리종주를 해대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기에 산 위에서 사람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어쩌다 만난이와는 곧장 십년지지가 되어 버리곤 했습니다. 69년 처음 종주를 마치고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내려와 백무동 계곡을 타고 마천으로 내려서다 절벽에서 가시덩굴로 굴러 황천행을 할뻔한 기억부터 시작 해서 수 없는 아찔함을 겪고 오늘에 이른건 아마 하늘의 보살핌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마천에 내려와서 흘러가는 냇물에 담궈논 막걸리 한동이를 비워대고 가슴을 쓸어낼며 지리산신께 감사하던일 부터 어찌 여기다 다 폴어 놓을 수 있으리오 ! 그리고 도대채 지금처럼 여러코스라는게 없었고 잘못 들여 놨다간 그길로 황천행이라..... 그래도 그 험한 산 속에서 보름씩이나 버티다 내려서곤 한걸보면 나도 어지간 했습니다. 학창시절 특별활동부를 정할때면 무조건 산악부를 택했고,선배들을 따라 열심히 훈련해서 최소한 알프스의 샤모니나 몽블랑 정도라도 오르려고 했건만 그놈의 여권이 나오지 않아 결국은 포기하고 군에 가고 말았고 제대해선 먹고 살기 바빠 다 �고 살았습니다. 좌우당간 내 젊은날의 산에대한 열정은 체력이 최고조 였겠다 감수성과 호기심도 최고조 였기에 삼천리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MT아우님도 어지간한 지리예찬론자로 여겨지는데 정말 보기 좋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담도 건강을 소중히 하시길 바랍니다. 나같은 경우 건강이 무너져 도통 산에 못갔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나서 지금은 동네 뒷산도 헐떡대며 오르는 신세로 전락 한지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 그리고 사진 애긴데 저는 어찌어찌 그 시절 귀한 사진 몇장을 지금껏 가지고 있는데 사진관에 가서 얼마간의 돈을 주고 필름과 사진현상을 조건으로 카메라를 빌려 갖고 다녔는데 행여 다칠세라 그때만해도 고가인 물건인지라 조짐조심 영 신경 쓰이는 존재 였습니다. 앞으로도 어디선가 박혀있다 옛날 산행사진이 나오면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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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9 13:28:50 [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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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insan
귀한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호기와 객기가 묻어나는군요. 더욱이 사진으로 찍어 기록을 남기기까지 하셨으니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오래된 시절의 사진이라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그러나 근본적이 산천의 모습은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만 간데가 없네. 자연의 모습은 그 다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화엄계곡의 모습과 눈썹 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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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9 19:2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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